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에 대한 생각 : 보수와 진보의 시선

'구분' v.s '함께'

by 김정선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出, 북랩) 저자


이념은 시민을 어떻게 대하는가

정치가 시민을 말할 때, 행정은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

나는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시민’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마주했다.

민원인으로서의 시민, 정책 수요자로서의 시민, 때로는 정책 실패의 피해자로서의 시민. 하지만 정작 시민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았다.


이 글은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 이념이 시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행정은 그 시선을 어떻게 정책으로 옮기는지에 대한 하나의 성찰이다. 엘리트냐, 비엘리트냐. 배려의 대상이냐, 권리의 주체냐. 이념의 차이는 곧 행정의 태도와 결과로 이어진다.


이념이 만들어낸 ‘시민관’의 차이

보수는 개인의 능력과 책임을 강조한다.

사회적 약자는 능력 부족의 결과로 여겨지며, 그에 따른 ‘배려’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정책이 설계된다.

이는 약자를 온전한 인격체로 보기보다, 체제 유지를 위한 완충장치로 바라보는 시선과 맞닿아 있다.


반면 진보는 계층 간 격차가 구조적 문제라 본다.

약자는 피해자이며, 이들에게 제공되는 지원은 시혜가 아닌 당연한 권리라는 시각이다.

따라서 진보적 행정은 사회구조를 개선하거나, 최소한 제도적 보상을 설계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는 이 차이를 직접 체감한 경험이 있다.

2010년, 마포구청으로 파견되어 근무하던 시절, 무상급식 논쟁이 서울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신자유주의 기조의 ‘작은 정부’가 물러가고, '큰 정부'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당시 보수 진영은 변화의 조짐을 감지하지 못한 채 진보적 흐름에 정책적 주도권을 내주었다.


극단의 정치화, 시민의 고립

문제는 이념의 차이가 정책 설계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을 구분 짓는 기준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함께'보다 '구분'에 더 익숙해져 있다. 엘리트와 비엘리트, 정상이냐 열등이냐,

진영의 적이냐 동지냐는 프레임은 행정 영역마저 삼켜버렸다.


51:49논리가 정치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분야 모든 영역에까지 두루 확산되어 있다.

통합보다는 나누고 편가르기 하여 일단 차지한 밥그릇을 뺏기지 않고 영구화하기 위해, 끼리끼리 잇권을 챙겨주는 패거리문화, 조폭문화가 정치판을 휘감고 있다.


특히 낙하산 인사와 같은 엽관주의는 정치와 행정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퇴직 고위 관료와 정치인이 공기업 등 공공기관 요직을 독식하는 구조 속에서, 실력 있는 일반 시민은 철저히 들러리로 전락한다. 그들만의 리그가 횡횡하고 있다.

도둑 패거리들이 장물을 나누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는 시민을 위한 정책 집행이 아니라, 정권을 위한 이권 분배로 전락한 한국 정치의 단면이다.


시민 중심 행정의 회복을 위하여

정치는 시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민은 수단이 되었고, 행정은 정치의 도구가 되었다.

낙하산 인사, 권력의 사유화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시민 배제형 통치’의 결과물이다.

행정은 유력 정치인들이 공기업 사장 임용 등을 위한 요식행위에 앞장서고 있다.


이제 우리는 시민을 능력 부족의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권리의 주체로 존중할 것인가를

다시 물어야 한다. ‘시민 중심 행정’은 더 이상 수사로 머물러선 안 된다.


정책과 제도의 모든 시작점과 종착점은 ‘시민’이어야 하며, 이념보다 앞서야 할 것은 공정성과 상식이다.

정책은 대립이 아니라 공감과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보수든 진보든, 진영보다 먼저 시민을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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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에 담긴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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