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Once>가 주는 감동
몇 번을 봐도 참 좋은 영화입니다. 판타지 버블시대에 뮤지션의 삶과 사랑을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아일랜드의 더블린. 칙칙하게 어두운 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버스커인 그(Glen Hansard). Big Issue(노숙자 같은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잡지. 서울 지하철 입구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음)를 팔다 그의 노래를 듣는 그녀(Marketa Irglova). 그녀는 체코에서 왔고, 남편과는 별거 중이며, 노모와 함께 딸을 키우고 있죠. 거리에서 꽃을 팔기도 하고, 파트타임으로 가정부 일도 합니다. 그녀가 그의 노래에 관심을 가진 건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입니다. 집에 전화도, 피아노가 없는 가난한 피아니스트였죠.
그녀가 얼마나 가난한지 한 대사로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그가 그녀에게 묻습니다.
“배고파요?”
“항상 배고프죠.”
음악에 대한 관심사로 인해 두 사람은 만나게 됩니다. 거기다 그는 그녀의 고장 난 진공청소기를 청소기를 고쳐주죠. 그의 아버지가 진공청소기 수리센터를 하고 있었기에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진공청소기를 고쳐준 뒤, 모든 남자들이 그렇듯 그도 너무 외로운 나머지 그녀에게 불쑥 뜨거운 제의를 합니다.
“자고 가.”
벼락 맞은 표정을 짓는 그녀. 그는 뒤늦게 자책을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죠. 그는 그녀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은 거리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는 그녀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만남을 이어가게 되죠.
그녀가 그를 데리고 악기점으로 갑니다. 그녀가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죠. 피아노가 없는 피아니스트. 그녀는 가난했지만 피아노에 대한 애착은 변함없습니다. 그는 그녀가 행복하게 피아노 치는 걸 보며 묻습니다.
“자작곡인가요?”
“멘델스존 곡이에요.”
악기점에서 그는 기타를 치고, 그녀는 피아노를 치며 ‘Falling Slowly’의 화음을 맞추죠. 영혼으로 지어낸 멜로디, 진실의 마음을 담아낸 가사가 진하게 가슴에 울립니다.
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All the more for that
(나는 너를 몰라 그러나 너를 알고 싶어 당신을 너무 원해)
Words fall through me and always fool me And I can't react
(할 말이 많지만 항상 바보가 돼 어찌할 줄 몰라)
And games that never amount To more than they're meant
(끝낼 수 없는 게임 그런 게임은 우리를 힘들게 해)
Take this sinking boat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가라앉는 배를 붙잡고 고향으로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어)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You made it now
(희망의 목소리를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어 이제 해낼 수 있어)
Falling slowly Eyes that know me And I can't go back
(천천히 스며들어 날 아는 눈으로 이제 돌아갈 수 없어)
And moods that take me erase me And i'm painted black
(나를 사로잡는 기분이 나를 없애 난 흐릿해지지)
You have suffered enough You warred it your self It's time that you won
(당신은 충분히 고통 받았어 스스로 헤쳐 나갔지 당신이 이긴 순간이야)
Take this sinking boat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가라앉는 배를 붙잡고 고향으로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어)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You made it now
(희망의 목소리를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어 이제 해낼 수 있어)
Falling Slowly Sing your melody I will sing along
(천천히 스며들어 당신의 음악을 부르며 나도 같이 부를 거야)
I paid the cost too late Now you're gone
(너무 늦게 대가를 치렀어 이제 너는 없어)
그와 그녀는 더욱 가까워지죠. 그녀는 정말 가난했습니다. 그녀의 주변 모두가 가난이었죠. TV가 없어서 그녀의 집으로 TV를 보러오는 이웃 사내들. 그녀의 어머니와 딸. 체코에 있는 남편. 모두가 가난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그녀는 피아노를 사랑합니다.
그가 더블린를 떠나 런던으로 가서 가수의 꿈을 펼치려는 계획을 그녀에게 말합니다. 그가 함께 가자고 제의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현실이 있었기에 동행할 수 없었죠. 하지만 그를 위해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걸 도와줍니다.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는데 그녀는 잠재적인 비즈니스 능력을 발휘하고, 스튜디오를 빌리는데 비용을 후려쳐 깎는 놀라운 수완도 보여줍니다.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밴드에게 도움을 청해 그들과 함께 연습한 뒤 녹음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도, 그녀도, 버스킹을 하는 밴드도 녹음은 처음이었죠.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던 PD도 그들을 또라이로 취급할 정도였죠. 믹서(Mixer) 데스크에서 그들이 노래를 하든 말든 심드렁하게 타블로이드 신문에 시선을 박고 있던 PD는 스튜디오 안에서 그들이 노래를 시작하자 이내 표정이 변합니다. 신문을 내던지고 컨트롤 키를 조정하고, 밸런스를 맞추기 시작합니다. 녹음을 다 끝냈을 때 PD는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그에게 묻습니다.
“훌륭해. 당신 곡이오?”
그의 노래에 반한 PD는 녹음이 잘 됐는지는 차에서 들어봐야 한다며 그들을 모두 자신의 차에 태우고, 바닷가로 향하죠. 최상의 CD가 탄생된 순간입니다. 바닷가에서 그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에서 기쁨과 희망, 기대 같은 게 흘러넘칩니다.
PD와 헤어지고, 그와 그녀만 거리에 남습니다. 그가 그녀와 헤어지는 걸 아쉬워합니다.
“마지막 날이니 우리 집에 가서 차나 한 잔 마시자. 아님 아침이나 같이 먹던지. 저녁 때 와도 좋고.”
