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열세 살
나이만 먹은 어른이 되고 느낀 점은, 사회생활은 업무능력을 배제하더라도 눈치가 빠르거나 거짓말을 잘하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눈치도 느린 편이고 거짓말에는 더욱 소질이 없었다.
거짓말도 똑똑한 사람이 부릴 수 있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에 대한 나만의 칭찬은 영혼이 없다고 평가받기 일상이고, 회식이나 모임에 빠지기 위한 공공칠 작전은, 다음날 해맑은 표정으로 미주알고주알 이실직고하고 있는 실상으로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움만 샀다.
심지어 측근 친구가 말하는 비밀은 지조 없는 비밀이 되었으며, 내 거짓말은 힘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사회생활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을 잘 안 하게 됐다.
이쯤 돼서, 나는 언제부터 거짓말을 못했나.라는 생각에 꼬리를 물다 보면 초등학생 시절부터 미숙한 편이었는데, 특히 이십년지기의 수학 점수를 엄마한테 말한 순간은 세월이 흐른 최근까지도 거론될 만큼 그 영향이 컸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 마지막 성적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험 점수에 관심을 두고 집착 아닌 집착을 하셨는데, 비교대상은 덤. 엄마가 비교대상으로 점찍은 상대는 당시에도 나와 제일 친했던 이십년지기였다.
전에도 말했듯이 이십년지기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참 잘하는 편이었으나 유일한 단점을 꼽자면 그저 수적인 것에 약하다는 것이 전부였다.
하루는 학기의 마지막 시험 기말고사를 치르고 서로가 비교대상이 되어 시험 점수를 긴밀하게 공유하는데, 이십년지기가 수학 점수만큼은 절대 사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밀은 숨길수록 더욱 그 가치가 발하는 법. 나는 국보급 비밀보장을 내세우며 결국 베일에 싸인 수학 점수를 알게 되었는데, 모든 과목에서 나보다 우수한 이십년지기가 수학만큼은 30점을 받은 것이었다.
'30점이라니, 네가? 거짓말!' 사실 나에게 30점은 친근하고 인간적인 점수였기에, 좌절하는 친구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내심 반가웠다.
수학점수를 자신의 치부라고 여긴 이십년지기는 좌불안석으로 나에게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를 내세우며 입단속부터 철저히 시켰는데, 제일 중요 수칙인 ‘너네 엄마한테 절대 말하지 마’를 거듭 반복하기에 나는 ‘나만 믿어’라며 신뢰를 가득 담아 답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나 살고자 내 친구의 믿음을 저버리게 되는데, 딸내미의 시험 점수를 보고 이미 표정부터 좋지 않은 엄마가 무거운 목소리로 당연하다는 듯이 가장 친한 친구의 점수를 물었고, 분명 모르쇠로 일관하였으나 연이은 몰이성 질문에 궁지에 몰려 어느순간 이십년지기의 역린 같은 점수를 실토한 것이었다.
나의 신뢰는, 한낱 바스러지는 낙엽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비밀은 반나절도 채 유지되지 않았고, 한 날은 이십년지기가 떠보는 질문에 목덜미가 잡혔다.
“너희 엄마한테 내 점수 말했지?”
“안 말했다니까, 왜 자꾸 못 믿는 거야?”
“내가 너희 집 문 앞에서 들었는데?”
“…. “
겨우 작은 덫일 뿐이었는데, 멍청한 나는, 집 대문을 열고 들어왔으려나. 문 앞에서 들었다는 근거가 부족한 그 말을 진짜로 믿었다. 순간 싸늘하게 식은 이십년지기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으나 이미 상황은 되돌이킬 수 없었다.
화가 난 친구의 모습을 보는 건 상상 이상으로 무서웠고, 그랗게 난 한동안 대역죄인이 되었다
비밀을 누설한 대가는 서로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이따금씩 상기되었다. 최근에는 이십년지기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서로 위로가 오가는 훈훈한 상황에서도, 대뜸 "너희 엄마한테 말하지 마." "내 수학 점수 말했잖아" 라기에, 신뢰를 바탕으로 불신이 자리 잡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되어, 나는 서른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절대. 엄마한테 말 안 해." 라며 끝없이 유치한 말을 반복하였다.
비록 융통성이 부족한 사회생활이지만, 그때의 사건은 트라우마 또는 교훈이 되어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듯. 솔직한 것만큼 내 마음 편한 것 없기에, 여전히 거짓말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며 속 편하게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