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드라마 가운데 재미있게 본 두 편의 작품이 있습니다. <부부의 세계> 원작으로 알려진 <닥터 포스터>와 <빌어먹을 세상 따위>입니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드라마는 <빌어먹을 세상 따위>입니다. 찰스 포스먼의 그래픽 노블 <The End Of The F×××ing World>가 원작입니다. 왜 이 작품이 매력적으로 와닿았을까요? 물론 거부감을 가진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생리적으로 바른생활이 전부인 분들은 기이한 캐릭터와 도발적인 사건, 그리고 파격적인 대사를 받아들이는데 당연히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죠. 시즌1과 시즌2, 각각 8회씩 총 16회로 만들어진 드라마에 한번 낚이면 빠져나올 길이 없습니다. 마약처럼 짜릿합니다. 기계적인 일상에 길들여진 오감각이 확 깨어납니다. 사건이 워낙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핵심적인 사건 몇 개와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 소개해볼까 합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스토리 라인을 따라 정리해봅니다.
<제임스(알렉스 로더)와 앨리사(제시카 바든)>
주인공 제임스는 여덟 살 때 자신한테는 유머 감각과 감정이 없다는 걸 깨달은 아이입니다. 아버지의 아재 개그에 기분이 상해 면상에 펀치를 날리고 싶어 하죠. 늘 자신은 감정이 없다고 여겨 뭔가를 느끼기 위해 나비, 참새, 박쥐, 병아리, 고양이, 고슴도치까지 죽여 봅니다. 여전히 감정을 느끼지 못해 나중에는 튀김용 냄비에 자신의 손을 푹 담그기까지 하죠. 화상만 입은 채 감정이 없다는 걸 확인합니다. 결국 더 큰 걸 죽여보기로 합니다. 사람이죠. 제임스에게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일종의 사냥터죠. 죽일 사냥감을 찾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감이 스스로 다가왔습니다. 앨리사죠. 앨리사는 죽을 때 어떤 소리를 낼까? 제임스는 그게 궁금합니다. 앨리사는 제임스에게 유일한 삶의 목표물이자 희망이 됩니다. 그렇게 둘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앨리사도 만만한 소녀가 아닙니다. 아주 까칠하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아이입니다. 재혼한 어머니에 대한 반항과 새아빠에 대한 거부감으로 마음 둘 곳이 없을 때 제임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첫 만남도 산뜻합니다. 너 보드 졸라 못 타더라.는 앨리사의 말에 뻑큐!로 화답합니다.
S#. 제임스가 사냥용 칼로 앨리사를 죽이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앨리사는 제임스를 편안하게 느끼고, 사랑에 빠질 거란 예감에 사로잡힙니다. 앨리사는 제임스에게 재미없고 지겨운 마을을 함께 떠나자고 합니다. 제임스의 목표가 잠시 이동하면서 미루어집니다.
S#. 제임스는 늘 해보고 싶었던 아버지의 턱을 한방 먹이고, 차까지 훔쳐 앨리사와 도주를 시작합니다. 신난 앨리사가 묻죠. 자유의 향기가 뭐와 비슷한지 아냐? 뭔데? 소똥 냄새!
S#. 앨리사가 달리는 차 안에서 카섹스를 해보자고 하자고 제의합니다. 제임스가 웃옷을 벗고 시도하다가 차가 길가의 가로수를 들이박고 박살 납니다. 차에서 내린 뒤 제임스가 말하죠. 폭발하지 않을까? 앨리스는 콧방귀를 뀝니다. 영화 찍냐! 이내 차는 꽝! 불길에 휩싸입니다.
S#. 제임스가 바지만 입은 채 맨가슴으로 히치하이킹을 할 때 앨리사가 말하죠. 어떤 미친놈이 태워주겠냐? 하지만 이내 이상한 아저씨가 그들 앞에 차를 세웁니다. 과잉 친절은 불순한 의도를 숨기기 위한 것. 앨리사는 아저씨가 화장실에서 제임스에게 헛짓거리 하는 것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죠.
S#. 제임스와 앨리사가 모텔에 묵었다가 체크 아웃할 때 추가 요금을 지불하는데 종업원이 앨리사의 돈을 보고 현금이 많구나, 하자 은행을 털었거든요. 시크하게 대꾸해줍니다.
