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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Nov 06. 2021

영화 <완벽한 가족>에 대한 단상

- 가족이 함께 하는 죽음 파티


  죽음은 인간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어디 인간뿐일까요. 모든 생명체가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건 거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죽음의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신앙에 의지하기도 하죠. 소풍 가듯이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맞이하는 건 시적 발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늙어서 벽에 똥칠을 하면서까지 생명줄을 움켜쥐고 있는 건 아직 결승선까지 거리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남아 있는 거리가 견뎌내기 힘들고, 희망 없는 고통뿐이라면 문제는 달라지죠. 마지막으로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선택하는 삶, 어떤 이들에게 그것이 구원이고 간절한 소망일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 릴리(수잔 서랜든)는 침대에서 간신히 일어나 혼자 옷을 입는 것마저 힘들어합니다. 온몸이 서서히 마비돼 가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 머지않아 팔을 움직일 수 없고, 온몸이 마비되면 음식도 몸에 구멍을 내서 튜브를 꽂아 공급해야만 합니다. 릴리는 모든 감각을 상실한 채 숨만 붙어있는 목숨으로 사는 삶을 거부합니다. 온전하게 몸을 움직일 때 가족들과 결별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바로 존엄사죠.

  <완벽한 가족>을 이끌어나가는 스토리의 동력은 존엄사입니다. 서사적인 스토리 라인은 아주 가늘고, 존엄사의 사건이 툭 던져집니다. 모든 가족들이 집에 모이는 건 릴리의 존엄사 때문입니다. 존엄사를 둘러싼 가족들의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할 뿐이죠. 물론 그 미묘한 감정들에 덧대어서 가족들 간의 행동과 갈등을 살짝 드러내 보이기도 합니다. 일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이죠.



  릴리의 남편 폴(샘 닐)은 의사였기에 릴리의 상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릴리의 선택을 무턱대고 막을 수 없었죠. 큰딸인 제니퍼(케이트 윈슬렛)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찾아왔습니다. 둘째 딸인 안나(미아 와시코우시카)는 조금 혼란을 겪습니다. 제니퍼는 안나가 동성애 애인까지 데리고 온 것에 대해서 불만을 늘어놓다가 결국은 과거의 사건까지 들춰내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하죠. 완료형으로 끝난 사건도 얼마든지 싸움을 벌일 때는 언제든지 현재 진행형이 됩니다. 거기다가 제니퍼는 가족들만 모여 있는 집에 어머니의 절친인 리즈(린제이 던컨)가 온 것도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릴리는 고통스럽게 병상에서 있다가 의학적인 사망선고가 내려지고 난 뒤가 아니라 온전한 몸으로 정신이 있을 때 가족과 결별하기를 원했기에 존엄사를 선택했던 거죠.

  “날짜를 잡으니까 남은 날에 더 집중하게 되더라.”

  릴리의 선택이 이해되고, 공감도 됩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합니다. 엄마가 침대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부엌에서 아버지 폴과 엄마의 절친인 리즈가 포옹하고 키스하는 게 제니퍼의 눈에 띈 것입니다. 제니퍼는 단숨에 의심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리즈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엄마가 그런 선택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의심인 거죠. 제니퍼는 고민을 하다가 이 같은 사실을 동생인 안나에게 털어놓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늘 집안의 문제아로 컸지만 안나는 엄마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엄마를 더 알고 싶어. 난 준비가 되지 않았단 말이야.”

  안나는 엄마가 약을 먹으면 911에 전화를 하겠다고 윽박지를 때 제니퍼는 엄마가 결정한 것이기에 따라야 한다고 설득시키고 있던 참이었죠. 그런데 아버지와 라즈의 관계를 알고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고민하던 자매는 엄마한테 아버지와 리즈의 관계를 털어놓게 됩니다. 존엄사가 엄마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더라도 그건 아버지의 불순한 의도에서 이루어진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죠.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아버지 폴과 엄친이 리즈가 사귀도록 요구했던 건 바로 엄마였습니다. 아버지한테 사랑을 주고 떠나고 싶다는 게 엄마의 뜻이었던 겁니다.

  가족들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캐럴을 부르며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첫째, 환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게 무엇일까? 환자의 뜻에 따르는 것일까? 아니면 근거가 희박한 의학적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야 하는 것일까?

  둘째,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건 인간의 숭고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가족들의 우울한 모임이었음에도 풍성한 식탁에서 미각을 즐기며, 살아있는 순간의 아름다움과 여유를 잃지 않는 건 신도 하지 못하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별함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셋째, 자신이 평생 살아온 집에 가족을 한자리에 불러 죽음 잔치를 여는 건 죽음 이후에도 그 집에 모든 것이 고스란히 추억으로 영원히 남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릴리가 그냥 두면 유품이 될 물건들을 가족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듯 나눠주면서 그 의미와 추억을 되새기는 장면은 감동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죽음을 택한 자의 지독한 자기애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넷째, 집안의 소품들도 좋았지만 간간히 인터 컷으로 뜨는 하늘과 전원의 풍경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죽음과 조응이 되는 칼라와 풍경, 세상을 뜬 영혼들의 숨결이 그 어느 한 곳에 머물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늑한 느낌이었습니다. 릴리의 영혼이 거기에 늘 머물고 있겠죠.

  다섯째, 이 영화는 <노팅 힐>, <굿모닝 에브리원>, <체인징 레인스>를 연출한 로저 미첼 감독입니다. 로저 미첼 감독과 수잔 서랜든, 샘 닐, 케이트 윈슬렛, 미아 와시코우시카, 그리고 린제이 던칸의 연기가 빚어낸 삶과 죽음이 조응된 완벽한 시네마입니다. 배우들이 촬영하면서 가족의 연대감으로 엮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여섯째, 원제가 <Blackbird>인 건 대본에 폴 매카트니의 ‘Blackbird’의 노래가 들어가 있어서 가제로 그렇게 붙였는데 그 노래가 스토리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아 빼버린 뒤에도 제목의 어감이 좋아 그대로 결정했다고 하죠. 그 원제가 <완벽한 가족>으로 번역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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