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달이 서산에 걸렸습니다. 시간에 살짝 깎여나간 듯 보름달이 조금 이지러졌습니다. 디지털의 시계로는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애기똥풀이 다 시들어버린 그 자리 옆에 달맞이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피고 지고, 지고 피고. 그렇게 자연의 아날로그 시계는 자리바꿈을 합니다.
푸른 옷고름을 풀어헤치고 싱싱한 성욕을 드러내던 나뭇가지들도 이젠 시들해졌습니다. 한여름의 대지가 초록이 아니라 빨강이나 노랑이었다면 현기증에 시달리거나 눈이 멀지도 모릅니다. 모든 색깔의 씨앗인 초록. 초록은 세상의 중심에서 생명을 탄생시키고, 만물의 균형을 잡아주죠. 초록과 일광으로 인화되는 시골의 아침. 시원하게 슬라이드처럼 지나갑니다. 그렇게 한여름이 지나가는 길에서 나는 불꺼진 신호등이 된 채 멍하니 서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