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 범생이와 건달 농부

by 노란하마

한자 米(쌀 미)를 파자하면 八 十 八이 됩니다. 이는 볍씨를 골라 담그고, 못자리에 부어 키워서 모내기를 한 뒤 병해충 방제를 해서 가을에 추수를 한 뒤 도정을 해 쌀이 되기까지 사람의 손이 여든여덟 번 가야만 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쌀의 1인 소비량이 많이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쌀은 우리의 주식입니다. 한두 끼 정도는 밥을 먹지 않고 빵으로 때울 수 있지만 며칠 지나면 따뜻한 집밥이 그리워집니다. 콩나물 국밥이나 순댓국에 밥이 들어있지 않으면 맥이 빠지지 않을까요? 삼계탕에 대추, 밤, 인삼만 들어있고, 찹쌀이 빠져있다면 좀 심심하지 않을까요? 쌀을 생략할 수 없는 주곡이기에 어느 농가든 벼농사는 기본입니다. 농촌 어디를 가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게 벼가 자라는 논입니다. 벼농사의 95%가 기계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결정적인 건 사람의 손길입니다. 주인의 손길이 성기면 벼도 성길 수밖에 없습니다. 제방을 걷다 보면 벼가 잘 자란 논은 설명하지 않아도 농부의 손길과 노고 정도가 어떤지 한 번에 드러납니다. 하지만 조금 엉성하게 자란 논바닥의 벼를 보게 되면 괜히 미안한 감정마저 듭니다. 물론 농사짓는 방법의 차이고, 농부의 개성일 수도 있죠.

<벼가 날씬하게 커가는 논>


위 논의 주인은 아마 범생이 농부가 확실합니다. 주인을 닮아 벼도 반듯합니다. 문제아도 없고, 가출한 아이도 없습니다. 모두 제 자리를 지키고 있죠.


<벼보다 잡초가 우거진 논>


위 논의 주인은 건달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시골에서 흔히 쓰는 말 가운데 논둑 건달이란 게 있습니다. 논둑을 건들건들하며 걷는 건달이 바로 논둑 건달입니다. 건달은 하늘 건(乾)에 달통할 달(達)로 이루어졌는데 하늘의 이치를 달통했다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늘의 이치를 달통했으니 굳이 땀 흘려 애써 일하지 않는 거겠죠. 모를 대충 심어놓으면 지들이 알아서 클 것이라고 여길 테고, 수확은 적어도 직불금이 나오니 먹고사는 덴 별 문제없다고 천하태평일 겁니다. 어쩌면 고스톱 판이나 기웃거리다가 읍내의 성인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강원랜드로 원정을 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니면 단란주점에서 한량처럼 술에 빠져 미스 김이랑 노닥거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농사든 사업이든, 닭을 키우든 소를 키우든, 공부든 운동이든 땀을 흘려 노력하는 자만이 결실을 거둔다는 게 정의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정의가 서지 않으면 잔꾀 부리는 사람들이 위세를 부리고, 세상은 비틀거리다가 폭망 하기 마련입니다. 잡초가 무성하고, 부실하게 성긴 벼가 제대로 결실을 맺을 것인지 꼭 지켜봐야겠습니다. 하긴 지켜보지 않아도 이미 게임 오버가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눈길이 갑니다.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요.

벼들이여, 봉기하라!

건달 농부 타도하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