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열네 살
우리 가족은 사글세 살이를 했는데, 주인집 할머니와 더불어 살아가는 기역자 구조의 한옥집이었다. 13평 정도 남짓한 우리 집은 거실이자 큰방과 욕실, 주방 그리고 창고처럼 사용하는 작은방이 전부였으며,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곳에서 지내왔다.
네 가족이 살기에는 참 좁은 집, 나는 유년기 시절을 지나서까지 개인적인 공간을 누릴 수 있는 방 하나 없었는데, 엄마는 이른 사춘기를 맞이한 내가 안쓰러웠는지 열두 살이 되고부터는 창고방 물건을 최대로 정리해서 없애고 간소화하여 그곳에 내 방을 만들어 주셨다.
- 쌀포대 다락방편에서 발췌
위에서 말했듯이 내게도 방은 있었지만, 형식적이었을 뿐. 우리 집에서 내 방의 역할은 두 가지였다. 창고 또는 단순히 주방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는 통로였는데, 구조 특성상 투명스러운 미닫이문을 열면 주방이었고, 맞은편 한지 바른 문을 열면 마당이 보이는 대청마루였다.
이러한 구조 덕에 주방은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늘 요리와 설거지를 하고 김장을 버무리는 등 다채로운 소음이 존재했고, 문밖으로는 우리 집을 제외한 세대가 살아가는 소리로 매일같이 소란스러웠으며, 정말 많은 사람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고로 나는 개인적인 공간을 누릴 수 없었다.
어쩌다가 모임을 동반한 부모님의 부재와 동생의 외출로 집안이 텅 비었을 때는, 그야말로 나만의 세상이었는데, 주위를 에워싼 적막한 공기가 그렇게 반갑고 혼자가 되는 매 순간이 감회가 새로웠다.
혼자일 때는 TV도 틀지 않을뿐더러, 삼촌이 첫 월급을 타고 사주신 'MP3짱'(그 시절 내 마음속 아이리버를 뛰어넘는 비메이커) 엠피쓰리를 들으며 쉽게 공상에 빠지기를, 그 순간만큼은 안팎으로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차분히 진정되고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어, 시간이 멈추기를 바랬다.
그러나, 이렇게나 방해받고 싶지 않은 소중한 시간에도 복병은 존재했다.
바로 우리 집 위치가, 지하철 역세권 마냥 사각지대 따위는 절대 없는 시골마을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어, 즉 접근성이 좋아 친구들이 너무나도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아지트가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밖에서 뛰어노는 건 실로 즐거웠으나 고독을 즐길 기회는 잘 없었기에, 나는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더욱 즐겁고 귀했다. 그래서 집에 혼자 있는 날에는 수시로 방문하는 친구들을 피하고자 문밖의 신발은 죄다 신발장 안에 숨기곤 했는데, 특히 내 신발만큼은 신발장이 아닌 욕실까지 꽁꽁 숨겨두어 인기척을 없앴다.
간혹 친구 중에서도 이십년지기는 촉이 남달라, 형상이 사람이 없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 의중을 파악한 듯 꼭 두세 번씩 상황을 떠보는데, 그때는 욕실에 있는 세탁기 옆으로 몸을 숨기면서까지 고독을 사수하기 위해 애를 썼다
" 소정아, 집에 있어?"
" 너 집에 있지?"
" 야."
" ...집에 있는 것 같은데? "
매번 세탁기 옆에서 신발을 끌어안고 몸을 숨긴 나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면 맥박이 뛰기 시작하면서 긴장감이 맴돌았는데. 신발장까지 열어보며 마지막으로 확인을 하는 이십년지기의 인기척이 느껴지만 혹여 들킬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침을 삼키어 몸을 더 웅크리며 문밖의 친구가 멀어지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수고스러움을 더했다.
혈액형으로 사람의 기질을 나누고 성향을 판단하던 시절에는 에이형의 대표주자. 요즘 트렌디한 엠비티아이는 5년 차 INFP(인프피)로서, 기질이 타고나기를 참 내성적이고 집단생활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필수로 여겼으나, 대학생 때는 기숙사 생활을 했기에 3학년이 되고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온전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살아온 배경 탓인지, 나는 남들보다 확연히 외로움을 덜 탔고, 혼자서는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었다.
현재 서른이 넘은 시점에서 주변에서는 연애 또는 결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언급하는데, 어린이집에서 함께 근무하고 인연을 맺은 사랑스러운 동생이 말했다.
“ 언니는 가만 보면 혼자서 너무 잘 지내.”
“ 그래서 연애를 안 하는 건가 싶어.”
남자 친구라는 존재가 부재한 지는 어느덧 5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5년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다.
아직도 난 혼자이고 싶다.
절대 연애를 못해서가 아니다.
최근에는 엄마가,
" 결혼도 다 때가 있는 거야"
" 나이 들수록 결혼 힘들어 "
" 나중에 나이 들어봐 외롭다 너"
엄마 말에 공감한다.
결혼은 좋은 제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결혼의 적기는 또 다르지 않을까.
남자 친구도 없는데, 퇴근 후에는 뭐 하고 지내냐는 회사 동료들의 물음에는
" 뭐 저녁 먹고 나서는 넷플릭스 보거나, 아. 지금은 공인중개사 공부하고 있어요."
라고 답한다.
퇴근 후에는 인강만 들어도 하루가 금세 사라져 버린 기분이다. 밀린 웹툰도 봐야 하는데, 하루도 부족하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외로움 느끼는 건 당연하지만,
적당한 외로움을 느끼되, 아직은 혼자이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 고독에 있어서 자의적인 내가 진정 고독의 주체이지 않을까. 이따금씩 주제넘은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