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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Sep 29. 2021

영화 <커런트 워>를 보고 나서

- 맹한 에디슨과 사업가 웨스팅하우스, 그리고 열정적인 발명가 테슬라


  영화의 첫 장면. 얼핏 보기에 에디슨이 눈보라 속에 서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눈보라가 아니라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보라였습니다. 왜 그 물보라를 뒤집어쓰고 서 있는지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아주 흔한 수미쌍관의 수법을 쓴 거죠. 

  역사적 인물을 극화한 영화는 이미 팩트에 저당이 잡힌 이야기이기에 긴장이나 반전은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까딱하면 개인을 영웅시하는 전기물로 전락할 수도 있죠. <커런트 워>를 보면서 다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더구나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이클 섀넌, 니콜라스 홀트, 톰 홀랜드의 화려한 스타를 캐스팅하고서도 고춧가루가 빠진 맹맹한 짬뽕 같은 영화가 돼버린 건 감독의 역량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커런트 워>는 우리가 흔히 일컫는 발명왕 에디슨에 대한 영화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초창기 전기 개발시대에 시장에서 직류와 교류가 한판 벌이는 전투 이야기입니다. 제목을 current war로 붙인 건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제가 문송이라서 직류와 교류의 개념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지만 영화에서 나온 대로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직류는 물이 한쪽으로 흐르는 것이고, 교류는 양쪽으로 흐르는 원리입니다. 에디슨은 직류를, 웨스팅하우스는 교류를 고집합니다. 에디슨이 직류 시스템을 고집하는 이유는 교류가 효율적이긴 해도 너무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실제로 웨스팅하우스의 충실한 직원이었던 프랭클린 레오나드 포프는 교류로 인한 감전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에디슨을 그 사고를 자신의 사업에 이용하기도 하죠. 그래서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사기꾼입니다. 사람들의 공포심을 이용해 먹는 인간이죠.” 

  사실 영화를 보면 에디슨이나 웨스팅하우스는 모두 사업가입니다. 에디슨의 경우는 몽상적이고, 인간적이며, 아주 집요한 성격의 소유자로 그려졌습니다. 반면에 웨스팅하우스는 현실적이고, 타협적이며, 합리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대조적인 캐릭터도 둘 다 사업가일 뿐이라는 그늘이 너무 컸기에 캐릭터에 의한 극적인 긴장감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에디슨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배역을 맡았고, 웨스팅하우스는 마이클 셰넌이 배역을 맡았는데 배우의 이미지를 보면 차라리 배역을 바꾸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거기다 테슬라는 니콜라스 홀트가 맡았는데 정말 아쉬운 점은 극적인 캐릭터의 매력과 긴장미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겁니다. <커런트 워>를 보면서 영화라기보다는 다큐 같은 느낌이 든 것도 그런 점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커런트 워>의 극적인 긴장과 반전의 효과를 살리려면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성격을 좀 더 격렬하게 부딪치는 쪽으로 몰고 갔어야 했습니다.  에디슨의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서 백악관으로부터 무기 개발을 하는데 5백만 불을 투자하겠다는 제의를 단칼에 거절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생명을 빼앗는 장비는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야만적이에요.”

  그렇게 거절한 에디슨에게 사무엘 인슬이 묻습니다. 

  “근데 군수품은 왜 안 만드세요? 오백만 불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 

  “안 돼. 에디슨 제품이면 효율적이어야 해. 살인도구가 효율적이면 안 되지.”

 그런 휴머니즘의 신념도 그냥 호사가의 치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교류를 사용하는 전기 사형 의자를 만드는데 은밀한 조언을 하면서 웨스팅하우스의 부정적 이미지를 확대시키는 사업수완으로 활용하게 되죠. 나중에 그런 사실이 밝혀지자 관계자한테 왜 비밀을 지켜주지 않았냐는 불평을 늘어놓게 되는데 에디슨의 캐릭터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에디슨을 간교한 인물로 그린 것도 아니었으니 애매모호한 캐릭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커런트 워>의 가장 극적인 부분은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를 두고 벌이는 직류와 교류의 전쟁입니다. 처음에는 에디슨과 손을 잡았던 테슬라가 결별을 고하고,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교류를 개발하는 과정을 좀 더 치열하게 몰고 갔더라면 훨씬 긴장감도 고조시키고 반전도 만들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드라마든 영화든 캐릭터의 갈등에서 극적인 흥미가 생기는 법이니까요. 

  <커런트 워>를 보는 내내 에디슨의 영화이지만 오히려 테슬라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감독의 곁눈질도 허술하기는 그지없었습니다. 테슬라의 대사를 보면 방점을 찍어야 할 만큼 가슴에 와닿습니다. 테슬라는 미래를 보는 시각이 있었거든요. 

  “나이아가라 발전소는 미래 시설입니다. 시카고 박람회 너머를 봐야죠. 에너지는 식량, 물, 공기처럼 필수 자원이에요.” 

  마지막 씬에서도 그의 메시지는 가슴에 남습니다. 

  “진정 영원한 것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것은 우리의 아이디어입니다. 우리가 남길 것은 오직 그것이며, 우리를 밀어주는 것도 오직 그것뿐입니다.”   

  애초부터 에디슨이 아니라 테슬라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였다면 훨씬 멋진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기획 미스인 셈이죠. 

  어쨌든 <커런트 워>의 극적인 긴장과 반전이 맛이 떨어진 것은 캐릭터의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고 우왕좌왕 하는데서 빚어진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기꾼의 쇼맨인지 위대한 발명가인지 정체성을 명확히 했어야 합니다. 교차 편집으로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면모를 보여준 것도 스토리에 부합하지 않고 그저 단편적으로 보이는 장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테슬라가 에디슨과 결별하고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일하게 된 과정을 좀 더 극적으로 몰고 갔더라면 훨씬 몰입도도 높아졌을 겁니다. 인물이 노선을 바꾸는 건 한쪽에서 보면 궤도수정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배신이 되는 일이니까요. 그것만큼 인간사를 짜릿하게 만드는 일도 없죠. 

  시카고 세계박람회가 멋진 전쟁터가 됐어야 하는데 너무 밋밋했습니다. 세계의 문명사를 바꾸는 역사적 사건이었는데 그저 다큐식으로 설명해버리니 김 빠진 사이다나 다름없죠. 

  감독은 맨 마지막에 이런 대사를 넣습니다. 

  “에디슨은 전류 전쟁에서 진 후 활동사진으로 특허를 취득하고 영화를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보여준 나이아가라 폭포수의 물보라를 담는 촬영 장면을 서비스로 보여주죠. 에디슨을 위로하는 것인지 추모하는 것인지 헷갈렸습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구를 만든 건 영국의 햄프리 데이비입니다. 에디슨은 그걸 실용적으로 대중화 한 사람이고요. 어쨌든 우리가 쓰는 전기에 대한 전기적 인물들, 에디슨과 웨이팅하우스, 그리고 테슬라를 섭렵하는 밋밋한 시간이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쉬움을 달래준 건 <커런트 워> 촬영을 정정훈 감독이 했다는 것입니다. <아가씨> <올드 보이> <박쥐> <친절한 금자씨> <신세계> <부당거래> <평양성> 등등 수많은 작품을 찍은 촬영감독이죠. 더 좋은 영화로 뵙기를 기대합니다.  


  사족 – 우리나라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같은 역사적 사건의 일어났을 때 미국에서는 전기 전쟁이 한창이었고, 코카콜라가 탄생하기도 했던 시기였네요. 유럽에서는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가 출간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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