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하마 Aug 22. 2021

영화 <두 교황>님이 주는 감동

- 정치인들이 반드시 봐야 할 영화


  <두 교황>은 사실에 근거한 영화입니다. 로마 교황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종교영화가 아닙니다. 독일 출신의 베네딕트 16세 교황이 스스로 교황직을 사임한 뒤,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는 과정을 팩트와 드라마를 적절하게 믹스하여 관객들에게 묵직한 감동과 잔잔한 재미를 동시에 선사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갈등을 인간적인 소통으로 화해하고, 종교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자리매김을 해야 아름다운지를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가 신을 믿는 건 세상을 좀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함이라는 명제와도 부합합니다.  

  교황 베네딕트 16세 교황의 배역은 안소니 홉킨스가 맡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배역은 조나단 프라이스가 맡았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된 후 로마에서 람페두사로 가기 위해 여행사에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여행사 직원은 장난전화로 여기고 끊어버리죠. 이 첫 장면은 마지막 씬으로 다시 나오게 됩니다. 전형적인 수미상관 수법이죠.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방문지로 자신의 모국인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아주 작은 섬인 람페두사로 가는 건 낡은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가 죽은 난민들을 추모하기 위함입니다.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을 위로하는 것이야말로 종교가 해야 할 일이죠.

  영화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종교적 여정을 보여주면서 로마 교황청으로 가는 것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추기경 직을 사임하는데 교황의 사인을 받기 위한 방문 계획이었죠. 그와 동시에 바티칸으로부터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보통 사람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고, 믿음이 있는 분들은 신의 부름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때 바티칸은 성추문과 기밀문서 유출 사건으로 시끄러울 때였습니다.

  로마 교황청이 아닌 여름 별장에서 베네딕트 16세 교황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을 만나게 되고, 둘의 대화에서 신학적인 이념의 차이가 다르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베네딕트 16세는 교회의 제도와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 색채가 뚜렷했고,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변화를 중시하는 진보적 이념의 신앙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별장의 정원사와 친근하게 오레가노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멀찍이서 보고 베네딕트 16세는 냉소적으로 “평생 여기에서 산 거 같군!” 말하기도 하죠.



  두 사람의 신념이 다르다는 건 교회의 제도와 전통에 대한 대화에서 드러납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민감한 동성애나 피임, 이혼한 자들에게 성체를 주는 문제까지 확연히 시각이 다르다는 걸 뜻합니다.

  “하지만 선을 긋지 않으면.”

  “또 담을 지어 구분하자고요?”

  “담이 나쁜 것처럼 얘기하는데 말이오, 집도 담이 있어야 해요. 아주 강한 담으로요.”

  “예수님도 담이 있었나요?……자비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아서 담을 폭파시킵니다.”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교회의 변화에 대한 태도도 명확하게 다릅니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베네딕트 16세 교황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전 달라졌습니다.”

  “타협한 거죠.”

  “아니요. 타협이 아닙니다. 전 변했어요.”

  “타협.”

  “서로 다른 겁니다.”

  (베네딕트 16세의 깊은 한숨 소리에 이어)

  “변화는 타협이오.”  

  “주님께서 주신 삶은 변화하는 겁니다.”

  “주님은 변하지 않아요.”

  두 분의 종교적 신념은 선명하게 다릅니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자신이 사임하려는 이유를 은유적으로 밝힙니다. 교회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은 더 이상 영혼과 진심이 없는 영업사원으로도 물건을 팔 수 없다고 말이죠.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베네딕트 16세 교황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몇 차례 서류를 내밀지만 딴청을 부리고, 아예 서류 자체에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단단한 담벼락 같은 대립에 틈이 조금씩 보이는 건 진정성 있는 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교황의 어머니 바이에른 전통방식으로 만든 만두 영양식의 식사대접에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감동합니다. 어머니 젖가슴처럼 봉긋한 만두의 생김새 때문인지 어린아이 같은 표정과 웃음을 지으며 냄새를 맡죠.

  두 사람은 교회의 제도와 전통에 대해 다른 입장이었지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베네딕트 16세의 스메타나의 피아노 곡과 베르고글리오의 비틀즈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게 됩니다. Abbey Road와 Yellow Submarine. 그리고 Eleanor Rigby. 아무래도 Eleanor Rigby는 가사에 맥킨지 신부와 구원이 나오기 때문에 그것과 연관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피아노를 치면서 나누는 대화와 와인, 그리고 신학생의 담배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영혼의 주파수는 비슷하게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신학생의 담배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줍니다.

  기도를 할 때 담배를 피우는 건 어떻습니까? 노우!

  그러면 담배를 피울 때 기도를 하는 건 어떻습니까? 예스!

  마음을 열기 시작한 두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마르게리타와 디아볼라 피자에 환타를 마시며 식사를 합니다. 그렇게 거리감이 좁혀지면서 베네딕트 16세 교황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한테 교황직에서 사임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합니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교황은 종신직이어서 사임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말하자 베네딕트 16세 교황은 700년 전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의 사례를 제시합니다.

  이를 기점으로 해서 두 사람은 서로가 신앙의 길을 걸어오면서 겪고 있는 인간적 고뇌를 털어놓으며 고해성사를 하게 됩니다. <두 교황>에서 가장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베네딕트 16세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에게 하는 고해성사는 묵음으로 처리하긴 했지만 그 당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신부의 아동 성추행에 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묵음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겠죠. 교황의 고해성사이고, 더구나 민감한 문제니 까요. 베네딕트 16세는 단호하게 처벌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베네딕트 16세에게 7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 시대에 협조한 과거를 고해성사합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신과 함께 살지만 신이 아니고 인간일 따름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진실은 중요하지만 사랑이 없는 진실은 견딜 수 없으며, 진실 안의 사랑만이 의미가 있다는 걸 공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성부와 성령, 성자의 이름으로 용서를 하게 되죠. 신념이 다른 두 사람이 화해하는 건 상대를 포용하고 이해하는 종교의 기본 정신입니다.      


  <두 교황>님을 보면서 눈과 귀가 즐겁고, 감동으로 다가왔던 장면이 있습니다.

  베르고글리오가 화장실에서 휘파람으로 불던 아바의 ‘댄싱 퀸이 장엄한 연주곡으로 이어지면서 콘클라베의 장면을 보여주는 게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콘클라베의 엄숙한 진행과정을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요.  교황을 선출하는 게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인 행위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들리는 비틀즈 노래도 빼놓을 수 없죠. 헬기를 타고 이동할 때의 Eleanor Rigby와 베르고글리오를 공항으로 환송할 때 흘러 나온 Blackbird는 그 가사와 연관된 베네딕트 16세의 마음을 표현한 거란 생각이 나만 들었던 아니겠죠?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콘클라베를 통해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제일 먼저 베네딕트 16세를 위한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었습니다. 화해 장면의 끝판왕이었죠. 그래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을 <두 교황>님께서 즐겁게 관전하는 걸 감동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베사메무초’ OST는  덤이었고요.     



  사족 – 무지개가 아름다운 건 일곱 가지의 색깔이 자기 빛깔을 포기하지 않지만 기꺼이 함께 묶이는 것도 거부하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과 함께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가 누구를 찍어야 한다면 차선과 최악이 아닌 최고의 선택이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요.                   

작가의 이전글 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