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망의 덫, 금이나 비트코인이나 마찬가지
매튜 맥커너히, 그의 연기는 마력에 가깝습니다. 그의 표정과 연기를 보는 순간 관객은 그가 이끄는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온몸이 저릿한 우주여행을 하게 되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는 관객 자신이 마치 에이즈 환자가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되죠.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속물적 변호사에 동화되는 이율배반적 반응이 나타나고, <U-571>에서는 잠수함의 안에서 죽음에 대한 극한의 공포와 전율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건 바로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 때문입니다.
영화 <GOLD>는 금에 미쳐있는 사나이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GOLD>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서사입니다. 주인공 케니 웰즈(매튜 맥커너히)는 탐광자입니다. 땅속을 파헤쳐 광맥을 찾는 일에 인생을 바친 건 증조부와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그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죠. 케니는 자나 깨나 ‘금의 부르심’을 듣지만 그게 현실은 아니었습니다. 현실은 언제나 실패였죠. 케니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거의 폐인으로 전락했을 때, 마지막 승부를 겁니다. 인도네시아로 가서 마이크 아코스타(에드가 라미레즈)를 만납니다. 마이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구리맥을 발견한 전설적인 지질학자이면서 탐광자였죠. 그는 여전히 인도네시아의 밀림 속에서 금맥을 찾고 있는 중이었죠.
우여곡절을 겪을 뒤, 케니는 마이크와 동업을 하게 됩니다. 케니는 마이크의 스토리를 투자자들에게 팔기 시작합니다. 마이크가 요구했던 투자금의 1/3도 안 되는 금액을 간신히 마련해서 장비를 구입하고, 현지인을 고용해서 시추를 합니다. 시료 채취를 해서 분석실로 보내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습니다. 돈이 다 떨어지자 현지인 노동자들이 떠나기 시작합니다. 케니는 그의 카드에 남아 있는 코끼리 비스킷 정도의 현금을 마이크에게 건넵니다. 숨이 끊어져가는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꽂은 인공호흡기 같은 것이었죠. 그런 와중에 케니는 말라리아에 걸려 생사를 넘나듭니다. 마이크는 현지인 개개인을 찾아다니며 인정에 호소하고, 정수 여과장치를 만들어 그들이 원하는 깨끗한 물을 먹게 해 줍니다. 그로 인해 현장을 떠났던 인부들이 돌아오고, 케니도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신을 차려보니 낭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료 분석을 한 결과, 금맥을 잡은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갑니다. 미국에서 투자자들이 모여듭니다. 과거에 야멸치게 투자를 거절했던 메이저 투자사도 참여의사를 밝힙니다.
마이크도 미국에 직접 와서 투자자들 앞에 서서 자신의 철학을 말합니다.
“금을 찾는 일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가. 표현이 안 돼요. 혀끝에 맛이 느껴지고, 손가락 사이에 짜릿한 느낌이 오죠. 마약 같은 겁니다. 중독이 되니까. 이곳 도시에서는 절대 알 수 없죠.”
메이저 투자사에서는 현지에 전문가를 파견해서 실사를 합니다. 이런 게 운이랄까요? 현지에 파견된 전문가들은 직접 눈으로 금 알갱이를 보게 됩니다. 그를 토대로 보고서가 작성된 뒤 파산상태이고, 빚만 남았던 케니의 회사 ‘워쇼 채광’은 뉴욕 증권거래소에 신규상장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금맥을 잡은 거죠. 케니와 마이크는 돈벼락을 맞게 된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뉴포트 홀딩스가 케니에게 3억 달러를 주겠다고 하면서 사업의 주도권을 넘기라는 거였죠. 케니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꿈을 팔아버리면 뭐가 남겠어요.”
마이크마저도 그런 케니가 미쳤다고 목소리를 높이죠. 그때 마이크는 케니에게 비밀 하나를 털어놓습니다. 전설의 구리맥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였죠. 보크사이트를 찾으러 갔을 때 비가 오는 바람에 진흙구렁에 빠져 꼼짝 못 할 때, 그냥 있을 수가 없어 그곳을 팠는데 거기서 구리맥을 발견하게 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의 목적은 구리맥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 우연히 구리맥을 찾아 전설이 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게 그렇죠. 마이크가 보크사이트대신 구리맥을 찾은 것처럼 어쩌면 케니는 금대신 친구 마이크를 만난 건지도 모르죠.
어쨌든 일이 잘 되는가 싶었는데 뉴포트 홀딩스는 케니와 마이크를 제쳐놓고 인도네시아 정부를 상대로 직접 탐광사업을 펼칩니다. 케니와 마이크는 사업에서 제외되죠. 빈손이 될 지경이었을 때, 케니와 마이크는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 막내아들 대니를 동업자로 끌어들여 뉴포트 홀딩스를 한방 먹입니다. 월가에서 다시 케니의 회사인 ‘워쇼 채광’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습니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 아들 대니와 케니가 딜을 할 때, 대니가 내세운 조건은 케니에게 호랑이 사육장 안으로 들어가 호랑이를 맨손으로 만져보라는 것이었죠. 간담을 시험한 것이었고, 그야말로 미친 요구였지만 벼랑 끝에 몰린 케니가 그걸 받아들여 호랑이 사육장 안으로 들어가 맨손으로 호랑이를 쓰담쓰담하죠. 오히려 놀라는 건 대니였습니다.
