혼돈의 시기, 혼돈의 대한민국

공무원의 역할에 대한 생각

by 김정선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出, 북랩) 저자


공무원이란 무엇인가.

정치가 방향을 정한다면, 행정은 그 길을 다져가는 역할이다.

그리고 그 행정의 중심에 있는 사람, 바로 공무원이 어느 철학과 기준을 갖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정책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숫자에 갇힐 수도 있다.

나는 이 시대의 공무원은 단순한 집행기계가 아니라, 공정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행정철학자여야 한다고 믿는다.


공무원은 생각하는’ “수단과 도구여야 한다

공무원의 책무는 정치영역에서 결정된 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고 한정된 재원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데 있다.

이런 책무를 제대로 하려면 공무원이 공정성,형평성,역사성 등 행정철학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단체장의 선거공약을 구체화하여 집행한다.

공무원은 단체장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집행하는“수단과 도구”역할을 한다.


그래서 공무원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들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공직 생활을 하면서 행정철학에 대해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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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생각을 할 줄 아는 공무원이라면, 정권이 바뀌었을 때를 생각하면서 자기가 만든 정책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정권교체 등 상황 변경에도 당해 정책이 좋은 정책으로서 범용성을 구비하여 살아남을 수 있도록 깊고 넓게 생각해서 카멜레온처럼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장치들을 숨겨둬야 한다.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간 사다리 역할

나는 공무원이 되고자 희망하면서 다소 헛된 망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부자와 빈자를 연결하는 사다리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나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궁핍했던 60년대와 70년대를 농촌에서 보내면서 고단한 농촌의 삶을 목도하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공무원의 역할에 대해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주구(走狗)로 간주하였지만,

나는 상류계층과 하위계층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서 공무원이 역할을 할 수 있다.

부자에게서 돈을 뺏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의 공정과세 원칙에 따라 적정한 세금을 부담하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 돈을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소비함으로써 기업 성장이나 경제성장 등에 기여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양자가 모두 윈-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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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이 낸 세금은 단지 남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사다리의 디딤돌이다.

그 사다리를 딛고 일어선 이들이 다시 소비와 성장의 주체가 될 때, 부자 또한 그 과실을 함께 누리게 된다.


이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다.


농부의 아들인 내가 서울시 서기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다리 역할” 을 할 수 있는 적격자를 선발할 수 있는 “행정고시” 제도가 아직은 그 사회적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권력이 돈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인정받는 시기여서, 이제는 농부의 아들이 과거의 나처럼 ‘개천에서 용 나기’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개룡남”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


지금은 부가 부를 창출하고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지위와 권력을 독과점하는 시대여서,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더욱 필요하다 할 수 있다.


공무원이 부자와 가난한 계층을 연결하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을 꿈꿔본다.


일반 서민들을 위한 각종 복지,교통,주거 분야 정책 등이 제대로 마련되기 위해서는

“개천에서 용 나기”가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유지되어야 하고, 그런 제도를 통해 선발된 공무원이 시의적절하게 주요 정책 수립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不作爲의 중요성: 일을 안 하는 것도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

훌륭한 공무원이라면‘일을 잘하는 것’도 좋지만 경우에 따라서는‘일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이 두 가지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정책의 “지속성”을 먼저 생각하면서, 정권이 바뀐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으로 예견되는 사업의 경우에는 가급적 일하지 않으려고 용기를 내야 하고, 조직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많은 고민과 숙고의 과정을 거쳐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안을 찾아내서 정책화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하려고 할 때보다 더 많은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정확한 현실분석과 관계 전문가 등과의 숙의과정을 거쳐, 하지 않아야 하는 명분과 그럴 경우의 실익을 비교분석 하여야하고, 논리적인 보고자료를 작성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수반된다.


이 경우에 조직 내외부에서 당해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으나 훗날의 평가는 다를 수 있으니,당대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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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자체장 등 정무직공무원은 51:49라는 득표율 전략을 활용하여 아주 근소한 차이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만인을 대표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래서 지자체 공무원들은 투표자 49%의 생각도 중요하게 고려해서 범용성이 가미된 정책이 되도록 심도 있는 고민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마무리 : 정치의 주기가 끝나도, 행정은 계속된다.

정권은 바뀔 수 있지만, 시민의 삶은 이어지고, 문제는 쌓이며, 그 곁에 공무원은 늘 존재한다.


좋은 공무원이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때론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쳐다보지 않아도, 스스로의 양심과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버티는 사람이다.


지금 이 시대, 공무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용기와 균형감각, 그리고 정권을 넘어 살아남을 정책을 만들려는 지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공직을 향해 여전히 기대를 거는 이유일 것이다.


*이 글은 저자의 저서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에 담긴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필자는 현재 『행정 실패학』 집필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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