“뭐 하려고?”
“이대로 헤어지긴 아쉽잖아.”
“할일도 없잖아요. 같이 있어봐야 불장난만 하게 될 텐데.”
그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그에게 웃으며 묻죠.
“왜요?”
“불장난이라…… 그런 일 없어.”
“그렇게 돼요. 그러고 싶거든요.”
“정말?”
“무척, 하지만 부질없죠.”
“저녁에 와.”
“갈게요. 이따 갈게요.”
그녀는 결국 오지 않죠. 그래도 그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노래를 들려주고, 런던으로 갈 계획을 밝힙니다. 아버지는 평생 모아놓은 돈을 그에게 주죠. 이제 네 꿈을 펼칠 때가 됐다고 격려까지 해줍니다. 그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그녀는 일하러 가고 없습니다. 그의 어머니와 딸에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는 공항으로 가기 전에 그녀가 가끔 들러 피아노 치는 악기점으로 향합니다. 그녀가 가지고 싶어 했던 피아노를 사죠.
그녀의 집으로 피아노가 배달됩니다. 피아노를 본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원스>의 인상적인 장면들
첫째, <오거스트 러쉬>처럼 극적인 서사도 없고,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가 출연한 <스타 이즈 본>처럼 찐한 로맨스도 없지만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인공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맛의 영화라고나 할까요. 존 카니 감독의 또 다른 영화인 <비긴 어게인>과도 많이 다릅니다. <비긴 어게인>을 생각하고 보게 되면 실망합니다. <비긴 어게인>이 인생을 지나치게 포샵한 영화라면 <원스>는 리얼하게 인생과 음악을 보여줍니다. <비긴 어게인>은 캐스팅부터 차원이 다르죠. 키이라 나이틀리, 아담 리바인, 마크 러팔로, 헤일리 스테인펠드. 씨 로 그린, 캐서린 키너 등. 그야말로 호화 캐스팅. 이에 비해 <원스>는 글렌 한사드와 마르케타 이글로바, 거의 무명에 가깝죠. 하지만 연기는 명품입니다.
둘째, 화면이 전반적으로 어둡고, 카메라도 흔들립니다. 그게 아일랜드의 사회적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잉글랜드에 지배를 받고 있었으니까요. 문학이나 음악에서 저항적 기질이 드러나는 건 당연합니다. 아일랜드 출신 가수를 보면 어딘지 모르게 색깔이 뚜렷합니다. Gary Moore, Damien Rice, Westlife, Kodaline의 Steve Garrigan, U2의 Bono, Sinéad O'Connor, The Cranberries의 Dolores O'Riordan, The Script의 Danny O'Donoghue가 아일랜드 출신입니다. 그들도 유명한 가수가 되기 전에는 <원스>의 그처럼 무명이었을 테고, 포기하지 않았기에 꿈을 이룬 것이겠죠. 결국 <원스>는 미래의 데미안 라이스나 데니 오도노휴가 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이면서 헌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셋째, 그녀가 고장난 진공청소기를 질질 끌고 다니는 장면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누구에게나 고장난 진공청소기 하나쯤은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의 갈등, 연인과 헤어짐, 건강을 잃거나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것, 아니면 허무주의나 정신적 상실감에 빠져있는 게 고장난 진공청소기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넷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던 중 잠시 휴식 시간,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그녀가 작곡한 곡을 들려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녀는 미완성 곡이라고 잠시 망설이지만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오늘 밤에 언덕에 올라 눈을 감고 기도해요
어리석은 실수 그만하고 이제 현명해지기를
조금만 더 인내해줘요
부족한 거 알아요 난 아직도 배우고 있죠
미안해요 당신에게 이런 약한 모습 보여서
나의 천사는 어디 있나요?
내가 우는 게 안 보이나요?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당신도 모르진 않겠죠
당신을 기쁘게 해주려 난 자신을 바렸어요
부디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난……”
노랫말이 가슴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다섯째, 그가 아버지의 애마인 오토바이를 몰래 끌고 와서 그녀를 태우고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마치 중2학생처럼 귀엽고, 유머가 있습니다. 운전 한번 해보자고 조르는 그녀와 아버지가 아끼는 거라 걸리면 죽는다며 안 된다고 말리는 그. 그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뺏으려고 하지만 정작 열쇠는 그녀가 타고 있는 오토바이에 꽂혀 있었죠. 존 카니 감독은 유머까지도 과장하지 않습니다. 맹맹하지만 심쿵한 맛이 있다고나 할까.
여섯째, 그녀가 그에게 남편과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생각도 다르지만 딸을 위해선 아빠가 필요하고, 자신도 노력해 보겠다고 말하는데요. 그녀가 결혼을 했던 이유도 사랑보다는 임신한 사실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었죠. 그가 그녀에게 체코어로 ‘그를 사랑해?’를 어떻게 말하냐고 묻습니다.
“일루 에흐 셔?”
그가 그녀에게 묻죠.
“일루 에셔?”
그녀가 대답합니다.
“밀루유 떼베.”
자막으로 번역이 되지 않아 궁금해서 ‘밀루유 떼베’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았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이미 그녀는 그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여섯째, 그가 런던으로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선물로 보낸 피아노와 피아노를 받고 웃음을 짓는 그녀는 표정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사랑하지만 각자의 현실이 있었기에 선을 넘지 않고, 마음으로만 서로를 보듬는 애틋함이 더 뭉클하게 합니다. 칙칙했던 거리와 아파트 단지에 환한 햇빛이 가득합니다.
음악은 세상을 움직이는 좋은 에너지입니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