S#. 둘은 걷다가 한적한 곳의 저택으로 들어갑니다. 사람도 없고, CCTV도 없습니다. 집안에서 음식과 음악, 그리고 춤으로 광란의 시간을 보내게 되죠. 제임스는 여전히 앨리사를 죽일 기회만 엿봅니다. 그때 불쑥 주인인 클라이브 교수가 들어오자 제임스는 앨리사가 누워있는 침대 밑으로 몸을 숨깁니다. 이미 수많은 제자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성폭행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사디스트 클라이브 교수는 앨리사에게 혼자냐고 묻고는 이내 성폭행을 시도합니다. 너 처녀냐? 물으면서 폭력을 가하는 클라이브 교수. 침대 밑에 있던 제임스가 사냥용 칼로 교수의 목을 단번에 베어 버립니다.
이를 사건을 기점으로 앨리사의 목표는 친아빠를 찾아가는 것이고, 제임스는 앨리스와 동행하게 됩니다. 이혼을 한 뒤에도 앨리사 생일에 맞춰 축하카드를 보내준 다정한 친아빠. 당연히 그리울 수밖에 없죠. 제임스와 앨리사에 대한 경찰의 추적이 시작됩니다. 클라이브 교수 살해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본 앨리사는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고, 제임스를 막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제임스는 그녀를 구해주려고 살인한 건데 그걸 몰라주는 앨리사가 야속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다가 헤어지게 됩니다. 제임스는 헤어진 뒤에야 앨리사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제임스는 감정이 없는 아이가 아니었던 겁니다.
S#. 혼자 남은 제임스는 낯선 청년들에게 돈을 주며 부탁합니다. 자신을 폭행해 달라고.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서 트라랄라가 사랑 때문에 좌절해 말 같은 사내들에게 스스로 성폭행을 당하는 것만큼 충격으로 와닿습니다.
S#. 앨리사는 쇼핑몰에서 팬티를 훔치다가 경비한테 걸렸지만 미아가 발생한 사건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서 도망칩니다. 그런데 도로에서 바로 미아를 보게 되죠. 그 아이를 데리고 스스로 경비한테 찾아가 두 팔을 내밉니다. 경비는 수갑 대신 먹던 과자를 주며 앞으로 도둑질하지 말라 충고하고는 보내줍니다. 그래도 앨리사는 슬쩍 브래지어 하나를 챙겨 넣는 센스를 보여주죠.
S#. 앨리사는 자신이 내친 제임스가 마음에 걸려 혹시나 싶어 그와 헤어졌던 식당으로 갑니다. 제임스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죠. 앨리사는 전에는 꺼려했던 튀김용 냄비에 넣어 흉한 상흔이 있는 제임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줍니다. 이제 마음이 서로 통한 거죠.
S#. 우여곡절 앨리사의 친아빠를 찾는 데 성공합니다. 근데 친아빠는 쓰레기입니다. TV에서 형사들이 제임스와 앨리사를 쫓고 있다는 걸 알게 되죠. 현상금이 붙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군침을 흘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일마다 앨리스에게 생일 축하카드를 보낸 준 건 친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대신 보내준 것이었습니다. 결국 경찰들이 포위망을 좁혀옵니다. 피할 틈이 없습니다. 제임스가 결단을 내립니다. 앨리사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앨리사를 인질로 잡고 있었다는 것처럼 상황을 꾸밉니다. 그리고 제임스는 혼자 도주를 하다가 경찰이 쏜 총을 맞고 쓰러집니다. 앨리사는 통곡을 하고 제임스는 눈을 감죠.
여기까지가 <빌어먹을 세상 따위> 시즌1입니다. 제임스와 앨리사가 만나서 가출하고 살인을 하며 도주를 하다가 끝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으로 시즌1이 막을 내립니다.
<앨리사(제시카 바든) >
<빌어먹을 세상 따위> 시즌2는 새로운 인물 보니로부터 시작됩니다.
S#. 나이프를 사는 보니에게 고등학교 동창인 점원이 졸업한 뒤 아직까지 뭐 했느냐고 묻습니다. 감옥. 사람을 죽였어. 이제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극적 흥미를 유발하는 시크한 답변입니다. 보니에게 집중하지 않을 수 없죠.
