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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Jul 27. 2021

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 무지개가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

  

                                                     <시원한 소나기가 그친 뒤>


  어제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로 변하고 있는 중이니까 스콜이라고 해도 좋을 듯. 소나기가 내린 뒤에 마을 뒷산에 무지개가 떴습니다. 무지개는 다양한 의미를 상징하기도 하죠. 평화, 은총, 희망, 사랑, 신의 약속 등등. 그런데 사실 무지개는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빛의 현상으로 아주 잠시 나타난 거죠. 그러니까 무지개의 상징처럼 실제 무지개가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무지개를 쫓는 건 허망한 일이죠. 


                                                    <소나기가 그친 뒤의 무지개>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에서 그녀가 말하는 방식을 잠시 떠올려봅니다. ‘거기에 무지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무지개가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되는 거예요.’ 그게 가능해지면 사는 건 훨씬 가벼워집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무지개를 돈으로 바꿔볼까요? ‘거기에 돈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돈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되는 거예요.’ 돈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독점욕과 집착이 생기고, 거기에서 고통이 생기게 됩니다. 거기에 돈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집착이 따르는 건 마찬가지죠. 하지만 돈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는 순간 돈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됩니다. 독점욕도 집착도 없죠. 자본주의의 억압과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면 억압과 공포를 누를 만큼의 많은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어렵습니다. 불가능하고요. 그러면 돈의 획일적인 가치를 좇는 게 아니라 그 가치를 상대화 하면 돈의 억압과 공포에서 조금은 비켜나지 않을까요? 어찌 보면 정신 승리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신 승리가 자기변명 내지는 자기 합리화인 반면에 ‘없다는 걸 잊어버리는 일’과 ‘가치의 상대화’는 욕망의 절제를 통해 자본주의의 속물적인 중력에서 벗어나 무중력 상태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비슷한 이야기이긴 한데요, 엊그제 수많은 언론 매체에 SK 최태원 회장과 딸이 나눈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최 회장이 치실을 사용하는데 실을 좀 많이 길게 뽑아서 썼더니 막내가 옆에서 보다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죠. “아빠 재벌이야?” 최 회장은 딸에게 “응? 어? 음... 아니... 아껴 쓸게”라고 답했다고 하죠. 사소한 일상이지만 재벌이기에 뉴스가 되는 세상입니다.  

  어쨌든 재벌이 좋은 건 ‘나 재벌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어서 좋은 것이고, 부자가 좋은 건 ‘나 돈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좋은 겁니다. 봉급생활자나 외판원, 편의점 알바나 택배 기사에게는 꿈같은 얘기죠. 

                                                   <무지개가 없는 오늘 하늘>


  하지만 ‘거기에 무지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무지개가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되는 거’는 가능합니다. 그렇게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단지 내 주변의 사람이 아닐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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