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2011. 스물한 살

by 글멍


나는 엄마가 아닌 아빠 닮은 딸로서, 엄마하고는 극적으로 반대인 기질을 타고났다.


한마디로 엄마가 바닥에 흐트러진 머리카락 한올조차 절대 두고 볼 수 없는 성향이라면, 나는 마치 머리카락을 모으는 행세인 듯 귀신머리카락 마냥 쌓이도록 두고 보는 성향이었다.


그래서 유년기 시절 동안은 참 많이 혼이 났고, 성년기가 되어서는 이제 머리가 굵었다고 엄마랑 열정적으로 싸웠다.


혼나고 싸우는 그 이유조차 참 가지각색이었는데, 단축하자면 그릇을 떨궈 깨트렸기 때문에. 냉장고에 있는 생라면을 꺼내 먹어서. 머리카락을 바로 치우지 않아서. 뛰다가 넘어지는 순간까지. 넘어졌을 때조차 내가 두대바리이기(검색하니 재주가 둔한 사람을 일컫는 방언) 때문에서였다.


지금의 시대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친 훈육으로 비칠 수 있어,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나는 혼나면서 많이 맞고 큰 아이였다.


7080 시대의 분위기가 낭랑한 여느 드라마 속에 나오는 회초리 아니 파리채에 맞아 종아리가 부르 든 채 울며 잠든 아이가 바로 나였다.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가 허구한 날 혼나고 맞는 장면을 여러 번 접한 아빠가 한 날은 엄마에게 말했다.

'참말로, 니는 니 배 아파 낳은 아를 왜 이렇게 까지 때리는 거야?'


부부싸움의 원인이 알고 보면 너무나도 사소하고 별거 없다 했는가. 돌이켜 보면 내가 혼이 났던 순간들도 너무나도 소소한 것들이었기에, 나는 엄마가 어쩌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착각했다.


그 착각이 정말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은 바로, 내가 대학생이 되고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자취를 하면서부터였다.


우리집은 운수업 종사자인 아빠의 직업 특성상 또 형편상, 평생에 승용차 한번 타 볼일 없는 대신 연식은 오래되었지만 새파란 중형 트럭하나가 오랫동안 자리했는데, 부모님은 달에 한 번씩은 꼭 트럭짐칸에 내가 먹을 반찬을 실어 자취방까지 올라오셨다.


냉장고는 하나밖에 없는데, 엄마가 바리바리 싸 온 갖가지 반찬과 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김장 버무릴 때나 사용하는 빨간 고무대야 가짓수가 트럭짐칸 자리를 다 자치할 정도였다.


매일마다 먹을 수 있도록 일회용 팩에 얼린 국, 새로 무친 새빨간 밑반찬, 풀떼기만 먹으면 속이 허하고 영양이 부실하다며 붉은 육류는 항시 챙겨 오시고, 사 먹는 과일은 비싸니까 집에서 난 과일과 야채, 물티슈부터 다양한 생활용품까지. 심지어 과일과 야채는 항상 세척되고 미리 손질된 상태였는데 과장 좀 보태어 자릿세만 없다면 트럭장사도 가능할 것 같았다.


이렇게 부모님이 한 번씩 올라오실 때마다 나와 같은 원룸에 사는 동기가 고맙게도 급하게 쓰레빠를 끌고 나와서는 짐 나르는 것을 도와주곤 했는데, 그럼 한 번씩 내가 먹을 반찬을 나누거나 시내에서 밥 한 끼 먹는 걸로 고마움을 전했다.


"어머님도 참 정성이셔. 우리 엄마도 저렇게 못한다니까?"

"넌 진짜 감사해야 해."


그때 알았다. 친구의 말에. 내방청소까지 해주고 돌아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스물한 살이 되어서야.


'아,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저 뒷모습이 사랑이었구나.'하고


대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자연스레 나이를 먹으면서 난 엄마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당시 엄마의 삶 또한 순탄치 않았기에 마음껏 표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삼십대 중반이 된 현재까지도 엄마에게 '우리 딸, 사랑해' 라던지 낯간지러운 말을 들어 보지 못했지만, 여전히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최근 친구 A가 파리에서 유학생활중인 친구 B를 보러 여행 가겠다고 했을 때,


"엄마, 경희는 지수 보러 파리에 간다네?"

"그래? 니도가. 니도 경희랑 같이 지수 보러 파리에 가."

"백수가 무슨 파리야"

"엄마 비상금 조금 있는데, 그걸로 가면 돼"


같이 드라마를 보다가 내 취향의 여자배우를 보면서

"진짜 너무 예쁘다.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니도 이뻐"


이십년지기도 무서워하던 우리 엄마였는데,

"어머님 말이야, 니 어렸을 때 못 해주셨던 거 지금 다 해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야"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말보다 더한 행동으로 나는 엄마의 내리사랑을 여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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