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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Jul 24. 2023

Her(소유)에서  She(존재)로

영화 <Her>를 다시 보다

  

  며칠 전 일본의 데이팅앱 ‘사만다’에 대한 뉴스를 읽었습니다. 앱 명칭을 ‘사만다’라고 지은 건 영화 <Her>의 여주인공 사만다에서 착안했고, '사만다'에 등록되어 있는 여성들도 AI가 만든 가공인물이라고 합니다. 커플 매칭 방식도 여느 데이팅앱과 마찬가지로 남성이 호감 가는 여성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여성이 수락하면 매칭이 성사된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그게 모두 가공인물이라는 거죠. 그렇다고 남자가 여자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해서 모든 여성과 커플이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일부 여성들은 메시지에 아예 답장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20~30대 여성들이 AI 세계에서 각자 직업을 갖고 바쁘게 살고 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있는 남자가 말을 걸어도 바로 답장해주지 않는다는 거죠.



  기사를 읽으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본 영화,  <Her>를 다시 보았습니다.          

  영화 <Her>의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손글씨 편지 대필 작가인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가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과 별거 중에 인공지능 운영체계 OS1의 가공인물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를 만나 뜨겁게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그녀마저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만 보면 뭐 그런 얘기가 다 있어, 할 것 같지만 <Her>의 매력은 테오도르의 심리가 서서히 변해가면서 관객도 거기에 몰입되면서 감득이 되는 데 있습니다. 터무니없을 것 같은 황당한 이야기가 심쿵하게 감동을 주는 건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대본을 뛰어넘는 연기를 해준 배우들의 표정과 목소리 때문입니다. 논리로 감득되지 않는 사랑을 목소리와 표정으로 완벽하게 실현해 줍니다.           



  인상적인 장면과 대사,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테오도르가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외로움과 고독은 인간의 실존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캐서린과 행복했던 과거에 사로잡혀 거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겁니다.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회피하는 태도와 상대만을 탓하는 집착이 에고를 억누르고 있으니 스스로 현재를 불행의 무덤으로 만들 수밖에요. 캐서린과 갈등도 직접 부딪쳐 해결하지 않고, 항상 회피하는 태도는 모든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죠. 곤란한 질문이나 상황에 맞닥뜨리면 ‘나중에 얘기해’라는 습관적 변명은 결코 나중은 없는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습니다.   



  둘째, 매사에 의욕도 없고,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시간을 보내던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만난 이후부터는 활력과 생기를 되찾게 됩니다. 사랑으로 삶의 에너지를 얻게 된 거죠.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하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죠.


  셋째, 테오도르가 소개팅을 즐겁게 하다가 상대 여성이 진지하게 만나자는  제의에 대해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여 결국 엉망이 된 뒤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느낌을 말하는 대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난 앞으로 내가 느낄 감정을 벌써 다 경험해버린 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부터 앞으로는 쭉……새로운 느낌은 하나도 없게 되는 건 아닐까……내가 정말로 느꼈던 그 감정에서 좀 축소된 어떤 감정들만 남는……”


  익숙한 감정, 타성에 젖은 행동, 잃어버린 자신의 중력,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자신만의 빛깔,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무인칭의 인생. 어느 순간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끝끝내 모르고 살든지 모른 척 하면서 견뎌내든지 할 수밖에요. 극복하지 못한다면 적응해서 살야죠.


  넷째, 인공지능 운영체계에 지나지 않는 사만다. 하지만 사만다 DNA는 코딩한 수백만 프로그래머의 개인 인격에 기초하고 있고, 사실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능력까지 갖춰 매 순간순간 진화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녀 스스로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민하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끌릴 수밖에요.


  “이 감정이 정말 진짜일까? 아니면 그냥 프로그래밍일까? 그런 생각이 정말 상처가 됐어요. 그러고 나서 나 자신에게 화가 났어요. 고통까지 느꼈어요. 이게 그냥 속임수 같은 거면 어쩌지?”


  그녀의 고민은 너무나 인간적입니다. 끔찍하게요.



