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막연한 무력감을 느끼곤 해

근무 30주 차 공군 보급병의 일기

by 옆집 군대생

어느덧 입대한 지 300일이 넘었고 근무 30주 차에 접어들었다. 꾸준히 써보겠다고 다짐하며 문을 열었던 나의 브런치 서랍장에는 쓰다 만 글들만 묵묵히 쌓여간다. 오늘은 글쓰기 하는 날이 아니지만 갑작스레 무력감이 몰려왔고 지금의 감정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 브런치를 켜봤다.



나는 분명 열심히 살고 있다. 일과 중에는 나의 업무에 충실했고 비는 시간에는 독서도 했다. 퇴근 이후에는 바로 체련실로 달려가서 등과 삼두 운동을 했다. 운동을 끝내고는 단백질 셰이크와 해물맛 쌀국수로 저녁을 대체하고 코딩 공부를 하러 사지방(사이버 지식정보방)으로 갔다. 어제 못다 푼 문제의 풀이가 머릿속에 아른거려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생각했던 풀이대로 코드를 적어 내려 가다 느꼈다. ‘아 잘못짚었구나.’ 한 번 잘못 들어선 길은 문제 풀이에 대한 나의 욕구를 차게 식혔고 이미 굳어 버린 뇌를 억지로 굴리다 결국 구글에 정답을 검색했다. 바로 검색하지 말고 나중에 다시 풀었으면 더 좋을 뻔했다. 풀이를 읽어도 이미 식어버린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열정이 가득한 만큼 일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는다. 오늘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끄고 인스타그램을 켰다. 삼성으로 출근하는 형, 어제까지 네이버에서 연구하다가 오늘은 춤을 추는 누나, 학회에서 부서장을 맡아 리크루팅에 힘쓰는 친구, 팔로워가 3만 명이 넘고 누구나 다 아는 기업에게 협찬을 받는 인스타그래머 형. 평소에는 흐뭇하게 바라봤던 지인들의 희소식이 오늘만큼은 무거운 추가 되어 내 입꼬리 끝에 걸렸다.


행복이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누가 그러더라. 900만 원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800만 원 받는 이보다 600만 원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700만 원 받는 이가 더 행복하다는 어디 어디의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주변에 잘난 친구들이 많은 만큼 때때로 나는 못난 사람이 되곤 한다. 영화에서 보면 이런 날엔 꼭 커피를 바닥이나 옷에 흘리는 등 터무니없는 실수도 저지르곤 하던데 그런 사소한 사건이 우울함이 가득 든 풍선을 터트려 버린다. 지금 내가 그렇다.



아쉽게도 이런 고충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면 그들은 당연스럽게도 군대에게 핑계를 돌리곤 하더라. 갇혀 있는 환경이라 어쩔 수 없다고.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쉽게 남 탓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사실 이미 군대 탓은 할 대로 해서 지겨운 레퍼토리가 된 지 오래이다. 그냥 내 한계의 벽에 부딪힌 건데 벽의 이름을 ‘군대’라고 명명하고 도망치는 것 같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생각들은 한 번 시작되면 끝을 모르고 뿌리를 뻗는다. 분명 시작은 코딩이었는데 어느새 내 머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고 있다. 비교가 무서운 이유는 상대방의 장점과 나의 단점을 비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무서운 이유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비교를 멈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때때로 막연한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 날이면 이 무력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행복한 노래를 틀곤 했고 동기들의 장난에 웃음을 지어 보았다. 우울함에 휩싸여 글을 쓰다가도 어떻게든 행복한 결말을 쥐어짜 내서 결론을 만들어냈다. 오늘은 그러지 않아보려 한다. 내 감정이 담긴 손가락 끝에서 억지로 행복을 적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럴듯한 결론도 만들어 낼 생각 없다. 오늘의 나는 무력했고 찌질했으며 그 감정과 과정을 이 글에 실어보았다.




* 커버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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