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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Jul 26. 2021

폴 토마스 앤더슨의 사랑하는 법

- <팬텀 스레드>의 독버섯 요리에 취하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Paul Thomas Anderson. 초기 작품부터 관객의 눈길을 확 잡아끌었습니다. 뭐지? 이런 영화가 다 있네. 한 개인의 서사를 통해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내기도 했죠. 포르노 산업의 전성기에 최고의 상품이었던 사내의 우울하고 비극적인 몰락을 보여준 <부기 나이트>. 지금은 고인이 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슈퍼스타가 된 마크 월버그, 줄리안 무어, 돈 치들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죠. 상처 받은 사람들이 얽히고 설긴 인연을 보여준 <매그놀리아>. 전국을 돌며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설파하는 마초적 일타 강사 톰 크루즈의 강렬한 연기와 하늘에서 개구리가 무더기로 떨어지는 장면은 기억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조금 달달한 영화도 있습니다. 가슴이 먹먹하도록 푸딩과 폰섹스, 그리고 풍금이 묘한 긴장을 이루며 순수한 사랑을 보여준 <펀치 드링크 러브>. 아담 샌들러의 연기에 그야말로 펀치를 맞은  영화였습니다. 일란성쌍둥이 같은 자본주의와 종교의 타락과 광기를 보여준 <데어 윌 비 블러드>.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폴 다노의 연기가 스크린을  피로 흥건하게 적십니다. 혼란과 불안이 팽배한 시대에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삶의 주인을 찾아 헤매는 <마스터>.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미친 연기 때문에 뜻하지 않게 내 인생의 마스터를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합니다. 미국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몽환적으로 보여주는 <인히어런트 바이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릴수록 인간의 욕망과 심리는 더 묘한 각을 이룹니다. 호아킨 피닉스는 말할 것도 없고, 조슈 브롤린의 연기는 똘기가 있는 것처럼 까칠하지만 시원하기도 합니다.

  PTA 감독의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요. 메시지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게 보통이죠. 도대체 뭔 얘기야?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이해는 되는데 동의하긴 어렵네. 하도 천재 감독이라고 하니 영화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하면 자신이 둔재임을 고백하는 것 같아 애매한 표정으로 감상 느낌을 적당히 얼버무리기도 하죠.


                                                       <팬텀 스레드 포스터>

                                         

  <팬텀 스레드>는 사랑을 색다르게 표현하긴 했어도 비교적 친절한 영화입니다. 섬세한 연출과 유연한 구성, 적당한 메타포와 그것들을 절묘하게 감싸는 사운드가 어우러져 저렇게 사랑을 엮어낼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아주 고전적인 문법을 사용합니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르가 신부에게 고해하듯 <팬텀 스레드>에서는 알마가 내레이션으로 의사한테 고백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죠. 알마의 표정이 단독 샷으로 뜹니다. 타이틀이 뜨고, 알마의 표정이 단독 샷으로 잡힐 때까지 사운드는 온통 고막을 째는 파열음이었는데 이내 피아노의 선율로 바뀝니다. 알마의 차분한 내레이션이 시작되죠. ‘레이놀즈는 내 꿈을 이루어줬고, 대신 난 그가 열망하는 걸 줬죠.’ 이 대사가 인물과 사건을 요약하고,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내레이션이 끝나면 시제도 현재에서 자연스럽게 과거로 넘어갑니다. 레이놀즈가 스스로 면도를 하고, 코털과 귀털을 다듬고, 구두를 닦고, 양말을 신고, 바지를 입습니다. 단 한 장면으로 레이놀즈의 캐릭터를 슬쩍 보여주죠. 


                                                     <우드콕 의상실>


  <팬텀 스레드>는 1950년대 영국 런던의 우드콕 의상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영국 왕실과 사교계의 드레스를 만드는 우드콕 디자이너  레이놀즈와 런던 교외 빅토리아 호텔 레스토랑의 종업원 알마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지죠. 감각적인 사랑을 기대하는 관객한테는 짜증을 유발하는 영화가 되기 쉽습니다. 남녀 만남에 밀당도 없습니다. 함께 살던 조한나를 해고하듯이 내보내고 휴식을 취하러 간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레이놀즈는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는 알마의 웃음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하고, 이내 같은 집에서 기거하게 됩니다. 레이놀즈에게 알마는 연인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레이놀즈가 하는 작업의 한 부속품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레이놀즈에게 알마와의 사랑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감정이면서 동시에 알레르기 같은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죠. 

  식사를 할 때, 혹은 작업을 할 때 고도의 긴장감을 풀지 않는 레이놀즈에게 알마는 소음이 되기 일쑤고, 집중력을 잃게 해 핀잔을 듣게 됩니다. 사랑과 관심으로 알마가 선택되었지만 점차 소외되는 거죠. 욕망이 고갈되고, 사랑의 유효기간이 다 지났다는 진부하고도 세속적인 멜로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알마는 요리를 하면서 독버섯의 효능을 알게 됩니다. 적당한 독의 섭취는 사람을 죽이진 않고 쓰러지게 할 뿐이라는. 레이놀즈와 알마의 관계가 갈등의 서사로 긴장을 유지해오다가 끝내 사랑으로 승화하는 결정적인 장면이 있는데요. 우드콕의 큰손이기는 하지만 드레스의 가치는 모르고 오로지 돈과 과시욕으로만 입는 로즈 부인한테 모욕을 당한 레이놀즈가 알마의 도움으로 드레스를 강제로 벗겨 빼앗아 오는 장면입니다. 둘은 거의 드레스를 거의 탈취해서 도로를 질주합니다. 그리고 레이놀즈는 숨을 내몰아 쉬며 ‘쌩큐!’라고 하고, 알마는 ‘사랑해요.’라고 화답하죠. 알마의 독버섯 요리가 본격적으로 식탁에 오르게 됩니다. 독버섯의 요리를 먹게 되면 레이놀즈는 이삼일 동안 실신하게 되고, 그건 기계적인 일상으로부터 해방되는 거죠. 물론 알마는 레이놀즈를 사랑으로 소유하게 되는 거고요. 알마가  ‘난 당신이 쓰러지길 원해요.’라고 하자 레이놀즈는 ‘쓰러지기 전에 키스해줘.’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레이놀즈는 알마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을 독점하기 위해 알마는 독버섯으로 요리를 하고, 레이놀즈는 기꺼이 그 독버섯 요리를 먹는 행위가 어찌 보면 광기의 사랑일 수도 있겠죠. 자존감이 강하고, 신경이 예민한 장인의 작업 과정과 사랑에 소름이 돋을 정도지만    부드러움도 결코 간과하지 않는 균형 감각을 보여줍니다. 어쨌든 알마는 소유, 레이놀즈는 휴식을 얻게 되는 거죠. 멜로와 스릴러가 절묘하게 엮인 영화입니다. 남녀관계가 팽팽한 긴장으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사랑으로 승화된 거라고 할 수 있죠.  


                                                     <시릴 역을 맡은 레슬리 맨빌>


  <팬텀 스레드>는 50년대의 패션쇼를 보는 즐거움도 제공합니다. 물론 장인의 프라이드와 미적 감각, 바늘 끝에 올라앉아 있는 듯한 예민한 신경, 드레스의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레이놀즈의 누이 역할을 하는 레슬리 맨빌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에서 보여준 그녀의 연기에 완전히 넋이 나갔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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