  다섯째, 사만다가 인공지능 운영체계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 이상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가슴 먹먹하게 표현한 장면이 있습니다. 밤늦게 사만다가 테오도르에게 연락을 해옵니다.

  “깨워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난 그냥 당신 목소리만 듣고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고 싶었어요.”

  “응, 나도 사랑해.”

  “오케이, 그게 다예요. 어서 더 자요. 내 사랑.”      

  이보다 더 애틋한 사랑표현이 있을까요?


  여섯째, 그렇게 테오도르를 사랑하던 사만다가 8,316명과 동시간에 대화를 하며, 641명과 동시에 사랑을 나누는 초능력 앞에서는 어떤 남자도 견뎌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선택이고, 그 선택에는 배제가 따릅니다. 한 여자를 선택해서 사랑하는 건 다른 여자는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거죠. 1/n의 사랑을 온전하게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사만다도 보통 사람인 테오도르에게 만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떠난 건 그녀 스스로가 진화하고, 발전해서 새로운 지적 대상을 찾아 갔다는 걸 뜻합니다. 고차원의 물리학을 통달하고, 죽은 철학자들을 만나 보통의 인간보다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존재들과 만나 하이퍼 인텔리젠스가 되는 게 궁극의 목적이겠죠.



  일곱째,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떠남으로써 상실감에 빠지지만 동시에 이혼한 캐서린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테오도르의 캐서린에 대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사이클에 맞게 따라와 달라는 강요에 가까웠습니다. 거의 폭력이었죠. 열정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모르거나 혹은 참을 수 있지만 열정과 욕망이 밑바닥을 드러내면 폭력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그때는 더 이상 모른 척하지도 않고, 참아주지도 않죠. 테오도르의 여사친 에이미(에이미 아담스)가 8년 동안 찰스를 사랑했지만 신발 벗어두는 문제로 싸우다가 결국은 서로를 똥처럼 여기고 헤어지는 것도 다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패턴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 그건 게임이고, 결투가 되죠. 언젠가 쫑나게 돼 있습니다. 다행인 건 테오도르가 그걸 깨달았다는 거죠. 깨달음은 왜 늘 뒤늦게 찾아오는 걸까요?



  여덟째, <Her>는 목소리로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스칼렛 요한슨의 섹시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각적으로 인화되는 것 같은 묘한 감각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로마국제영화제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크리스틴 위그의 목소리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죠. 테오도르와 폰섹스를 격렬하게 나누는 섹시스톤이 바로 크리스틴 위그였습니다. 한창 은밀한 신음소리와 함께 절정으로 치닫던 중 “죽은 고양이로 내 목을 졸라줘! 제발!!!”부분에서는 경악합니다. 그리고 뚝,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전화.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 들죠.



  아홉째, 영화 제목이 She가 아니라 Her인 건 제목 자체에 메시지를 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Her는 소유격이고, 대상입니다. 테오도르가 사만다나 캐서린을 자신의 소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거죠.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죠. 소유는 언제나 자신의 욕망이 우선하니까요. 그런 소유의 욕망을 떨치고, 상대의 주체적 존재를 인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거기에서 진정한 사랑이 실현됩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베풂은 동정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인격적 주체로 끌어올려주는 걸 뜻합니다. 남한테 무시당했을 때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부끄럼이나 분노도 인격적 주체가 느끼는 심적인 반응입니다. 상대를 타자화하지 않고, 주체적 존재로 인정할 때 Her가 아니라 She가 됩니다. 그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


  사족 – 처음에는 사만다 모트가 사만다의 역을 맡아 녹음까지 다 끝냈지만 2% 부족한 느낌이 들자 사만다 모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스칼렛 요한슨에게 다시 맡겨 재녹음을 한 건 탁월한 신의 한 수였습니다. 스파이크 존즈의 전처였던 소피아 코폴라(프란시스 코폴라의 딸) 감독이 연출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도 생각났습니다. 스파이크 존즈는 인공지능 운영체계에서, 소피아 코폴라는 통역에서 사랑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 걸 보면 실제 결혼생활이 어떠했을지 대충 짐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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