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주변에서 아주 좋다는 사람도 있었고, 읽는 내내 기괴하고 불편했다는 사람도 있어서 읽기 전부터 '대체 어떻길래' 하는 기대와 두려움이 있었다. 읽고 나니 역시 기괴한 방식으로 불편함을 주는, 그렇지만 생각해 볼거리가 많은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식주의자는 '여성주의' 소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 -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아버지, 영혜의 동생 - 은 모두 때로는 폭력적이고, 가족에게 무관심하고, 가부장적인 사람들로 묘사된다. 이들의 폭력과 무관심에 고통받던 영혜가 채식을 하기로 선택하면서 저항하는 과정, 그리고 더해지는 폭력에 더욱 극단적인 섭식거부로 저항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묘사된 남자들의 폭력이, 때로는 일반 상식에서 보기에 엄청 불편한 묘사도 있고, 또 어떤 폭력은 폭력이라 하기도 애매하게 약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기에 그 강도가 어떻든, 그로 인해 영혜의 영혼은 계속 파괴되어 갔고, 식물이 되기를 희망하는, 식물이 되어간다고 믿는, 그리고 모든 음식물을 거부하는 단계까지 몰고 가게 된다.
영혜가 주인공임에도 영혜의 시선에서 감정 상태나 생각이 묘사되지는 않는다. 1장부터 3장까지 모두 영혜 주변인물의 시선에서, 때로는 가해자의 시선에서, 때로는 조력자의 시선에서 영혜의 변화를 관찰하고, 난감해하고, 이해해 가는 과정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혜를 직접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언니의 시선에서 영혜가 겪었을 고통을 간접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1장은 영혜의 남편의 시선이다. 그저 적당히 무색무취의 여자를 골라 결혼한 영혜의 남편. 그는 자신이 선택한 아내의 평범함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고,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저 사회생활하며 열심히 돈 벌고, 아내는 자신을 돕고, 내조하는 존재로 여긴다. 이런 그에게 어느 날 채식주의를 선택한 아내, 그리고 자신의 사회생활에도 협조적이지 않은 아내, 그리고 자살기도까지 한 아내는 견딜 수 없는 존재다. 그는 이혼을 택한다. 남편의 시각에서 보면, 영혜는 공감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만 일삼고 있다. 남편도 크게 문제가 있거나 거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아니다. 남편은 오히려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다. 고기를 거부하며 나날이 말라가는 아내를 누가 걱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데, 고기를 안 먹겠다는 영혜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고 하는 가족들, 그리고 성에 못 이겨 바로 뺨을 올려붙이는 아버지의 행동이 기괴하게 보인다. 사실 이런 가족에게 영혜는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지만, 남편은 고기를 먹이는 가족을 말리지 못하고 지켜보던 방관자, 아내의 상태가 어떤지 애정과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방관자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2장은 영혜의 형부의 시선이다. 이 자는 더 심각하다. 그는 직접 촬영한 것을 바탕으로 비디오아트를 하는 사람이다. 가장의 역할도, 육아도 살림도 아내가 도맡아서 하는데, 고마움을 느끼거나 어떤 노력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예술 표현에만 관심이 있다. 그 와중에 어느 날 꽂힌 예술이라는 게 바로 처제의 몽고반점이다. 그는 이 탐닉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오로지 그 생각만 한다. 자신은 신성한 예술이라고 여기지만, 사회적으로 누가 봐도 불륜과 외설이다. 자신의 예술적 성취(그것을 성취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를 위해서라면 사회적인 규율, 가족과의 신의,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 한다. 마침 처제는 섭식거부에 준하는 채식주의, 자해 등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치료까지 하면서 정신적으로 굉장히 쇠약해져 있다. 형부는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처제의 이런 약한 정신상태를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 예술로 포장된 잔인하고 거대한 폭력에, 처제도, 그의 아내도, 그의 가족이 모두 상처 입고 파탄의 지경에 이른다.
3장은 영혜의 언니의 시선이다. 영혜가 입원치료를 하면서 영혜의 언니가 영혜를 보살피면서, 영혜의 언니 시선에서 영혜를 공감하고 이해해 나간다. 어릴 때부터 있었던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에서, 집에 들어가지 말자고 했던 영혜를 떠올리면서, 그 지난하고 끝없는 폭력 속에서, 영혜가 택한 것은 자신을 파괴하는 방법으로 저항하기로 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영혜는 스스로 식물이 된다고 믿는, 의학적으로는 정신분열에 가까운 상태로 섭식거부를 해 나간다.
영혜의 저항 방법은 물론 기괴하다. 모두 어느 정도 폭력을 당하며 살지만 모두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사람마다 겪는 아픔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영혜의 저항이 기괴하다고 극단적이라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