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노동법도 모르고 인사제도를 기획한다고?
임금, 해고, 근로시간, 노동조합, 노사협의회 등 노동법에 대한 사항은 HR의 근간을 이룬다. 노동법을 무시하면서 HR운영을 하는 경우는 아주 예전에는 있었을 수 있으나, 요즘은 웬만한 중소기업만 되어도 법을 준수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법을 위반해서 형사 처벌받거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법을 준수하는 아주 기초적인 이야기 외에 HR 담당자에게 노동법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게 하는 것일까?
노동법의 사안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가진다.
먼저, 법은 최저기준이다. 그래서 준수해야 한다. 과거 인간답게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률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사회는 빠르게 변해가는데 법은 느리게 개정된다. 이 틈새를 판례들이 그나마 빠르게 치고 들어온다. 그런데, 순수 법리보다는 정치적이거나 편향적 시각에서의 판례들에 따라서 매우 선행적인 패턴을 가지기도 한다. 급진적으로 판례가 나오거나,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판례입법이 되기도 한다. (법은 그대로인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에 의해서 사실상 법률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판례입법이라고 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노동법을 판단하는 구조는 아주 간단하다. 주로 A를 B로 볼까? 말까?이다. 예를 들어서 출장 중 이동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볼까? 말까? 그래서 근로시간으로 보는 경우에는 이동시간에 미지급한 임금과 수당들이 지급되어야 한다. 안 주면? 임금체불이고 법률 위반이다.
그리고, HR담당자들은 노동법 중에서 개별적 근로관계법을 주로 다룰 텐데, 개별적 근로관계법은 다음과 같은 2개의 축으로 먼저 이해하면 간편하다. 바로 임금과 해고이다.
순수하게 임금으로 볼지 말지 임금이면 어떤 임금인지를 다루고, 임금이 지급되기 위한 계산 기준인 근로시간인지 아닌지? 휴가나 휴게나 휴일 등 근로시간이 과다하지 않게 법에서 규율하는 대목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근로시간을 투입하는데 너무 과도하면 안 되니 법이 이를 규율하는 형태이다.
다음으로 근로관계를 유지할지 종료할지 변경할지에 대한 부분이다. 제일 센 것이 해고이다. 해고를 당하거나 계약이 만료되면 그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임금이니 근로시간이니 등을 다룰 이유가 없다. 사람의 인생으로 따지면 사망이다. 해고보다 약한 순으로 휴직처럼 장기간 근로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징계를 당해서 정직 등 장기간 동안 근로제공을 막는 경우도 있고, 전출이나 전직처럼 회사에 대한 근로제공을 다른 부서에서 또는 다른 회사에서 하기도 한다. 결국, 임금과 해고의 2가지 축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슈들을 어떻게 법을 적용하고 누가 책임질 것인지를 다루게 되는 것이다. HR담당자들은 이 2가지 축에서 벌어지는 기본적인 법률 이슈들에 대해서 기본 지식을 가지고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회사에서 노동법률 위반 시의 특징들은 여러 가지의 모습을 가진다.
어떤 법률 쟁송이건 지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노동법의 주제들은 만약 회사가 법을 어기고 있었다면, 과거부터 비용을 절감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줄 돈을 안 주어서 법률적 이슈가 생긴다. 임금을 안 주는 경우도 그렇고, 근로시간에 대한 수당을 모자라게 주는 경우도 그렇다. 사실상 범법상황에서 수익을 누린 것이다. 물론, 알고도 그렇게 했는지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 몰라서 그렇게 하고 있었는지(과실)는 매우 큰 차이이다.
또한, 해당 주제가 직접고용의무 등의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장면도 있다. 법을 위반하였다가 바로 잡으려면 회사의 인원이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기준대로 사용하지 않고 편한 대로 활용하다가 ( 예) 도급계약을 맺은 협력사 인원을 원청사 마음대로 활용 등) 법적 제재에 의해서 직접 고용해야 한다.
그리고, 너무 억지 부리면 해결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분명히 알게 되는 시점이 있다. 그런데, 당장 돈이 들어가거나 사람이 늘어나니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 보려 한다. 현상을 조금 변경해 보거나 회피방안을 시도한다. 틀릴 거 뻔히 알면서 고집부리다가 늦어진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구성원들의 회사 신뢰도가 하락하고 노사관계가 악화되다가 결국은 회사가 법을 준수하면서 개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법률 위반 이슈는 기업 규모에 따라서 또는 사회적 관심사가 되는지에 따라서 그 양태가 매우 달라진다. 법 위반이 사회적 관심사에 놓이고 일개 회사가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매우 안 좋은 주제로. 언론이나 정치계에서의 관심은 그 사안의 배경과 본질보다는 이슈의 흥미도와 파급력에 달려있다. 따라서, 아무리 회사가 그 현실에서 벗어나려 해도 그 사안에 대한 흥미도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는 아무도 그냥 놔주지 않는다. 기업 이미지 좋았는데, 법률 위반 이슈로 사회적 낙인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는 경우는 많다.
그러면, 회사들이 법률 이슈를 해결해 주면 되지 왜 안 할까?
위에 이야기했던 돈 문제가 제일 크다. 이슈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럼 바로 개선할 수 있나? 그 해의 인건비 예산이 책정되어 있고 임금인상도 해야 하고 성과급도 주어야 한다. 그런데 개선 비용이 3년 치 임금인상액과 맞먹는다면 바로 개선할 수 있을까? 결국 그 해에는 개선하지 못하고 다시 다음 해도 넘긴다. 그러면, 다음 해에는 이런 예산을 미리 반영해 놓는가? 물론, 소송에 패소해서 떠안게 될 때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결국 그다음 해에도 자발적인 개선은 어렵게 된다. 사업이 매우 잘 될 때 이익을 털어내야 할 때 한번 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뿐. 그런데, 사업이 잘되면 구성원들은 성과급을 더 달라고 한다. 그래서 법률 이슈 개선 비용으로 쓸려고 해도 내부에서 눈치가 보인다. 사업이 어려울 때에는 임금이라도 조금 올려줘야 하니 돈이 없고, 사업이 잘되면 성과급 많이 줘야 하니 개선 못하고, 그러면 언제 개선해야 하지???
또한, 개선의 주체는 주로 그 회사의 스텝인데, 스텝보다 현업의 사업하는 쪽이 더 힘이 센 경우가 많다. 문제가 생긴 영역에 대해서 전사적으로 문제 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업본부 단위에서의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전사적인 문제의 경우에는 CEO, 본부 단위의 경우에는 본부장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그 회사 또는 본부의 당해연도 이익을 깎으면서 개선해야 한다. 년 단위 임원 계약 연장 체계인 대부분의 기업들에서 (심지어 CEO도 전문경영인인 상황에서) 당해연도 이익을 손해 보면서 개선하기는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와 구도 속에서 법률 이슈들을 바로 개선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