‘워쇼 채광’의 주가는 치솟고, 대니와 마이크는 돈벼락을 맞게 됩니다. 거기다 케니는 국립 탄광협회에서 수여하는 황금곡괭이 상을 받게 됩니다. 세계 최고의 광산업자로 인정을 받은 거죠.
케니가 트로피를 들고 담담한 표정으로 수상 소감을 말합니다.
“탐광자란 뭘까요? 거기에 있다는 걸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죠. 매일 아침 일어나서 믿고, 또 믿고 거기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런데 없으면? 없으면? 사막 끝에 서서 새로운 날의 일출을 바라보면서 가슴속에 울리는 목소리를 듣죠. 그 목소리가 말하길 ‘계속 가!’ ‘계속 걸어가!’ 땡볕이 내리쬐고 몸은 뜨거운데 마실 물은 없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돌아가자 하고 결국은 모두들 돌아가 버리고 혼자 남게 되죠. 하지만 그 믿는, 거기에 있다는 믿음. ‘거기에 있다’ 그게 바로 탐광자입니다. 탐광자죠.”
수상 소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이크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수상식장을 빠져나가고, 결국 일이 터져 버립니다. 인도네시아의 현장에서 채취된 시료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경제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워쇼 채광’의 상장이 폐지되고,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합니다. 하루 아침애 케니는 사기꾼이 되고, 범죄혐의를 받아 FBI의 조사까지 받게 됩니다. FBI 조사를 받으면서 마이크는 주식을 미리 처분해서 1억 7천만 달러를 가지고 사라졌고, 수하트토 대통령의 아들 대니도 사고가 나기 전에 주식을 처분해 떼돈을 번 것을 알게 됩니다. 멍청하게 케니만 몰랐던 거죠. 매스컴에서는 연일 뉴스로 보도되고, 전문가는 뼈 때리는 한마디 내뱉습니다
“(투자사는)속은 게 아닙니다. (현장과 시료를 제대로)보지도 않은 거죠.”
현장을 면밀히 살피지도 않고, 분위기에 휘말려 피해를 입은 거란 말이었습니다. 사실 케니도 얻은 게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매스컴에서도 ‘케니 웰즈는 바보인가? 배후인가?’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FBI 조사관은 케니의 진술을 들으면서 그가 의도적으로 속인 게 아니란 판단을 내립니다. 진술을 끝내고 나온 케니는 갈 곳이 없어, 헤어졌던 아내의 집을 찾아갑니다. 이젠 가진 게 하나도 없는 빈털터리가 된 거죠. 케니가 아내에게 준 건 꽃한송이였습니다. 아내는 케니에게 온 우편물을 건네줍니다. 우편물 중에는 동업자였던 마이크가 보낸 편지가 있었습니다. 케니가 그걸 뜯습니다. 그 안에서 나온 건 케니가 마이크에게 처음 만났을 때, 냅킨에 써줬던 계약서였습니다.
그들이 틀린 걸 증명해.
50 대 50
그리고 지브롤터 은행 수표 82,000,000 달러짜리가 들어있었습니다. 묘한 표정을 짓는 케니.
<GOLD>의 인상적인 장면 몇 가지
첫째, 클래식한 플래시백 수법을 썼다는 점입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케니의 내레이션이 시작되죠.
“우린 진짜 거물이었어요.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린 잘 나가는 기업이었죠. 국가의 중추가 되는 기업.”
관객은 이 내레이션이 FBI 요원에게 진술하는 것이라는 걸 영화 후반부에 가서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과거와 현재를 교묘하게 교차시켜 관객은 모든 장면이 마치 현재적 시간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로 알고 있다가 FBI 요원에게 진술하는 장면이 나온 뒤에야 첫 장면의 내레이션이 시작된 뒤 모든 게 과거회상이었다는 걸 알게 되죠. 워낙 자연스럽게 처리해서 그걸 눈치채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둘째, 8천 2백만 달러 수표를 받아 든 케니의 라스트 씬. 반전이긴 하지만 케니와 마이크가 사기꾼이라기보다 일확천금의 욕망에 눈먼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든 함정에 스스로 빠져든 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빠져 있는 비트코인도 그런 게 아닌지.
셋째, 케니의 팔뚝에 있는 타투. 새(Bird)의 의미를 어릴 때 읽은 시에 나온 새라며 말하죠.
“발 없는 새가 바람에 앉아 잠 들었네.”
<아비정전>의 장국영의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이 새는 나는 것 이외는 알지 못해. 날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새가 뭘 의미하는 걸까요? 새의 등가물로 여겨지는 장면들이 영화에 지속적으로 나옵니다. 푸른 하늘, 헬리콥터, 황금, 그리고 케니가 바닥에 추락했을 때 올려다 본 하늘에 떠있는 새. 인간의 욕망과 맞닿아 있는 열망. 새가 살아있는 한 날개 짓을 하듯 인간의 욕망도 끊어낼 수 없다는 메시지로 읽혔습니다. 욕망은 삶의 에너지이면서 동시에 파멸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육신이 사라지면 욕망도 없어지겠죠.
넷째, 케니의 똥배와 흰 삼각팬티가 압권입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속물적인 본성은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도 케니의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욕망이 내 욕망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리의 욕망을 실현해줬다는 점에서 그는 내 욕망의 화신입니다.
다섯째, 상처는 단순히 흉터가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고, 고민했던 무늬죠. 케니가 겪은 황금에 대한 욕망의 흔적, 고민했던 무늬를 잠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당신의 욕망은 무사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