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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Aug 03. 2021

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 외로움을 치유하는 건 사랑이 아닙니다

  외로움의 바위 덩어리를 반으로 뚝 자릅니다. 잘라낸 반쪽을 다시 자릅니다. 그 4분의 1쪽을 다시 자르고, 그렇게 잘라낸 조각을 다시 자르죠. 그렇게 계속 잘라내면 자갈처럼 작아집니다.


  

  자갈이 된 걸 잘게 부수고 또 부숩니다.



  그러면 작은 알갱이의 모래가 됩니다. 그 모래를 다시 부숩니다.



  나중에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먼지 가루가 됩니다. 먼지 가루가 되었을 뿐 없어진 게 아니네요.



  외로움은 먼지가 돼 허공에 떠다닙니다. 잘게 부수면 없어지거나 무력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하긴 작은 게 더 무섭기도 하죠. 사자를 못살게 구는 것도 깨알만한 쇠파리이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인류를 위협하는 게 코로나 바이러스인 걸 보면 틀린 말이 아다. 먼지가 되어 없어졌거니 했는데 목이 칼칼하고 눈이 아픈 게 다 이유가 있었네요. 그걸 피할 수 없는 이유도 알 거 같습니다.  음주운전은 하지 않고, 교통신호도 잘 지키고, 도둑질을 하지 않았는데도 외로움은 비껴가질 않습니다. 주말을 없애면 안 될까요? 주말이 되면 기분이 엿 같아지거든요. 클럽에서 만난 그녀랑 섹스를 할 때 그녀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물었습니다.

  “도에 관심 있어요?”

  아,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다니. 누가 날 죽여 버렸으면 후련할 것 같습니다. 사랑이나 삶의 진실을 침대 위에서 찾아보겠다는 게  참 무모했습니다.

  “너밖에 없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절망적인 말을 들으니 픽 웃음이 나왔습니다. 뻔히 거짓말인 걸 알고 있는데 속인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상대에게 자신의 인생을 전부 얹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끔찍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자신에 대해 믿음이 없고, 안심하지 못하니까 누군가의 삶으로 자신의 인생을 대체하려는 게 아니었을까요?

  영혼 없는 달콤한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몸마저 망가져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됩니다. 살아가는 데 친절한 사랑은 필요하지만 그게 반드시 즐거움을 주거나 보상을 해 준다는 걸 믿지 않으면 상처도 덜 받겠죠. 그래서일까요? 사랑 같은 거 없이 살면 안 됩니까! 그냥 살았으면 좋겠네요. 그런 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곁에 있어야만 외로움이 사라지고, 그게 사랑이라고 하는 건 집착입니다. 감각을 해소하기 위한 욕심일 수도 있죠.

  사랑은 외로움을 살짝 덮고 있는 얇디얇은 베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인간은 그렇게 태어났거든요. 외로움은 살아있는 자들한테만 있는 알레르기 같은 겁니다. 그래서 그러려니 합니다. 외로움을 짓누르기 위해 사랑을 인질로 삼아 살아온 날들이 찍어놓은 발자국을 뒤돌아보면 이기적이고, 위선적이거든요.

  햇빛마저 축 늘어질 정도의 뜨거운 오후입니다. 오이와 토마토 한 개, 그리고 옥수수 반개로 때운 끼니. 온 우주를 먹은 느낌인데 참 가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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