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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물 Aug 01. 2024

미뤄둔 슬픔

-아무도 모르게 감춰둔 마음.




아무도 모를 것이다.

분주한 일과를 다 보내고 들어온 내 방,

한 구석 웅크리고 있던 슬픔이 나를 맞이한다는 걸.

너는 추호도 모를 것이다.

다 꺼내지지 않은 덩어리 진 마음들이

내 속에서 상해버려 이내 문드러지고

축축한 물을 내며 눈물샘 가득 고인다는 걸, 너는.

하루를 이겨내곤 하는 단단해진 마음이

너를 생각하면 한없이 질만큼 물러져

네가 원하지도 않는 내 마음 몇 번이고

다시 내 안에서 진다는 걸.

너도 모르고, 그 누구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한낮 숨을 쉬기 위해,

슬픔을 해 질 녘으로 미뤄뒀나 보다.

애도하듯 잔잔히 깔려있는 우울에

슬픔이 죽은 줄로만 알았다.

들어선 방, 숨 참고 구겨져 있는

고통 앞에 주저앉고서야

목놓아 울고 싶은 커다란 물기가

여전히 내 안에서 숨 쉬고 있음을.

마주하고서야 알았다.

나조차 몰랐던 것이다.

너도 모르고, 그 누구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미뤄둔 슬픔.




나는 손가락 한마디만큼의 작은 슬픔에도 쉽게 매몰되는 사람이었다. 사춘기 시절과 20대 초반에는 일상의 모든 걸음에 축축한 물기가 떨어질 정도로 항상 무거운 걸음을 이어갔다. 


작은 슬픔에도 쉽게 갇혀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쓰다듬어 주지 못해서, 별개의 기쁨들로 별개의 슬픔들을 지우려 했던 성숙으로 포장된 나날들이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서야, 기쁨 하나가 온전한 슬픔 하나를 지울 수 없음을 알았다. 기쁨들을 잘 발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숱하게 존재하는 내 안의 슬픔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일도 중요한 것임을.


슬픔은 슬픔으로 어루만져야 한다.


 내 안에 숨겨둔, 나조차도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감춰둔 슬픔을 우리는 홀로 있는 시간에 포착하고 꺼내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져주고, 흘려보내야 한다.


'미뤄둔 슬픔'이라는 이 시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생각할 틈도 없이 분주한 하루를 보낸 뒤 돌아온 방 안에서 마주친 감정을 담아낸 시이다. 너무 좋은 하루, 너무나 괜찮은 하루라고 여겼는데 마음 한편에는 미처 다 꺼내지 못한 슬픔이 차오르고 있었음을 밤에 다다라서야 알게 된 날이었다. 밝은 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다, 불 꺼진 문간에 홀로 들어서자 방 안 구석 가장 어두운 곳에 흐트러져 있는 물건을 보았고, 그 순간 나는 내 마음 한구석 그늘진 곳에 하루종일 구겨져있던 나의 슬픔을 포착했다. 슬픔을 들여다보자, 그는 누군가 알아봐 주길 기다렸다는 듯 이내 차오른 울음을 터뜨렸다.


단단하게 이겨내고 있다 생각했던 마음에도, 한없이 주저앉고 싶어질 때가 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슬픔의 이유는 다양하다. 어쩌면 이미 준비된 슬픔일 수도, 준비되지 않은 슬픔일 수도, 한 방울씩 새어 나오는 잔잔한 여운 같은 슬픔일 수도, 목놓아 울 정도로 거대한 산 같은 슬픔일 수도, 누군가를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슬픔일 수도, 가까웠던 관계가 단절되는 슬픔일 수도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아무리 슬퍼도 다음날은 또 찾아오고, 아침이 찾아오면, 우리는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주어진 할 일을 해야 한다. 온전한 슬픔을 꺼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때가 많다. 아무도 모를, 심지어는 나조차도 몰랐던 어떤 감정을 마주하는,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당신이 애써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의 슬픔은 당신의 기쁨만큼이나 소중하다. 누구도 온전히 알아주지 못하는 슬픔을, 나는 당신이 당신 자신만큼은 스스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 안에서 포착된 '미뤄둔 슬픔'이

당신의 '미뤄둔 슬픔'을 꺼내어 만져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빈 마음을 끌어안고,

당신의 빈 마음을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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