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하마 Aug 04. 2021

시인은 어쩌면 신이 아닐까요?

- 정현우 시인의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를 보듬다

  신께서 천지창조를 할 때 제일 먼저 한 건 말이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말로 ‘빛이 있으라’한 걸 보면 빛 이전에 말이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하늘과 땅을 나눈 것도, 인간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한 것도 말이었습니다.  

  모든 게 말대로 된 걸로 보아 말은 의지였고, 존재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말로써 세상이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시대의 말은 인간에게 구원이기도 했습니다.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으니까요. 우리가 지금 쓰는 말은 어떤가요?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집니까? 말이 말하는 이의 마음을 다 담고 있기는 한 걸까요? 상대가 하는 말이 마음에 와닿기는 하는지요? 말은 말이 아니라 소음처럼 들리는 건 어찌할까요? 

  언제부터인가 인간이 쓰는 말은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 전에 ‘솔직히 말해서’라는 전제부터 답니다. 어떤 때는 말이 아니라 눈빛을 읽고 진의를 파악하기도 합니다. 말이 너무 많아 범람하고 있지만 정작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말은 바짝 말라 버렸습니다. 새벽기도에 나가 통성기도를 하는 거나 무당의 주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혹시 그 소리에서 구원의 빛을 찾으려는 몸짓은 아닐까요? 

  그래서 ‘소설은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찾는 이야기다.’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시는 언어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시도하는 장르다.’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현우 시인의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시집은 말 이전의 무의식과 영혼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처럼 느껴집니다. 사랑과 슬픔과 죽음이 갖는 세속적인 이미지를 찢어버리고, 오염되기 이전의 원시적인 세계를 살짝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랑을 느끼되 흥분하지 않고, 슬픔이 있되 눈물을 흘리지 않으며, 죽음을 맞닥뜨리되 두려움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사가 가르쳐 준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무의식 속에 있는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과 낙원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현우 시인의 시는 말이 아니라 존재가 되기 위한 조용한 절규입니다. 그래서 그 절규가 더 안쓰럽고,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모든 게 물질과 세속적 가치로 수렴되는 사회에서 그의 시마저 소음에 묻혀 소음으로 치부해버리기 쉽기 때문이죠. 모쪼록 천사에게 배운 말, 그 말이 힘든 삶을 살고,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