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열두 살
우리 가족은 사글세 살이를 했는데, 주인집 할머니와 더불어 살아가는 기역자 구조의 한옥집이었다. 13평 정도 남짓한 우리 집은 거실이자 큰방과 욕실, 주방 그리고 창고처럼 사용하는 작은방이 전부였으며,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곳에서 지내왔다.
네 가족이 살기에는 참 좁은 집, 나는 유년기 시절을 지나서까지 개인적인 공간을 누릴 수 있는 방 하나 없었는데, 엄마는 이른 사춘기를 맞이한 내가 안쓰러웠는지 열두 살이 되고부터는 창고방 물건을 최대로 정리해서 없애고 간소화하여 그곳에 내 방을 만들어 주셨다.
처음 생긴 나만의 보금자리에 기쁨을 누리는 순간도 잠시, 한 날은 유통기한이 살짝 지난 우유와 요플레를 공수하기 위해 이십년지기와 유통업을 운영하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가게 되었는데, 나와 이십년지기는 그날 처음으로 다락방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락방은 친구의 비밀공간이자 제2의 방이었으며, 낮은 층고와 구석탱이 곳곳에 쌓여 있는 만화책과 갖가지 물건들로 비롯하여 마침 이른 사춘기 속 감성이 증폭한 나와 이십년지기에게는 더없이 아늑해 보였다.
며칠이 지나도 공간이 주는 아늑함은 내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다락방에 대한 환상을 쉽사리 떨쳐 낼 수 없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부모님께 진심을 담은 목소시로"우리도 다락방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라며 용기 있게 말하였으나, 사정없이 날아오는 등짝 스매싱에 괜히 서러움만 배가 되었다.
하지만 다락방이 주는 아늑함에 매료된 나와 이십년지기는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고, 다락방 비스무리한 것을 흉내내기 시작했는데, 바로 집 창고에 있는 쌀포대를 각자의 방으로 옮기고 옮겨서 방안의 작은 다락방을 만든 것이었다.
'아니, 생각보다 괜찮은데?'
여러 쌀포대가 모이니 넓은 면적이 형성되어, 그 위에 아기자기한 소품을 올려놓으니 그럴듯한 모양새였다.
우리는 서로의 다락방을 공유하며, 정성스럽게 설계한 작은 다락방 위에서 티타임을 갖고 담소를 나누거나, 구조적인 발전을 위해 쌀포대를 이리저리 옮겨, 나름 새롭게 배치한 구조를 마음에 들어하면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나 갈망했던 다락방에 대한 환상은, 우리의 놀이로서 어느 정소 해소되었고, 그다음 차례는 또 다른 친구의 집에서 본 침대였다.
쌀포대는 트랜스포머 마냥 또다시 침대로 변형되어 그 역할을 충분히 이뤄냈는데, 실제로 하룻밤은 쌀포대 위에 이불을 깔아놓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현재 내 나이 서른하고 둘, 집 계약기간이 임박한 시점에서 몇 달 전 새 집을 구하기 위해 동네 부동산을 순회하던 차 복층이 딸린 방을 한 번 둘러보았는데, 자연스레 쌀포대로 다락방을 흉내 내어 놀이했던 추억이 떠오른 참이라 또 다른 친구에게 말해주었다.
친구는 나의 추억에 공감하면서도,
"우리는 워낙 시골에 살아서, 우리의 추억은 요즘 30대들과는 많이 달라."
"우린 80년대 같은 90년대를 지냈지."
"그래서 우리의 유년기 시절은 희귀하고 소중해."
라고 말했다.
문득, 시골이 아닌 곳에서의 추억들은 어떠한지, 어쩌면 시골보다는 환경적으로 오색찬란했겠지만, 나는 친구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애틋한 너의 말처럼 우리의 추억은 희귀하고 참 소중하기에, 오늘도 이곳에서 추억을 끄적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