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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Nov 16. 2021

신춘문예 시즌!

- 문청(文靑)들이 열병을 앓는 계절

  요즘 신문마다 신춘문예 공모를 알리는 사고(社告)가 뜹니다. 신춘문예 시즌이 온 거죠. 신춘문예 무용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지만 여전히 작가 지망생에게 신춘문예는 꿈이 실현되는 기회이기에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편배달이 왠지 불안해 성지 순례하듯 직접 신문사를 찾아가 응모한 뒤 작품보다 더 멋지게 당선소감을 써놓고 당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치기도 부려보게 되죠.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신춘문예 작품을 쓴다는 핑계로 기말고사를 대신해서 교수님한테 작품을 보여주고 학점을 딴 적도 있습니다. 풍류가 있는 시절이었죠.           


  신춘문예는 새해부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신춘문예 당선자가 한국문학사를 풍요롭게 만드는 작가로서 성장하기도 하지만 당선작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춘문예 공모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시의 경우는 수천 편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시인으로 등단하고, 소설도 수백 편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 소설가로 등단하게 되는 과정이 어찌 보면 냉혹하고 불합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작품이 뽑히기만 한다면 그 어느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과 찬사, 그리고 유효기간이 한 6개월쯤 되는 기쁨은 마땅히 당선자가 누려야 할 몫이기도 하죠. 특히 낙선에 낙선을 거듭한 끝에 당선이 됐다면 더 그렇습니다. 반면에 낙선자의 입장에서는 참 속이 쓰린 일이지요. 단 한 사람만의 당선자를 빛내주기 위해 자신은 그저 들러리를 선 것에 지나지 않았구나, 하는 현타가 오게 되면 상처는 꽤 오래갑니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데 백약이 소용없습니다. 굳이 진통제보다는 소주가 조금 나을 뿐이죠. 어쨌든 한 동안 시는 쳐다보기도 싫고, 소설도 다 부질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심사위원한테 불만을 쏟아놓기도 하죠. 

  예심을 제대로 한 거야? 건성으로 한 게 맞네. 

  조사 하나, 선어말 어미 하나 쓰고 바꾸길 수십 번했지만 그런 노고가 도로(徒勞)가 되고 보면 신춘문예에 가졌던 기대감은 어느새 배신감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거기다 필력이 자신보다 더 나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지인이 당선됐다는 소식이라도 전해 듣게 되면 신춘문예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감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죠. 그래도 마약 같은 문학의 매력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배신감과 불신감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복수심으로 불타올라 ‘이번에는 기필코!’를 다짐하며 다시 도전하게 됩니다. 배신감은 사랑의 다른 감정이었을 뿐입니다.      저도 신춘문예 다수 낙선 경험자입니다. 최종심에 두 번이나 올라 심사평에 이름이 거론돼 당선자만큼이나 많은 위로의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참 멋쩍은 일이죠. 자주 떨어지다 보니까 나중에는 그쪽에 대한 분석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지만 그 분석도 따지고 보면 자기 위안이나 합리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올해도 변함없을 수많은 응모자 여러분께 최소한 기본으로 갖춰야 하는 점, 몇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신춘문예 당선작은 로또처럼 행운으로 선택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습작해 놓은 작품이 있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불쑥 디밀지 마십시오. 그런 응모작품이 많을수록 경쟁 숫자를 높여 당선자의 영광을 더 빛나게 할 뿐입니다. 

  둘째, 자신이 쓴 작품을 적어도 몇 사람한테 정독시키고 그에 대한 평가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몇몇 대학의 문창과에서는 신춘문예를 대비하여 그룹을 만들어 전력투구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훈련 때문인지는 몰라도 효과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셋째, 심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물리적인 시간으로 볼 때 정말 충분하게 심사숙고를 거쳐 이루어지는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좋은 작품이 선택이 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심사위원의 시선을 끌 만한 문장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 문장에 소구력이 있다고 해도 작품 전체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의미가 없겠죠. 특히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쓰는 게 신인에게 요구되는 패기입니다. 그걸 기억해 두세요. 싱어게인의 이무진이 미성은 아니지만 개성 때문에 매력이 있는 것처럼요. 

  넷째, 글을 쓰는 동안 어려움도 있지만 위로를 받고 조금의 기쁨을 느꼈다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것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또 낙선도 하나의 자산입니다. 그것을 그냥 흘려보내지 마시고, 숙성시키면 충분히 좋은 결실로 맺어집니다. 신춘문예로 글쓰기의 마침표를 찍을 게 아닐 거라면 더 그렇습니다.  

  다섯째, 응모를 했다면 또 응모할 계획이라면 이미 당신은 작가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단지 공인받지 못한 게 아쉬운 일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쓴다면 언제든 후에 이루어질 일이니까요.      

  

       모든 작가 지망생, 아니 예비 작가 여러분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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