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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Nov 20. 2021

뮤지션의 실존적 비애를 보여준 영화 <인사이드 르윈>

- 르윈 데이비스는 왜 밥 딜런이 되지 못했을까

  


  <인사이드 르윈>은 뮤지션이 주인공이지만 뮤지컬이 아닌 삶의 비애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냥 비애가 아닙니다. 아무리 밀어 올려도 거의 산 정상에서 여지없이 밑으로 굴러 떨어지게 돼있는 바위를 다시 처음부터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 시지프스처럼 실존적 비애가 가슴에 꽂히는 영화입니다. 시지프스가 아무리 바위를 굴려 올려도 끝이 나지 않는 잔인한 형벌을 받듯이 르윈 또한 그와 거의 다를 바 없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고, 고문받는 느낌마저 듭니다. 정말 지겹도록 찡합니다.

  1961년, 뉴욕의 Gaslight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포크 송을 부르는 르윈(오스카 아이삭). 환호도 없고, 앙코르도 없습니다. 노래가 끝난 뒤 르윈이 시니컬하게 내뱉는 한마디만 있을 뿐.

  “if it was never new, and it never gets old, then it’s a folk song.”(포크 송이라는 게 그놈이 그놈이라.)


 

  싱어송 라이터로 노래를 부르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난이 전 재산입니다. 함께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던 파트너는 자살했고, 발매했던 음반은 창고에 처박혀 있으니 인세가 나올 리 없습니다. 음반사로부터 박대를 당하는 건 당연하죠. 빈 지갑에 방 한 칸 없으니 남의 집 소파에 몸을 뉘는 동가식서가숙으로 간신히 하루하루 견뎌냅니다. 거기다 한때 애인이었던 진(캐리 멀리건)은 임신이라면서 낙태 비용을 요구합니다. 결국 저작권료도 없이 기획사와 독립 계약을 하고, 현금 2백 달러를 받아서 산부인과에 낙태수술 예약을 하죠. 의사에게 수술비를 지불하려 할 때 돈을 받지 않겠다는 뜻밖의 말을 듣습니다.

  어, 착한 의사 놈인가?

  노우!

  예전에 애인이었던 다이앤에게 낙태시키려고 병원에 온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의사였죠. 그때 당연히 수술을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이앤은 낙태 수술을 받지 않고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서 그냥 돌아갔다는 것. 그래서 그때 받은 그 비용을 이번 수술비로 대체하겠다는 거죠. 그 순간 혼란스럽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건 어쩔 수 없죠.



  르윈은 시카고로 오디션을 보러 갑니다. 그 과정이 또한 심상치 않습니다. 가스등 카페에서 알게 된 알 코디(아담 드라이버)의 소개로 카풀을 하게 됩니다. 사천왕상 같은 인상에 독설을 내뱉는 차주인 롤랜드 터너(존 굿맨)와 말없이 주구장창 담배만 피우며 운전하는 조니 파이브. 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입니다. 롤랜드 터너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바닥에 쓰러져 부축을 받지만 숨이 끊어진 건지 실신한 건지 뒷좌석에 짐짝처럼 실려 있죠. 그렇게 주행 중 잠시 도로 옆에 정차하고 쉬고 있을 때 경찰의 불심 검문을 받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운전사인 조니는 경찰서로 끌려갑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길이 없죠. 간신히 시카고에 도착한 르윈은 오디션을 받기 위해 버디 그로스먼(F. 머레이 에이브러함)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만 좋은 평은 듣지 못합니다. 단 한마디뿐이죠.   

  “돈은 안 되겠군.”       

  오디션에서 떨어진 르윈은 현타가 옵니다. 노래를 그만두고 고기잡이배 선원이 되려고 조합 사무실을 찾아갑니다. 배를 타기 위해서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데 그동안 밀린 조합회비를 내야만 가능합니다. 주머니의 있는 돈을 더 털어 185불을 지불하죠. 그리고 누이 집으로 가서 예전에 맡겨 둔 파일 박스를 찾습니다. 그 안에 항해사 자격증을 넣어 뒀었거든요. 그런데 누이가 그 박스를 쓰레기로 알고 다 내다 버렸습니다. 자격증이 없으면 선원이 되는 게 불가능하고, 다시 재발급을 받아야 하는데 85불이 더 필요합니다. 이미 주머니에 돈은 바닥을 드러냈죠. 결국은 항해사 자격증이 없어 선원이 되려는 뜻도 좌절되고 맙니다. 더 기가 막힌 건 바로 조금 전에 조합회비를 되돌려 받으려고 하지만 어림없습니다.

  낙장불입!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 기타를 꺼내 노래를 부릅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좋아했던 곡입니다. 그런데 노래를 듣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있는 채로 배변을 보고 말죠.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막장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르윈은 진을 찾아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말하죠.

  “여기까진 거 같아. 이제 지쳤어. 하룻밤 자면 잘 되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진은 카페 사장한테 부탁해놓았으니까 무대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라고 하지만 르윈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사랑한다고 따뜻한 시선을 보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울컥했습니다.

  카페 사장이 전부터 진이 무대에서 노래하면 ‘저년이랑 떡 한번 치고 싶다.’고 했는데 캐리 멀리건의 연기가 그 사장의 요구를 받아들인 듯싶은 눈빛이었던 터라 정말 짠했습니다. 르윈이 무대에 서는 조건을 걸고 바터제를 한 것 같았으니까요. 

