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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Aug 07. 2021

<투 마더스>에 대한 단상

- 욕망이 죄인가요?

  며칠 전, 영국에서 날아온 해외 소식이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었습니다. 어린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한 부부 이야기였습니다. 29세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한 아내 마릴린 부티지지(60)와 남편 윌리엄 스미스(31)가 결혼 12주년을 맞이했다는데요. 두 사람은 결혼으로 인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의절당했고, 끊임없이 증오의 시선을 받았다고 합니다. 소아성애자란 소리까지 들었다고 하는데요. 우리의 정서로 거의 극혐입니다.   



  영화 <투 마더스>가 떠올랐습니다. <투 마더스>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도리스 레싱이 쓴 <그랜드마더스>가 원작이고, <어톤먼트>와 <더 파더>의 각본을 썼던 크리스토퍼 햄튼이 시나리오를 맡았죠.

  주제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두 중년 여성이 서로의 아들과 육체관계에 빠지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대뜸 쓰레기라고 욕이 튀어나올 법합니다. 하지만 많은 매체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혹 엄마 친구, 친구 엄마, 아니면 젊은 엄마 시리즈의 성인물을 즐겨보는 사람들한텐 노출 씬이 화끈하지 않다는 점에서 재미없고, 인물의 심리묘사가 세밀하다는 점에서 지루하기 그지없을 겁니다.       

  이안의 엄마인 릴은 나오미 왓츠가 맡았습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킹콩>에서 보여준 청순미가 언뜻언뜻 그림자처럼 너울거립니다. 톰의 엄마 로즈는 로빈 라이트가 맡았고요. 많은 분들이 <포레스트 검프>에서의 제니를 기억할 겁니다. 조금은 차갑고 단아한 느낌이 들죠.   


  

  릴과 로즈는 어릴 때부터 자매처럼 지낸 친구입니다. 각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던 중 교통사고로 릴이 남편을 잃게 됩니다. 로즈는 친구인 릴과 그녀의 아들인 이안을 각별히 보살피게 되죠. 아이들은 청년으로 성장합니다. 이안은 어릴 때 아버지를 잃는 바람에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이를 로즈가 잘 보듬어줍니다. 이안이 엄마 친구 로즈에게 이성적으로 끌리게 되고, 로즈도 매력적인 청년으로 성장한 이안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죠. 원작소설에서는 이안의 성장과정과 심리, 그리고 로즈와의 관계가 세밀하게 묘사 되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질 수밖에 없는 개연성과 근거를  보여줍니다. 릴과 로즈가 수영하는 아들들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사가 있습니다.

  “정말 우리 작품 맞아?”

  “잘 키웠네.”

  “눈이 부시다. 바다의 신 같아.”

  섹스하기에 알맞게 특화되어 커버린 아이들. 눈이 부실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엄마와 친구인 이안의 관계를 눈치챈 로즈의 아들 톰은 충격에 빠지고, 이에 대한 복수심으로 릴에게 다가가 도발적으로 키스를 합니다. 처음에 릴은 완강하게 거부하지만 결국은 톰과 잠자리를 하고 말죠. 두 엄마와 두 아들은 육체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맙니다. 몸이 섞이고 나면 관계는 복잡해지고, 마음도 변하는 법입니다. 로즈와 릴은 이성적으로 제어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선을 넘은 거지.”

  “다신 그러지 말자.”

  “그래. 이건 아니야.”

  “그래. 이러면 안 되는 거지.”

  하지만 이미 한번 넘어버린 선, 그걸 멈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육체가 주는 쾌락을 제어할 브레이크가 이미 기능을 잃은 거죠. 아직은 몸이 더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릴과 로즈의 대화 속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사실 난 정말 오랜만에 행복해.”

  “알아.”

  “두려워.”

  “나도 무척이나.”

  “멈추기 싫어. 그럴 이유 없잖아.”

  “곧 애들이 질려할 걸.”

  “그럴 테지.”

  시간이 흘러 톰과 이안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과거는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적어도 가족이라는 제도가 욕망을 억누르고, 제어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시들지 않은 욕망에 다시 선을 넘게 되죠. 결국은 톰과 이안의 아내가 이 같은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아내들이 짐을 싸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건 당연한 순서입니다.



  <투 마더스>를 막장 쓰레기라든가 불륜을 교묘하게 연기와 분위기로 치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건 지나친 단순 논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한번 바라보면 어떨까요?

  파격적인 스토리를 통해서 도덕과 윤리로 감싼 베일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는 점을 우선 지적할 수 있습니다. 침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더러운 게 되지만 누구나 입안에 침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욕망을 선악으로만 판단하는 건 중세적 사고입니다.  

  이 영화가 주목하는 또 다른 면은 여자에게 있어서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의미입니다. 원작의 제목이 <그랜드마더스>인 건 그런 의미를 함축한 거겠죠. 영화에서도 로즈의 비슷한 대사가 나오긴 하지만 원작 소설의 릴과 로즈가 나누는 대화를 보면 선명해집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우리 늙은 여자들한테 싫증을 느끼면 어쩌지?”

  “나는 눈이 빠지게 울 거야. 내리막길에 접어드는 거잖아.”

  “우리 우아하게 늙자.”

  릴이 말했다.

  “천만에.”

  로즈가 말했다.

  “나는 절대로 순순히 끌려가지 않겠어.”

  영화에서도 욕망에 휩쓸려가는 지금 이 순간과 오래된 벽지처럼 낡아가는 젊음에 대한 두려움이 섬세한 연출과 표정연기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성 감독의 관점에서 그려낸 장면과 대사들이라서 특히 여자들은 공감이 더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관객들은 <투 마더스>에 대한 야유로 ‘투 파더스’도 좋겠다고 하지만 ‘투 파더스’는 ‘투 방망이’가 되기 쉽습니다. 남자는 아이를 낳아보지 못한 존재이기에 그렇습니다. 남자들한텐 먹고 싸는 게 장땡입니다. 아저씨들, B아그라에 환장하지 않습니까.

  <투 마더스>가 보여주는 최고의 영화적 메시지는 바다 위의 나무 부표에  누워 있는 네 사람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영화 포스터의 바로 그 장면입니다. 세속적인 규범과 억압에서 벗어난 공간, 도덕과 윤리의 무중력 상태, 자유와 평화가 깃든 낙원.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기에 한 번쯤 꿈꿔보는 세상. 그런 꿈마저도 불온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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