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8주 차 공군 보급병의 일기
일 년 전의 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아리 워크숍과 생일이 겹쳐 00시가 되자마자 케이크와 박수, 축하 노래를 받았고 웃음과 음주로 가득한 하루를 시작했다. 워크숍이 끝나고는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단란한 저녁 식사를 가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로 완벽한 하루였다.
지금의 내 옆에는 친구도 가족도 없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지 않았더라면 휴가를 나가서 내 사람들과 함께 있었을 텐데 세상은 꼭 한 번씩 나에게 슬프도록 야속하게 군다.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요즘은 MBTI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쉽게 설명하곤 하더라. 이를 한 번 활용해보자면 나의 MBTI는 ENFJ이다. 크게 시끄럽거나 활동적이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하고 또 이들이 주는 사랑과 관심의 힘으로 살아간다. 그런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떨어져 보내는 기념일은 오히려 고독을 느끼게까지 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사람들이 나를 잊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대놓고 나 오늘 생일이니 축하해달라는 식의 스토리를 게시했다. 예전에 지인 중 한 명이 이런 스토리를 올린 것을 보고 따라 해 봤는데 솔직히 그 지인의 스토리를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생일은 분명 축하받을 일이지만 축하를 강요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를 따라 하고 있다니..
이런 나의 부조화스러운 생각과 행동이 우스울 정도로 지인들은 따뜻한 답장을 보내주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람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도 받을 수 있었고 누군가는 이런 스토리를 올린 나를 센스쟁이라고 칭찬까지 해주었다. 난 행복함을 느끼면서도 한없이 초라해졌다. 군대에 갇힌 후 꾸준히 느꼈던 고독함과 우울함은 나를 자꾸 작아지게 만들었다.
나는 자존감이 정말 높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나를 잃어버렸다. 넘어져서 쓰라린 무릎을 움켜쥐고 있을 때 손을 내밀어준 것은 나와 비슷한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던 동기들이었다.
저녁으로 내가 좋아하는 BHC의 뿌링클과 치즈볼을 시켜 먹고 있을 때였다. 밥을 거의 먹었을 때쯤 나를 제외한 동기들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다.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리며 바깥세상 친구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았고 다시 복잡한 기분에 빠지곤 했다.
그러다 건조해진 눈을 잠시 감았다 떴을 때 내 눈앞에는 나뚜루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있었다. 너무 놀라 눈만 크게 뜨고 멀뚱멀뚱 동기들을 바라봤다. 그러다 살며시 왼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처음 이 비행단에 배속 온 날, 썩 기분 좋지 않은 경험을 했다. 내가 다니는 대학이 알려지자 대대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구경’하겠다며 생활관으로 찾아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는 자기들끼리 떠들었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벙뜬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이후로 난 이 비행단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 주지 못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기분 좋은 일이 있어도 어차피 1년 반 보고 말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생일에 어떻게든 휴가를 나가고 싶었던 것도 나의 친구는 밖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비행단에서의 첫 생일은 얼어붙어 있던 마음을 조금씩 녹이기 시작한 날이다. 너무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니까 나도 그대들이 힘들어할 때 손을 내밀어줄 것이다. 작년 생일보다 행복했다고는 못 하겠다. 아쉬운 마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다. 남은 1년 반을 어서 소모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남은 1년 반이 기대되게 만들어준 날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