  르윈이 뉴욕 거리를 걷다가 발걸음을 멈춘 채 Walt Disney의 <The Incredible Journey> 포스터를 한참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포스터에는 개 두 마리와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스터의 카피도 보여줍니다.

  ‘위험천만한 캐나다 야생숲. 200백 마일을 본능만으로 횡단!’

  A Fantastic True - Life Drama라고 쓴 포스터 표어는 바로 르윈 데이비스가 살아온 삶의 여정을 요약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인생이었던 거죠.      

  르윈은 마지막으로 카페 무대에서 자신의 인생을 담은 ‘Hang Me Oh Hang Me’와 작별의 노래인 ‘If We Had Wing’ 두 곡을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오죠. 그리고 르윈의 뒤를 이어 독특한 신인 뮤지션이 무대에 오릅니다. 그 뮤지션은 다름 아닌 바로 밥 딜런이었죠. ‘Farewell’를 부릅니다. 그때 그 카페에 뉴욕타임스 기자가 있었으니까 바로 밥 딜런의 시대가 열린 순간이 된 셈입니다.

  그리고 정체모를 사내에게 구타를 당하는 첫 장면을 다시 반복해서 보여주는 게 엔딩 씬입니다. 첫 장면에서 밑도 끝도 없이 르윈이 구타를 당하게 된 이유는 엘리자베스 하비씨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르윈이 야유를 했기 때문이란 게 자연스럽게 밝혀집니다. 그 여자의 남편이 정체모를 사내였던 것입니다.

  뉴욕의 Gaslight 카페가 있는 허름한 골목과 한 평생 가난과 비애로 이어진 르윈 데이비스의 삶이 희망도 없이 그저 무한 반복될 거라는 우울한 메시지가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인사이드 르윈>의 코드 해독

  1. 극적인 구성에 의한 서사도 없고, 반전이나 흥미 유발의 스토리 라인도 없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그 자체로서 삶의 의미를 환기시킵니다. Gaslight 카페에서 노래를 부른 뒤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구타를 당하는 장면을 처음과 마지막에 배열한 수미상관의 형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인생은 그저 영원히 반복되는 거라는 코헨 형제 감독의 철학과 통합니다. 영화적 형식이 곧 내용이고, 주제입니다.

  2.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양이는 주인공 르윈의 인생과 조응되는 중요한 모티브입니다. 골파인 교수집에서 떠맡게 된 고양이 율리시스. 율리시스의  가출로 곤경에 빠짐. 엉뚱한 길고양이를 율리시즈로 착각하여 데려옴. 시카고로 오디션 보러 가던 중 고양이를 유기시킴.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던 중 고양이가 르윈이 운전하던 차에 부딪침. 고양이는 살아가면서 짊어져야 하는 부담과 고민이기도 하고, 그런 책임을 회피하는 이중적인 제재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3. 영화가 끝날 때까지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인물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르윈의 애인이었던 진(캐리 멀리건), 짐(저스틴 팀버레이크), 롤랜드 터너(존 굿맨), 알 코디(아담 드라이버), 버디 그로스먼(F. 머레이 에이브러함) 등등. 모든 인물들이 결핍에 시달리거나 불만에 가득 찬 표정입니다. 냉전, 히피, 인종차별 같은 60년대의 시대적 그늘이 그 이유가 아닐까요?

  4. 골파인 교수 집에서 르윈이 노래를 부를 때 예전 듀엣 파트너였던 마이크가 부르던 코러스 부분을 교수 부인인 릴리안이 딸 부르자 버럭 화를 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나는 살기 위해 노랠 부르는 사람이에요. 그냥 심심풀이 놀이가 아니라고요!”   

  르윈이 화를 낸 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뮤지션의 자존심이고, 무엇보다 죽은 마이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겠죠. 릴리안이 듀엣 파트너였던 마이크 역할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5. 모든 영화의 타이틀은 거의 시작과 함께 오르기 마련인데 그게 보이지 않습니다. 르윈이 시카고에서 버디 그로스먼한테 자신의 LP판을 건네줬을 때 커버에 인쇄된 ‘Inside Llewyn Davis’가 <인사이드 르윈>의 타이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타이틀로 내세울만한 화려함도 없고, 이름 없이 그냥 묻혀  지나가버린 뮤지션일 뿐이라는 의미를 담아낸 게 아니었을까요.

  6. 피터 폴 앤 메리의 <500 Miles>을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캐리 멀리건이 부르는 게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오스카 아이삭과 저스틴 팀버레이크, 그리고 아담 드라이버 셋이 부르는 <Please, Mr. Kennedy>도 색다른 맛이 느껴집니다.        


  * 시지프스가 아무리 산 정상에 바위를 굴려 올려도 다시 밑으로 떨어져 다시 처음부터 밀어 올려야 하는 그야말로 끝이 없는 잔인한 형벌을 받고 있지만 바위는 신의 것이 아니라 시지프스 자신의 것이 되어버렸기 그걸 할 수 있는 거겠죠. 르윈 데이비스의 삶이 실존적 비애가 된 이유는 일반명사로서의 슬픔이 아니라 오직 르윈 자신의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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