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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Jul 05. 2023

존스 박사에게 보내는 편지

-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을 보고

     


  정말 애고(愛苦)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을 <레이더스>에서 처음으로 본 게 벌써 사십 년이 넘었네요. 그때는 대학캠퍼스 정문에 전경들이 진을 치고 있고, 매캐한 최루가스가 교정에 가득했죠. 인문관 지하 연극영화과 서클룸에서 독립운동을 하듯 올리버 스톤 각본, 앨란 파커 감독이 연출한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를 보며 튀르키예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한숨을 토해 냈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블로우 업>을 보며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매력을 알게 됐죠. 당신이 처음 보았던 <레이더스>에 이어서 영화관의 메카인 종로 3가 서울극장에서 <인디아나 존스 : 마궁의 사원>을 봤을 때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정신이 없었습니다.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한 논스톱 영화의 효시였죠, 그 뒤에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에서는 손 코너리 옹과 함께 권선징악적인 오락 영화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19년이 흐른 뒤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서는 케이트 블란쳇과 샤이아 라보프와 함께 공간이 확대된 오락영화의 서사를 보여줬죠. 그리고 이번에 노구를 이끌고 다시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에서 고고학적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였습니다. IMAX관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더 이상을 볼 수 없는 당신이기에 안타깝고, 허탈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이 어드벤처 오락영화의 완결판으로 정리가 되고, 존스 박사와도 멋지게 아듀 할 것이라는 기대와 바람은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맥이 풀리기도 했습니다. 감독이 바뀌어서였을까요? 몇 가지 이유에서 그랬습니다.

  첫째,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 중인 유물 안티키테라에서 착안한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이 스토리와 캐릭터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저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 속으로 질주하느라 감초처럼 보여주던 유머도 없었고, 그렇다고 긴장감도 덜했습니다. 그저 소재주의에 함몰돼 있었고, 치밀하지 못한 성긴 구성이 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백 투 더 퓨쳐>의 타임리스가 감득이 되는 건 스토리와 그걸 구현하는 캐릭터 때문입니다. 과학적 근거와 타당성은 그다음의 문제입니다. 어차피 영화는 허구이니까요.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개연성의 스토리와 치밀한 구성,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이번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은 2% 부족한 스토리였고, 구성은 지나치게 단선적이었습니다.

  나치 시대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위르겐 폴러(매즈 미켈슨)의 욕망이 보편적이지도 않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악한이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그의 욕망이 만인의 욕망을 대변하는 화신이어야 합니다. 거기다 존스 박사의 호흡과 리듬은 헬레나 쇼(피비 월러 브릿지)의 액션을 보조하는 역할로 전락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더구나 레날도(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싱거운 죽음은 뭐지, 싶었습니다. 이러려고 캐스팅한 건가? 헬레나 쇼의 거칠고, 야생마 같은 캐릭터는 돋보였지만 상대적으로 존스 박사는 존재감이 덜했고, 감초 같은 조연들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둘째, 존스 박사가 쫓는 미스터리한 유물들은 - 성궤, 샹카라의 돌, 성배, 크리스탈 해골 - 종교적이면서도 인간의 욕망과 맞닿아 있는 것이었죠. 이번의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은 과학과 수학적 차원에서 시선을 끄는 매력적인 소재였습니다. 그 소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한 개인의 절실함이나 혹은 시대의 문제와 연결시켰더라면 감득이 되고, 몰입도 더 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야말로 가장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아닌가요?    



  셋째, 맨해튼 거리의 퍼레이드와 뉴욕 지하철 안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는 역까지 이어지는 추격전 시퀀스는 좋았습니다. 삼륜차의 치열한 추격전과 바다에서의 수중 액션, 거기다 상공에서 펼쳐지는 항공 액션도 눈요기로 충분했습니다. 공간 이동을 할 때, 지도 위를 선으로 그어가는 건 여전하더군요. 극장에서 맨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참 신선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벌써 사십 년 전이네요.  



  넷째, 타임리스 영화에서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갔을 때, 이미 지나가버린  역사를 다시 뒤집을 수 있다는 딜레마는 소설이든 드라마든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어떤 한순간이, 혹은 어떤 한 인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다면 그걸 다시 돌이키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이고, 유혹이기도 하죠. 그래서 가상 역사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겠죠. 당신이 아르키메데스를 만났을 때, 그 현장에 있고 싶다고 했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절실한 눈빛이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그건 고고학자의 꿈이고, 바람이겠죠. 기록으로만 본 시대를 오감의 현실로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어드벤처일 테니까요.  


  다섯째, 이젠 당신도 쉬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마리온(카렌 알렌)이 당신 곁으로 돌아온 건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사랑과 안식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여섯째, 존 윌리암스가 만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OST.

  ‘빰빠밤빠 ~ 빰빠밤’

  인디아나 존스 박사와 함께 한 추억은 이제 가슴에 묻었지만 그 음악이 들리기만 하면 중절모를 쓰고, 채찍을 휘두르는 당신을 맞으러 기꺼이 나갈 겁니다. 당신 때문에 오감이 즐거웠고,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갈 때마다 혹 여기에 보물이 감춰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에 사로잡힐 정도였습니다.어른이 되어서도 보물섬의 꿈을 갖게 하고, 모험적인 고고학적 세계를 보여준 노고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굿바이 인디아나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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