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 아저씨는 오이 농사를 지으면서 염소와 토끼도 키우고 있습니다. 염소나 토끼가 큰 돈벌이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가축을 키우는 건 농가의 관습입니다. 나도 가끔 뽕나무나 칡덩굴을 끊어다 주는데 이 염소 세 마리를 볼 때마다 착잡합니다. 중간에 있는 암컷 염소는 제일 위에 큰 염소의 어미입니다. 어미가 낳은 새끼인 거죠. 제일 아래쪽에 있는 작은 새끼는 지난겨울에 낳았는데 그 아비는 제일 위에 있는 수컷 염소입니다. 그러니까 수컷 염소는 암컷 염소의 아들이면서 남편이고, 새끼 염소한테는 형이면서 아비 염소가 되는 셈입니다. 근친 교배로 이루어진 거죠. 염소 농가에서는 새로울 게 없는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게 염소 농가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수컷 염소는 시도 때도 없이 제 어미이자 아내인 암소 염소와 동생이면서 아들인 염소를 들이박기 일쑤입니다. 폭력 같지만 서열을 정하는 거라고 봐야겠죠. 잠을 잘 때는 세 마리가 조용합니다. 서로 기대고 잘 잡니다. 푸른 풀을 먹고 까만 똥을 싸는 독특한 소화기 구조만큼이나 가족체계도 복잡합니다. 올가을에 또 새끼를 낳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염소 가문은 또 그렇게 가문을 이어갑니다.
<복잡하고 기이한 염소 가족>
토끼도 세 마리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걸을 때 씀바귀를 뜯어오는 게 거의 일과처럼 돼 버렸습니다. 토끼가 씀바귀를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귀엽습니다. 먹이 주는 사람을 알아보고 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먹여 주는 사람이 최고입니다. 토끼는 일 년에 5~6회 정도의 새끼를 낳는다고 하니까 다산의 제왕이기도 하죠.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게 안쓰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항상 포식자들이 노리는 먹이이다 보니까 생존전략으로 많이 낳을 수밖에 없는 거죠. 특히 토끼가 발정해서 교미할 때 10초 내외로 일을 치릅니다. 순식간에 끝나는 거죠. 사정하는 게 아니라 거의 툭 뱉는 거라는 표현이 맞죠. 그렇게 빨리 끝내는 건 다 이유가 있는데요, 포식자에게 잡혀 먹을까 봐 그렇다는 겁니다. 사자는 발정기에 15분마다 한 번씩 일주일 내내 500회까지 교미를 하고, 돼지는 오르가슴을 느끼며, 돌고래는 유희처럼 즐긴다고 하는데 토끼는 한 치의 여유도 없습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거사를 치러야 한다는 건 서러운 일이죠. 어쨌든 그래도 공룡은 멸종됐지만 토끼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세 마리의 토끼가 머지않아 토끼 사단을 이룰 거라고 봅니다. 쫓기면서도 부지런히 교미하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최근 연세대 의대에서 공개한 ‘2021년 서울 거주자의 성생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년간 여성은 43%, 남성은 29%가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20대는 58%로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고 하는데요, 남자는 할 상대가 없는 반면에 여자는 할 마음이 없는 거겠죠.
<토끼 사단을 이룰 세 마리의 토끼>
토끼는 아직도 거시기~ing이고, 여전히 거시기~ing입니다.
앨리스가 토끼를 쫓다가 커다란 구멍으로 빠져 들어가 이상한 나라의 환상을 경험하듯이 세 마리를 토끼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혹시 토끼 사단을 이룬 병정들이 우리 동네를 정복하는 건 아닐까.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 하마만큼 큰 토끼가 태어나는 건 아닐까. 늘 쫓기는 신세였던 게 한이 돼서 송곳니에 사자 갈기를 한 포식자의 돌연변이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 용왕이 토끼의 간을 빼앗지 못한 것과 사람들이 토끼고기를 많이 찾지 않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 토끼가 거시기할 때만큼은 편안했으면 합니다. 여친이랑 침대에 나란히 누었는데 누군가 10분마다 초인종을 누른다고 생각해보세요. 미쳐서 돌아버리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