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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Aug 20. 2021

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 신은 정말 망한 걸까요?

  S#1 신은 시골을 만들었고

        사람은 도회를 건설했다


        신은 망했다     

  이갑수 시인의 ‘신은 망했다’입니다. 우리 동네를 보면 망한 정도가 아니라 폭망이고, 파산입니다. 적어도 겉으로 볼 때는 그렇습니다. 400여 명이나 되던 초등학교가 폐교를 하고, 조무래기들로 시끌벅적하던 동네 골목길은 침묵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곳곳에 빈 농가주택은 길고양이들이 차지하고, 멧돼지들은 몽고족처럼 활개를 펼치고 있습니다. 읍내의 빈 가게마다 임대 문의전화를 써 붙인 곳이 적지 않고, 현대식으로 잘 정비된 전통시장도 활기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장날이면서 주말인데도 텅빈 읍내는 가상 스튜디오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어제 감사원이 통계청에 의뢰해 내놓은 ‘저출산·고령화 감사 결과 보고서’의 수치의 징후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5,000만 명 넘은 국내 인구가 100년 뒤 1,500만 명으로 급감하고, 현재 152만 명의 강원도 인구도 48만 명을 준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이 끔찍한 것은 자연감소가 아니라 이기적인 선택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겁니다. 아이 낳아서 뭘 어떻게 키우라고? 아이한테 내 고통을 고스란히 넘겨주라고? 그냥 딩크(DINK)족으로 살 거야!      


 

  S#2  오늘은 장날입니다.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떡방앗간 집 셋째 딸과 눈이 맞아 떡장수 장돌뱅이로 떠돌던 장씨도 장사를 접은 지 벌써 몇 년 됐습니다. 손수 농사를 지은 오이, 호박, 가지, 풋고추를 바리바리 싸서 장터에서 자판을 펼쳐놓던 꼬부랑 할매도 이년 전부터 보이지 않습니다. 늘 함께 붙어서 장사를 했는데 오늘은 욕쟁이 아줌마 혼자네요.


     

요즘 장터의 장사꾼들은 자신의 가게 매상이 신통치 않으니까 장날에 맞춰 부나비식으로 몰려다니는 뜨내기가 적지 않습니다. 신발 한 켤레, 고등어 한 손, 찐빵과 만두를 사는데 밀고 당기다 주고받는 덤도 없습니다. 장터에 가면 사람은 없고, 그냥 손님과 장사꾼만 있어 재미도 없고 냉랭합니다. 사람이 없으니 악다구니만 더 들끓고 있습니다.        



  S#3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러나 양구가 있다.’ 예전 동부전선에서 군대생활을 하신 분들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말입니다. 양구에서의 군대생활은 그만큼 힘이 들었다는 거겠죠. 양구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양구는 접경지역으로서 분단국가의 업보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게 양구를 욕보이게 만들기도 하고요. 요즘도 양구에서 군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은 양구를 고약하게 바라봅니다. PC방의 요금이 강남보다 비싸다느니, 식당에 가면 주인이 흡혈귀처럼 군다느니 별의별 말이 다 들려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양구가 존재하는 목적은 군부대나 장사를 위한 게 결코 아닙니다. 양구의 대다수 주민들은 대대손손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을 뿐입니다. 장사를 하는 분들은 대개 외지에서 들어온 분들이기도 합니다. 저도 물건 하나를 살 때 턱없이 비싼 가격을 보며 짜증이 나다 못해 화가 납니다. 양구가 무슨 차마고도처럼 마방으로 물건을 나르는 곳도 아니고, 아프가니스탄의 카블 계곡처럼 반군 위험지역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비싼 건가. 장사하는 분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죠.  군생활도 힘이 드는데 어쩌다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읍내에 나오면 더 짜증 납니다. 기분이 상하는 건 당연하죠. 그래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쨌든 양구에서 군생활의 추억 한 조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 오늘도 땀 흘리며 국방의무에 충실한 젊은이들한테는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쓸개즙 같이 쓰디쓴 양구, 그래도 그 못난 양구가 언젠가 쓸 자신의 자서전에서 빛나는 부분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양구에서도 살아났는데 뭘 못하겠어!!!             



  S#4 허리가 고부라진 할머니. 평생 논밭 일을 지고, 이고 다닌 당신의 위대한 이력서입니다. 허리가 더 바싹 고부라진 할머니. 평생 논밭 일을 지고, 이고 다니다 이젠 온몸을 땅에 뉘려고 가깝게 다가가는 중입니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말하진 않아도 그늘 아래서 영감님들하고 유유자적 점당 백 원짜리 고스톱을 치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오늘 같은 장날 땀을 뻘뻘 흘리며 무쇠 후라이에 메밀 전을 부쳐 파는 할머니도 있고요.  어떻게 살아오셨든, 어떻게 사시든 간에 당신들의 삶은 숭고했습니다. 당시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양구가 불모의 땅을 면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소박하고 장렬하게 쓴 서사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잘 벼린 화살촉처럼 가을볕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는 강원도 양구의 오일 장날, 한나절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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