보니는 엄마의 폭력적인 강요와 일방적인 교육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입니다. 그런 엄마 때문에 아빠도 우유를 사러 간다고 말한 뒤 집을 나가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보니는 점차 엄마의 일그러진 교육방식에 대해 가짜 성적표를 만드는 속임수로 응수합니다. 결손 가정에서 외로움을 겪는 보니에게 클라이브 교수는 구세주처럼 나타납니다. 도서관 사서 직원으로 자신의 수업을 듣는 가짜 대학생 보니에게 청강을 묵인해주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과 술을 마셔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웁니다. 보니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클라이브 교수 집을 드나들게 되죠. 정해진 시간이 아닌 때 집에 갔다가 다른 여학생과 밀회를 즐기는 교수를 보자 보니는 폭발하게 됩니다. 교수는 학점 때문에 일방적으로 자신을 스토킹 하는 여학생이라고 둘러댑니다. 보니는 교수를 위해서 그 여학생을 차로 들이받아 죽이게 되죠. 살인죄로 감옥에 갇힌 보니는 교수의 사랑이 암시된 글귀가 적힌 저서를 받게 되죠. 사랑을 만난 거죠. 그런데 교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보니의 목표는 클라이브를 죽인 제임스와 앨리사를 찾아 죽이는 겁니다.
S#. 시즌1에서 경찰의 총을 맞은 제임스는 죽지 않고 치료를 받아 살아납니다. 정상참작이 되어 중형을 면하고 재활할 때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죽게 되죠. 앨리사 엄마는 새아빠와 이혼을 하고, 제임스를 찾아와 더 이상 앨리사를 만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앨리사에게 독한 내용의 편지를 쓰게 하죠.
S#. 제임스와 앨리사는 보니가 보낸 살해 협박의 총알을 받게 됩니다. 앨리사는 총알에 자신의 이름의 철자를 잘못 썼다(ALYSSA를 ALYSA로 표기)고 쿨하게 쓰레기통에 버리지만 제임스는 앨리사가 걱정돼 그녀를 찾아 나섭니다.
S#. 앨리사는 엄마와 함께 이모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을 도우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남자 친구도 만났고, 결혼 날짜까지 잡습니다. 그 결혼 전날 앨리사는 카페 주위에서 자신은 지켜보는 제임스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식 날 <졸업>의 더스틴 호프만과 캐서린 로스처럼 도망을 치죠. 차를 타고 갈 때 히치하이킹을 하는 여자를 태워주는데 그녀가 바로 보니입니다. 우연이 아니라 보니가 짠 계획대로 된 겁니다.
S#. 제임스와 앨리사, 그리고 보니. 세 사람의 긴장된 심리와 미묘한 행동이 시즌2의 핵심입니다. 제임스와 앨리사를 살해하려는 목적을 가진 보니, 웨딩드레스를 입을 채 결혼식장을 뛰쳐나온 앨리사의 복잡한 심리, 앨리사에게 사랑을 고백하려는 제임스. 이 세 인물의 같은 차를 타고 다니고, 모텔에 숙박을 하면서 겪는 사건이 절정을 향해 치닫습니다.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모텔 주인의 기이한 행동과 선한 의도를 가지고 보니를 도와주려고 하지만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해 굴욕을 당하는 약사의 캐릭터도 재미를 더합니다.
결국 보니가 앨리사를 카페에서 죽이려고 하지만 제임스 때문에 실패하면서 사건은 마무리가 되지만 앨리사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자취를 감추게 되죠. 제임스가 앨리사를 찾아 나섭니다. 그들이 처음 사건을 일으킨 곳. 클라이브 교수 집에서 다시 만나게 되죠.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며, 서로를 위로합니다. 이제 아이에서 어른으로 들어서는 이니세이션처럼 느껴집니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가 성공을 거둔 요인으로는 첫째, 좋은 원작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좋은 원작에 나쁜 대본은 있을 수 있지만 나쁜 원작에 좋은 대본은 불가능합니다. 둘째, 치밀한 구성과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내레이션과 사건이 유기적으로 잘 짜여 극의 흐름이 진행됩니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내뱉는 도발적인 대사도 빼놓을 수 없죠. 특히 시즌2에서 원작에 없는 새로운 인물 보니가 등장했음에도 시즌1의 서사가 일관되게 유지되며, 긴장감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게 놀랍습니다. 작가의 능력이겠죠.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메시지는 문제적인 인물을 통해 모순과 위선으로 가득 찬 비정상적인 세상을 후벼 파는 겁니다. 작품을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성기게나마 요약을 해드렸는데 정말 보게 된다면 훨씬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익숙한 노래들이 귀를 즐겁게 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