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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May 17. 2023

인생을 비교하면 루저가 된다

-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어쩌다 문득 남들은 모두 앞으로 달려가는데 자신만 낙오된 삶을 사는 것 같은 우울한 상념에 빠질 때가 있죠. 주인공 브래드(벤 스틸러)가 그랬습니다.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브래드는 가장 아끼던 부하직원이 그만두면서 자신에게 했던 말이 가슴에 걸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가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남한테 기부를 부탁하는 일을 할수록 우울해지는데 이럴 바에야 자신이 금융업계에 취직해서 돈을 벌어 기부를 많이 하겠다는 거였죠. 그 말이 계속 떠올라 우울해지죠. 자신의 인생을 생각해 보니 아들은 대학입학을 앞뒀고, 이루어놓은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밀물 듯이 몰려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잠에 빠져 있는 아내 멜라니(제나 피셔)에게 뜬금없이 장인이 사는 집이 얼마나 갈까?라고 묻죠. 장인이 죽으면 어차피 당신이 상속받을 게 아니냐, 라면서 요. 사회에 기부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버럭 신경질을 내죠. 비영리단체에서 기부를 받아 어려운 사람을 돕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립니다. 잠은 계속 오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고, 나아질 가망은 없으니 우울한 늪에 점점 더 빠져듭니다.



  인생을 비교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지만 브래드는 요즘 잘 나가는 대학 친구 몇 명을 떠올립니다. 전용기를 타고 다니며 사업하는 헤지펀드사 대표, 할리우드에서 성공해서 열정적으로 방탕한 삶을 사는 영화감독, IT 회사를 정리하고 하와이에서 젊은 두 여자와 서핑-섹스-서핑으로 하루를 보내는 갑부, 백악관 참모에, 베스트셀러 작가에 명망을 누리는 교수. 그들에게 세상은 전장이 아니라 놀이터이고, 꿈이죠. 그들은 땅으로 내려온 천국에서 사는 겁니다.

  그들의 삶과 비교하면 새크라멘토에서 별 볼 일 없는 사내들을 이웃으로 둔 브래드는 열패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시절 세상을 사랑했고, 세상도 자신을 사랑한 게 분명한데 언제 그 사랑이 깨진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자신의 삶을 복기해 봅니다. 이내 결론을 내리죠. 이건 아내 멜라니 탓이야. 집에서 자신이 만들어준 요리 하나에도 감동을 하는 아내,  아내의 이상주의를 사랑하지만 그 이상주의가 자신의 기회를 막았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왜냐하면 성공한 동기들의 아내를 보면 재벌의 딸이든가, 서로 성공으로 밀어주는 동반자인데 아내 멜라니는 너무 쉽게 현실에 만족한다는 거였죠. 그런 자족감이 자신의 야망을 약화시켰는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우울한 생각을 머리에 담아둔 채 브래드는 아들 트로이와 함께 보스턴으로 향합니다. 트로이가 입학사정관과 면접을 보는데 동행한 거였죠. 이코노미석 티켓을 보며, 전용기를 타거나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대학 동기들을 떠올리니 더 우울해집니다. 큰맘 먹고 아들에게 말하죠. 좌석을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하자고. 들뜬 마음으로 창구에 가서 업그레이드시키려고 하지만 비용이 엄청납니다. 마일리지는 쓸 수 없어서 이 카드 저 카드를 내밀지만 인터넷에서 구매한 할인 티켓은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낙담합니다. 자존심마저 구겨집니다.      



  보스턴에 도착해 호텔을 잡고, 아들 트로이와 저녁을 먹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브래드는 트로이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상처를 입을까 싶어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줍니다. 대학 별 거 아니다. 자신도 예일대를 가고 싶어서 환장했었지만 못 갔다. 자신의 모교이면서 아들이 가려는 터프츠 대학도 충분히 좋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트로이한테 의외의 얘기를 듣게 됩니다. 진학담당 교사가 예일대뿐만 아니라 아무 데나 지원해도 다 붙을 거라는. 브래드는 놀랄 수밖에 없죠. 놀라는 것도 잠시, 예일대를 갈 실력이 됨에도  예일대 방문은 계획에 없는 게 이상했습니다.

  “근데 우리 예일은 방문 안 하잖아.”

  “예일은 가고 싶지 않아.”

  “왜?”

  “하버드 가고 싶어서. 제롬 백칼리 음대교수, 정말 멋진 음악 하시거든. 커리큘럼도 좋고.”

