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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Aug 05. 2021

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 오늘 새벽안개 속에서 더욱 잘 들리는 소리들


  새벽안개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들이 있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 땅속에서 성체가 되기까지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세상에 나와 어떡해서든 제짝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피를 토해냅니다. 참새의 소리. 밤새 안녕을 확인하는 수다가 요란합니다. 까마귀의 울음소리. 오선지 같은 전선에 음표처럼 앉아서 전위적인 불협화음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까마귀는 정말 드셉니다. 멧비둘기 울음소리. 조금은 음흉하게 들립니다. 새벽부터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지만 술 취한 사람이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뻐꾸기 소리. 탁란을 끝내고 다 큰 새끼에게 핏줄을 알려준 뒤 느긋하게 사설시조를 읊듯 운치 있게 목청을 뽐냅니다. 여름 산을 풍성하게 하지만  얄미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고라니 울음소리. 마치 횡격막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 같은 쉰 소리로 울어댑니다. 참 독특합니다. 제비의 소리. 제비가 물 위를 나는 모습을 보면 물 찬 제비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물 찬 제비처럼 울음소리도 정갈하고, 깔끔합니다. 냇물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를 한참 듣고 있으면 최면에 걸린 듯 어질 합니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파격으로 이어지는 무한반복의 살아있는 소리. 넘치는 열정이었다가 침잠으로 들어가는 소리이며, 길을 떠나는 청년의 힘찬 발걸음인가 싶었는데 돌고 돌아서 제자리로 찾아가는 노인네의 툴툴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떨어지고, 튀고, 흐르는 물방울의 순간은 어느새 영원으로 떠나는 순례자가 됩니다.  

  트랙터 소리와 하우스 안에서 아스파라거스를 꺾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왁자지껄하는 소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산 사람들이 내는 소리는 도시나 농촌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아등바등 돈 버는 소리는 다 같습니다.


  귀를 기울여 조심스럽게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산이 우는 소리죠. 산이 운다고? 네, 산도 가끔 웁니다. 아주 낮은 저음으로 웁니다. 우리 동네 산은 분명히 그렇게 웁니다. 대처로 나가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저 자리에 철썩 주저앉아 허구한 날 난장 같은 잡목들이나 붙들고 있으니 처량한 신세타령을 그렇게 우는 것으로 합니다. 산이 우는 소리를 들으려면 산의 마음을 가져야 가능합니다.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거죠.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안하거나 화가 날 때는 귀와 마음을 열어두세요. 소리로 듣는 삶, 마음으로 보는 길은 돈도 들지 않습니다. 작지만 오래가는 기쁨이기도 하고요. 

 

  추신 - 산도 신세타령하면서 징징대고 우는데 사람이 사는 게 힘들다고 우는 거, 부끄러워 할 필요없습니다. 운다는 건 아직 삶에 대한  애착과 감정이 남아 있다는 거죠. 그런데 우는 거로만 그치지 않고 그게 에너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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