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ONE>
지난 주말, 늦깎이 대학생활을 시작한 아들과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ONE>을 봤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복기하듯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영화가 끝난 뒤, 영화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 거죠.
SON : 오리지널 러닝 타임이 짧은 게 아닌데 영화를 보는 내내 시계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갔네요.
ME : 스토리가 치밀하고, 그걸 완벽하게 장면으로 보여주니까 지루할 틈이 없었지.
SON :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정말 계산을 잘하는 것 같아요. 스토리는 자기 방식으로 쓰지만 그 스토리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마치 중고품을 가져다가 리폼해서 관객을 혹하게 만들잖아요.
ME : 너도 기시감이 드는 장면들이 많았구나.
SON : 에단(톰 크루즈)이 그레이스(헤일리 엣웰)과 수갑을 찬 채 미니 피아트를 모는 카 액션은 <007 네버다이>에서 피어스 브로스넌과 양자경이 오토바이를 보는 액션에 유머를 슬쩍 가미한 버전이고, 기차 위에서의 결투 장면도 이미 익숙하게 많이 봤던 거잖아요. 특히 라스트 씬인 기차의 객차가 하나씩 떨어져 나갈 때, 그 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의 구도와 앵글 각도가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비행기를 납치해 공중에서 분해하는 장면과 흡사했거든요.
ME : 사실 사이버 기생충이 인간을 지배하려는 주제도 새로운 건 아니지.
SON : 맞아요. <이글 아이>와 <아이 로봇>과 견주어보면 크게 다를 게 없죠. 앤티티의 아바타로 가브리엘(에사이 모레일스)를 내세웠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 우리가 인터넷 뱅킹, 이메일, 유튜브, 카카오톡, 스마트폰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사이버 기생충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오싹하죠.
ME : 좋은 예술가는 표절하지만 위대한 작가는 훔친다는 말이 있는데, 어쨌든 맥쿼리 감독은 자기 방식의 스토리와 그걸 치밀하게 계산해서 구현하는 재주가 있는 건 분명해.
SON : ‘데드 레코닝’이라고 부연한 게 묘해요. 일종의 위치추적기술을 말하는 건데 사이버 세계의 미래를 암시하는 거잖아요. 그 미래가 인간의 관점인 건지, 아니면 AI 메커니즘 자체에 있는 건지 참 묘해요. 인간 입장에서 보면 AI에 인간이 종속되고 지배를 받는 건 비극이지만 AI 관점에서는 그게 최종 목적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AI가 진화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능력까지 있다면 테크놀로지 유토피아가 실현되는 거겠죠. 더구나 AI는 오류도 없고, 물질적 욕심도 없고, 당파성도 없고, 거기다 변덕도 부리지 않으니까요.
ME :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ONE>의 빌런이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생긴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거라고 할 수 있지.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 제어되지 않는 물질에 대한 탐욕에서 종양처럼 앤티티가 생긴 거라고 볼 수 있겠지. 그런 점에서 일종에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어. 오프닝 씬에서 러시아 잠수함에서 쏜 어뢰가 자신들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아닌가 싶어. 섬뜩하잖아. 옆에 함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적. 아니 우리 스스로가 품고 있는 거지.
SON : 앤티티가 계산을 잘하고, 예측을 정확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IMF를 없애야 한다고 타깃을 삼은 게 재미있는 발상이죠. 아, AI도 두려워하는 게 있구나.
ME : 과학이 수많은 귀납적 사례를 통해서 일반화된 이론을 정립하듯이 <미션 임파서블 1∼6>을 통해 에단의 능력을 간파하고, 없애야 할 장애물로 판단했겠지. ㅋㅋ.
SON :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항상 극적인 의무적 장면이 있잖아요.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에 매달리든가 초고층 건물을 기어오른다든가 그런 거요. 관객들은 당연히 그걸 기대하고 있고, 제작진도 거기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죠. 이번에는 톰 크루즈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오토바이 씬이 그거였죠. 전반의 모든 이야기를 모아서 그 지점에서 절정으로 치닫게 하고, 자연스럽게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TWO>도 슬쩍 보여주는 거죠. 아, 다음 편에서는 해저에서 사건이 펼쳐지겠구나, 그런 거요.
ME : 맥커리 감독이 <미션 임파서블>을 세 번 연출했는데 첩보 액션물의 칼라와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역량이 있단 느낌이 들어. <미션 임파서블>은 팀으로 움직이는데 그 팀 안에서 개개인의 캐릭터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잖아. 특히 이번에 유독 눈길을 끄는 건 일사(레베카 퍼거슨)의 죽음이었는데 이를 좀 더 극적으로 과장해서 보여줄 수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너무 평범해서 이상할 정도였어. 생각해 보니까 그건 그레이스가 새로운 요원이 되고, 일사의 임무는 이제 마무리됐다는 걸 일상처럼 보여준 거지. 더구나 일사가 주인공은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리턴 터치가 된 거지. 그레이스가 앞으로 IMF 팀원이 되겠구나 싶은 느낌이 들 게 한 건 그레이스의 에단에 대한 불신이 여러 사건을 거치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극적으로 잘 표현돼 있으니까 거기에 동의할 수밖에.
SON : 조연의 인물들도 그 매력이 잘 표현돼 있는 것 같았어요. 화이트 위도우도(바네사 커비), 파리(폼 클레멘티프), 거기다 <미션 임파서블 1> 에서 나왔던 키트리지 국장(헨리 체르니)이 다시 등장한 것도 좋았구요. 무조건 에단을 체포하는 게 절대 지상주의인 브릭스(쉬어 위햄)과 그의 부하인 한없이 모범생이면서 2% 정도 모자란 요원(그레타 타잔 데이비스)도 감칠맛이 나는 캐릭터였어요.
ME : 그럼에도 <탑건 : 매버릭>처럼 관객이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오프닝 씬을 보면서 미국과 러시아의 신냉전 시대의 상황을 극적으로 잘 활용했구나 싶었는데 그런 국제 현실도 약발이 먹히질 않았어.
SON : 열쇠의 상징성이 우리의 현실로 받아들이는데 거리감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열쇠는 테크놀로지의 상징물로 보이는데, 이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쓰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런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예언하는 철학자가 각각 다 다른 게 현실인데 그런 체계가 갖는 위험성에 대해서 미분화상태라고나 할까? 영화에서는 정말 극적으로 잘 분화돼 있고, 그 상황이 답답하면서 끔찍하게 느껴졌는데 그게 우리의 현실로 고스란히 환원되기에는 거리감이 있다는 거죠. <탑건 : 매버릭>은 그냥 보여주기만 하면 됐잖아요. 그걸로 열광하는 거죠. 생각할 것도 없이.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피곤함이 쌓여있는 걸 수도 있고요. 또 봐야 돼? 싶은 거죠. 진성 팬만 남은 거라고 봐야죠.
ME : 맞아.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ONE>이 주는 테크놀로지 메커니즘의 자기 파괴적 기능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오토바이 씬에 함몰돼 메시지가 증발된 느낌마저 들어. 대개의 관객들한텐 그 장면밖에 남은 게 없을 거야. 무거운 주제는 피곤하거든. 마블과 DC에서 만든 수많은 히어로의 판타지에 길들여져 영화적 메시지를 읽어내려는 건 둔감해졌지.
SON : 어쨌든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TWO>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마무리를 지을까 기대되네요.
ME : 더 독하게 찍을 게 분명해. 어떤 방향의 이야기든.
추신 – 아들아, 순수 관객으로 남아있는 것도 괜찮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