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 민망하고 잔인한 광고

by 노란하마


<농로 전봇대의 국제결혼 광고>


농촌 총각들을 타깃으로 한 국제결혼 광고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광고가 아니라 토끼나 고라니가 다니는 길목에 설치해놓은 올무같은 겁니다. 농촌 총각들한테 던지는 미끼이기도 하고요. 한적한 농로에 있는 저 광고를 누가 볼까 싶지만 농촌 총각들은 쳐다보지 않을 수 없죠. 경운기나 트랙터를 몰고 갈 때 눈길을 안 줄 수 없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으니까요. 요즘은 농촌에서도 외국 여성과 결혼하는 게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닙니다. 동걸이 댁네도 베트남 나트랑에서 시집와 아들 딸 낳고 잘 삽니다. 가끔 콩밭 매고 풋고추 따는 일을 시킨다고 시어머니 흉을 보긴 하지만. 여름철에 밭일하는 건 정말 고욕이거든요. 어쨌든 다문화 가정은 이제 현실입니다. 문제는 능력이 되지 않는 농촌 총각들인데요. 아침저녁으로 자전거를 타고 논물을 보러 다니는 순원 아재도 전화를 걸어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십이 훌쩍 넘었으니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결혼업체에 줘야 하는 수수료와 신부 측한테 건네야 하는 지참금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대로 물려받은 밭뙈기를 팔아도 턱없이 부족하니 광고를 볼 때마다 부아가 났지만 이젠 다 포기한 상태입니다. 맥이 빠진 거죠. 마흔이 훌쩍 넘은 청년회장 상길 씨도 전화를 걸었다가 슬그머니 끊었는데요. 결혼이 교환가치로 거래가 된 지는 이미 오래됐습니다.

요즘 아스파라거스와 오이 하우스 안에서는 억센 발음의 필리핀 타갈로그어가 요란하게 들려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인데, 스마트 폰에 앱을 설치해 필리핀 노래를 들으며 일을 합니다. 우리말은 못하지만 눈치가 빨라 일도 척척 잘한다고 합니다. 농가의 평도 나쁘지 않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유탄을 맞은 건 동네 어르신들입니다.


<텃밭의 감자를 캐는 어르신들>


예전에는 노동력의 희소가치가 워낙 높아 홍천, 횡성, 심지어는 제천까지 용병처럼 원정을 가서 톡톡히 수입을 올렸는데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유입된 이후로는 십 원짜리 내기 고스톱을 치는 게 일과입니다. 가끔 텃밭에 심은 감자를 캐거나 고추밭을 일구는 게 고작이죠. 돈벌이와 거리가 먼 소소한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컴맹에 인터넷을 아예 모르고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한 순원 아재랑 상길 씨한테 야동이나 보여줄까 싶은 생각이 불쑥 들기도 하지만 거기에 맛을 들이면 쉽게 끊지 못하는 마약 같은 거라 감히 입 밖에는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선의의 의도대로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언제 슬쩍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긴 할 겁니다. 야동을 본 적이 있냐고. 어쩌면 야동이 뭐여?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