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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Sep 07. 2021

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 재능기부를 하다

  곧 수시 입학원서 접수가 시작됩니다. 고3 수험생은 물론 부모님까지 애가 타고 조바심이 날 때죠. 특히 수시 원서의 자기소개서를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요즘 대치동의 입시전문 컨설턴트들은 그야말로 메뚜기도 한철이란 말처럼 정신없을 때죠. 여기 강원도 양구는 그런 거 없습니다. 학원도 별로 없고, 맹모삼천지교는 거의 딴 나라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도 고등학교가 있는 터라 제가 도서관 담당자분께 관내 고3 수험생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 쓰는 법에 대해 재능기부 강의를 해주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더니 이내 학교에 안내문을 발송하고, 스케줄을 잡았습니다. 고3 수험생 가운데 인 서울 대학이나 국립대를 목표로 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했는데 대여섯 명이 강의를 신청했습니다. 서울대부터 동덕여대에 이르기까지 지원대학도 다양했습니다. 총론 2시간 강의를 마친 뒤, 개인별로 시간을 정해 일대일 대면첨삭을 했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 재능기부에 대한 보람도 있습니다. 모쪼록 아이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으면 하지만 욕심을 부리지는 않습니다. 노력한 만큼 딱 그 정도요.



  학생들이 쓴 글을 보면 느끼는 게 있는데 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지도해줬으면 하는 점입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인재상이 뭔지 아시는지요? 창의적인 융합형의 인재상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강조한 것도 창의적인 아이디어(creative idea)와 열정(passion)이었죠. 글은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이 기록되는 게 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글과 생각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가끔 생각은 깊은데 그게 글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죠. 글로 표현되지 않는 생각은 잡념이거나 망상이기 쉽습니다. 운전할 때 좌회전을 하면서 오른쪽 깜빡이등을 켜면 어떻게 될까요? 정신이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종종 어떤 글을 읽을 때 독해 수준을 뛰어넘어 고문헌과 외계인의 기호를 해독하는 품을 들여도 이해불가능의 벽에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타인과 소통되지 않는 글은 방언 기도나 무당의 주술과 다를 바 없습니다. 생각이 잘 정리되면 명문은 아니더라도 반듯한 글은 됩니다.

  반면에 생각은 따로 둔 채 말과 글로만 혹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기꾼이나 정치가들이 그런 특기가 있죠. 오죽하면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흐루시초프도 ”정치가는 어디나 다 똑같다. 물이 흐르지 않는 냇가에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한다.”라고 했을까요. 정치지도자들이 글은 제대로 쓰지 못하더라도 생각만은 온전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정치지도자가 이상한 생각을 하면 온갖 수고는 애꿎은 국민의 몫이 되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양구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메마른 밭작물을 애타게 바라보는 농부에게는 기쁨으로, 카블 계곡에서 탈레반 정부군한테 RPG-7 로켓포를 겨누는 저항군에게는 갈증 해소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공공 근로를 나간 지아비를 종일 내내 기다리는 아낙네에게는 그리움으로 내리는 가을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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