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열한 살
초등학교 3학년, 나의 일일 용돈은 삼백원이었다.
삼백원, 턱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90년대 물가를 생각하면 크게 부족하지 않은 금액이었다. 오십원짜리 불량식품을 여섯 개나 살 수 있었고, 백원짜리 신호등 사탕과 꾀돌이 과자 그리고 우주별 캔디를 사면 하루 간식거리가 해결되어, 그런대로 합리적인 용돈이라고 여겼다.
4학년이 되어서는 나름 고학년이라고 용돈이 올랐는데, 딱 이백원 인상되어 오백원을 손에 거머쥐게 되었다. 용돈이 오르는 순간, 고작 열한 살짜리가 느끼기에도 삶의 질이 향상되어, 그 사례로 불량식품이 아닌 봉지과자를 사 먹을 수 있었고, 군것질 욕구를 억누르는 다음 날에는 문구점에서 귀여운 수첩이나 평소 간절히 원했던 스티커 인형 옷 입히기 같은 소비가 가능했다.
당시 친구의 결핍을 느꼈던 내게 이십년지기를 비롯해 친구 한명이 더 생겼는데, 우리는 인도영화 '세 얼간이'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셋이서 잘 어울려 다녔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때는 산속 큰 바위를 오르거나 계곡에서 다슬기 또는 논밭 올챙이를 잡고 물놀이하면서 마치 하루라도 쉬면 좀이 쑤시는 것 마냥 열심히 움직였다.
성장기 속 넘치는 활동량으로 인해 우리는 과자 한 봉지로는 해결이 안 될 만큼 늘 배가 고팠고, 더불어 개인적인 욕구도 성장함에 따라 그 시절 유행했던 포켓몬 스티커 수집 또는 파티나 밍크 같은 순정만화잡지 구매 등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간절히 원했다.
특히 포켓몬 스티커 수집은, 정말이지 유행은 돌고 도는 게 공식인 것 같다.
합리적인 용돈이 합리적이지 못하게 되자 눈치껏 부모님께 용돈 인상 건으로 건의하였으나, 가세가 기울지는 않았어도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에 나의 소심한 안건은 빛을 발하지도 못했고, 그건 친구들도 피차일반이었다.
우리는 부족한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잔머리를 굴려 해결방안을 모색했는데, 그 결과는 일차원적이고도 아주 현실적인 것이었다. 바로 땅에 떨궈진 동전을 줍거나 친구들의 학습지를 대신 풀어주어 일당을 받고, 계곡에서 잡은 다슬기를 옆집 할아버지께 파는 행위였다.
허리 굽혀 가며 잡은 다슬기를 옆집에 가져가면, 할아버지께서 마치 감정평가하듯이 그날의 다슬기의 양과 상태를 보고 무려 이삼천 원어치의 값을 내주셨고, 노동의 대가에 비례하는 금액은 마치 치킨 한 마리를 사고도 남을 만큼 풍족한 마음가짐이었다.
또 하루는 들판에서 이삭 줍듯이 동전을 줍고 다니는데, 주로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틀, 구름다리 주위나 철봉 밑이 노다지였으며, 평상시에는 백원, 운수 좋은 날에는 오백원 정도의 거금을 수확할 수 있었다.
운수 좋은 날에는 우리끼리 백원짜리 아이스바를 사 먹으며 소소하게 회포를 풀곤 했는데, 오늘도 열심히 산 것 같은 하루에 얼굴을 마주보며 서로 뿌듯해하는 장면이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 멋쩍게 웃길 때가 있다.
용돈이 부족했던 시절, 초등학생이 부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소소한 일임에도 기억이 뚜렷하다.
MZ세대라 불리는 요즘 아이들과는 그 모습과 문화가 예전과는 판이하여 친구들끼리 종종, "우리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어." 라던지 귀여운 한풀이를 할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열심히 동전 줍고 다니던 우리의 추억이 그저 애틋하고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