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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물 Aug 01. 2024

공생

딱풀처럼 붙어 숨 쉬는 것.

 


이제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나

여전히 너는 나와 공생한다.


한 편의 기억 속에,

한 조각의 글 속에,

뚝뚝 묻어나는 너.


 네가 언젠가 떠나가게 되면, 너에 대한 생각이 내 삶에 딱풀처럼 붙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랑해"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껴두던 나는 말로 꺼내지 않아도 이미 내 마음 깊숙이 너에 대한 사랑을 한 자리 내어주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단어를 참는 침묵은 너를 내 삶에서 떼어내는 일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되려 네가 속삭이던 사랑의 말들이 내 안에 들어와 다시 꺼내어 돌려주지 못한 채 가슴에 박혀 너를 잊는 일이 더욱 힘들다.


 '사랑'이라는 나의 단어집 안에는 자연스레 '너'라는 사람이 숨 쉬며 공생하고 있다. 한 때는 네가 내 마음으로 던져 넣었던 그 말들이 진심이었을까 하며 실체를 파헤치려 하기도 했지만, 순간의 진심이었던들 그 순간의 말들이 나의 진심 속에 들어왔으니 더 이상 진위를 가리는 일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깨닫는다.


 또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너는 지울 수 없는 사랑의 흔적일 것임에 나는 아마도 내게 머무는 여운을 당분간 붙잡아두고 있으려 한다. 나는 너를 사랑했을까? 사랑한다는 너의 말이 이토록 내 안에 파동을 남겨두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나도 네가 고백했던 만큼은 사랑했으리라.


지금 내 곁에 없는 너는 아직 나와 공생하고 있다.


-공생.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어떤 존재의 크기가 내 안에 얼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는 그 존재가 떠나고 나서야 느끼는 빈 자리의 크기로 가늠한다. 텅 비어버린 내 안이 당신의 부재로 꽉 차 있었을 때, 견디지 못한 마음이 뭐라도 채워야 할 것 같았는지 눈물로 가득 채우던 날들이 있었다. 꽉 차서 넘쳐흐르던 눈물의 양만큼이나 당신이 내 안에 살고 있었음을, 어쩌면 그 때까지도 당신은 내 안에 부재라는 새로운 형태로 여전히 살아있었음을. 살아 숨을 쉬는 당신의 잔상을 움켜쥔 채 내 안에 계속 살아있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공생하던 부재감도 떠나고서야, 나는 텅 빈 마음을 끌어 안는다.


당신의 크기만큼이나 움푹 패인 마음에 새살이 차오르고, 다른 누군가 그 살을 밀어내고 들어온다면 그 때는 있는 힘껏 지금의 빈 마음에 서서히 차오를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술 밖으로 자유롭게 풀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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