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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Sep 02. 2021

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 사과 속에 들어있는 세상의 모든 것

  


  빨갛게 익은 사과는 가을의 전령사입니다. 시련을 견뎌내고 이루어낸 빨간 색깔. 색깔은 빛의 고통이다. 괴테의 말이죠. 빨간 색깔의 사과는 햇빛과 바람과 비, 그리고 사람의 노고가 빚어낸 겁니다. 하루아침에 뚝딱 생겨난 게 결코 아닙니다. 발걸음을 죽여 조심스럽게 사과밭으로 다가가면 사과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봄, 여름. 가을의 세 계절을 힘겹게 지나온 안도의 한숨 같기도 합니다. 이제 무겁게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온몸으로 중력을 견뎌내고 있는 중입니다. 며칠 있으면 꼭지를 떨어뜨리고 안식을 취할 마지막 단계에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거죠. 

  사과는 과일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죠.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 개의 사과는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는 에덴동산의 사과입니다. 신이 내린 금기를 어기고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서 먹은 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궁금증이 앞섰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 마라고 하면 더 해보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거든요. 그러니까 사과를 따서 먹은 건 꼭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호기심의 발동이었는지도. 어쨌든 그 선택은 인간의 자유의지였고, 그로써 인간은 모든 게 정해진 신의 절대적 영역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역사의 시초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뉴턴의 사과입니다. 뚝! 떨어지는 사과에서 지구의 중력으로 인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자연을 과학이론과 법칙으로 체계화하고, 과학기술을 통해서 자연을 자원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뉴턴의 사과는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는 중세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높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사과는 윌리엄 텔의 사과입니다. 권력자에 대항하다가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화살로 맞춰야 하는 시험에 빠지지만 사과를 명중시켜 아들을 구하게 됩니다. 아들의 머리 위에 있는 사과를 화살로 맞추는 것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인간의 숭고한 몸짓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과가 재배된 건 백 년이 조금 넘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오래되진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화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사과의 재배지역도 점점 북상하는 추세입니다. 제가 있는 강원도 양구도 최근 사과를 재배하는 농가가 부쩍 늘었습니다. 문제는 피땀 흘려 키워서 수확해도 유통과 판매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유통구조가 워낙 복잡해서 마트나 쇼핑몰에서 판매된다고 해도 농가는 농가대로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정부에서는 해마다 가을만 되면 유통 단계를 간소화한다고 하지만 아직도 요원합니다. 

  유통업계나 전문기관의 예상에 의하면 올해는 특히 사과가 거의 금값이 될 거라고 합니다. 불안정한 날씨 탓으로 인해 예년보다 생산량이 감소한 게 주된 이유라고 하죠. 사과 값이 지나치게 비싸면 소비자의 손길은 대체 과일로 가게 돼 있습니다. 요즘 흔한 게 수입산 과일이니까요. 안타깝고 아쉬운 일입니다. 

  정말 간절하게 바라는 건 생산농가는 땀 흘린 만큼 적정한 보상을 받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품질 좋은 사과를 부담 없이 먹게 돼 그야말로 농가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아름다운 관계가 됐으면 합니다. 신토불이!     

  혹시 강원도 사과를 원하시는 분들, 주문도 받습니다. 저희 동네 생산농가와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시중 가격보다 20% 정도는 저렴하고요, 무엇보다 나뭇가지에서 금방 꼭지를 딴 사과이기에 싱싱합니다. 조생종 사과 홍로입니다. 부사는 10월이나 돼야 수확합니다. 필요하신 분들, 연락 주세요.

   noranhama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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