 브래드는 어메이징 한 표정을 짓습니다. 처음 듣는 얘기에 인생은 놀라운 거라며 우울했던 기분은 싹 사라지죠. 살다 보면 막막할 때도 있는 거라며 자신이 17년간 뭘 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 놀라운 생명을 심고 가꿔왔다.’

  이튿날, 하버드에 가서 아들이 입학사정관에게 면접을 하는 동안 기다리면서 옆사람에게 아들의 피아노 실력과 천재적인 작곡 재능을 자랑합니다. 그렇게 한참 자랑을 늘어놓는데 아들이 낙담한 표정으로 나옵니다. 어제가 면접이었는데 날짜를 착각했다는 겁니다. 브래드는 순간 화가 솟구칩니다.

  “하버드 갈 머리는 되면서 어떻게 면접 날짜도 기억 못 해!”

  결국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대학교수인 친구에게 부탁합니다. 내키지 않는 힘든 부탁이었죠. 브래드에게 그 친구의 성공은 질투가 아니라 고통이었습니다. 과거에 그의 지명도를 이용해 기부할 사람을 소개받고 싶었지만 거절당한 상처가 있었거든요. 이젠 그 교수는  브래드의 삶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친구의 도움으로 아들은 제롬 백칼리 음대교수와 입학처장과의 면접을 볼 수 있게 됐다는 낭보를 듣게 됩니다.

  면접을 포기하고 있던 트로이가 놀라서 브래드에게 한마디 합니다.

  “you are fucking man!”

  트로이는 기뻐하고, 브래드는 다시 상념에 빠집니다.

  아들자신의 하찮은 현재를 덮어주는 건 아닐까? 아들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사는 건 억지 아닐까? 혹 트로이가 성공했다고 자신을 무시하는 건 아닐까? 종국에는 트로이의 성공으로 자신은 더 패배감이 든다면? 아들을 질투하게 된다면? 아내 멜라니가 아무것도 없으면서 완벽하게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아들의 고향친구이면서 하버드에 다니는 생기발랄한 여대생 아난다로부터 자신이 일하는 비영리단체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를 듣게 됩니다. 멋지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거라고 칭찬을 받게 되죠. 그래도 사랑해 볼 수 없는 여자들과 자신은 살아볼 수 없는 삶 앞에서는 서글퍼집니다.

  아들은 면접을 잘 치렀고, 브래드는 식사를 하기 위해 친구인 교수를 만나 지만 예전의 굴욕적인 기억과 그의 거만한 태도에서 또다시 상처를 받습니다. 브레드는 아들 일에 대해서 고마움만 표하고 자리를 뜹니다.



  호텔 방으로 돌아온 브래드는 침대에 앉아 우울하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트로이가 말을 걸어옵니다.

  “아빠, 공황장애나 그런 거 겪는 거 아냐?”

  “아니, 그냥……가끔씩……걱정이 돼. 사람들이 날 보면서 패배자라고 볼까 봐. 그러다 또 괜찮아지고.”

  “오늘 같이 다닐 때, 아빠가 창피 줘서 그런 생각을 했어. 이 학교 들어오면 다들 기억할 텐데 창피해서 어떻게 다니나 하고. 근데……걔들은 기억 못 할 거야. 다들 자기 자신만 생각하니까. 아빠,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아빠는 내 의견에만 신경 쓰면 돼.”

  “그래? 네 의견은 어떤 데?”

  “사랑해.”

  “고맙다.”

  브레드는 침대에 누워 속으로 생각합니다.

  “우린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침대에서 뒤척이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아들과 함께 묵고 있는 보스턴 호텔 방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현실을 긍정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이룬 것 하나 없이 지나가버린 시간과 남아있는 인생마저 불안해하는 아저씨로 변해가는 이니세이션 스토리입니다. 아들의 삶을 통해 이루지 못한 자신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몰빵 하고, 입시지옥인 우리의 현실과 견주어보면 공감이 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동서양 다를 게 없습니다. 사랑은 죽고, 자식은 살고.  

  우리나 미국이나 자신의 인생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비하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은 있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아이를 보상심리의 대상으로 여기고, 상대적 빈곤감으로 자신삶을 쓰레기로 전락시키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건 다 같다는 거겠죠.

  삼성 이재용 회장보다 혹은 빌 게이츠보다 돈이 적다는 게 삶을 잘못 살았다는 것도, 실패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죠.      


  존재를 존재로서 사랑하고, 삶으로서 삶을 사랑한다면 공무원이든 택배를 하든 치킨집을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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