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읽다

by 노란하마

다음 낱말을 살펴볼까요?

사위스럽다. 무지기. 참척. 합삭. 시울. 불잉걸. 두억시니. 우귀. 삿되다. 물고.

열 개의 낱말 중에서 정확하게 뜻을 아는 건 몇 개나 되는지요? 얼마 전에 오랜만에 독서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최명희 작가의 <혼불>, 열 권에 시간을 훨훨 태웠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있는 내내 내 머릿속의 어휘만으로는 스토리를 다 섭렵할 수 없었습니다. 몇 줄, 혹은 몇 장 읽다가 방지턱을 만난 듯 낯선 어휘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슬쩍 넘어갈 수도 있지만 알량한 고집 때문에 기어이 사전을 펼쳐 뜻을 찾아봅니다. 글을 쓴 작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죠. 쉬운 말을 제쳐두고 일부러 짓궂게 어려운 말을 써서 국어사전을 펼쳐들게 한 건 어쩌면 소설 읽기의 보너스 같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소설을 읽은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혼불이 타고 있는 테이블>


<혼불>을 읽으신 분들은 다 느끼셨을 테지만 사투리와 방언 때문에 편치 않으셨을 겁니다. 이미 사용하지 않아 거의 사어가 돼버린 말을 굳이 다시 써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은 언중의 약속으로 기호체계가 이루어진 것이지만 시대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입니다. 즉 새로운 낱말이 생기기도 하고, 있던 말이 없어지기도 하는 거죠. 그게 자연스러운 언어의 역사성입니다. 만약에 한번 정해진 기호체계는 영원히 사용해야 한다는 교조주의자 혹은 원리주의자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 생길 수밖에 없죠.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에 있는 중세국어까지 다시 소환해야 할 테니까요. △(반치음), ㅸ(순경음 비읍) ㆆ(여린히읗) ㆅ(쌍히읗) ·(아래아) 이런 소멸된 중세국어의 음소를 다시 써야 한다면 끔찍하겠죠. 말의 생로병사는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시대나 환경에 맞는 말은 만들어지기 마련이고, 조금 쉬운 말로 대체 가능한 어려운 말은 변하거나 없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죠. 저도 ‘개이득’ ‘현타’ ‘금사빠’ ‘자만추’ 같은 말을 별 거부감 없이 쓰고 있습니다. 언중이 쓰다 보면 언젠가는 국어사전에 오르는 날이 있을 테죠.

어쨌든 <혼불>을 읽는 동안 말과 풍속, 지리와 역사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물론 소설 속의 개성적인 인물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죠.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일종의 기시감 같은 걸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요, 박경리 작가의 <토지>였습니다. <혼불>의 강모와 강실의 안타까운 연정이 <토지>에서 가슴 저리게 했던 구천과 별당아씨의 사랑과 겹쳐서 다가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혼불>의 옹구네와 춘복이는 <토지>에서의 임이네와 용이가 책을 읽는 내내 더블 익스포저처럼 떠올랐습니다. 소설적인 배경이 간도로 옮아간 것도 유사하죠. 물론 그런 점들이 미학적인 가치나 소설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정말 아쉬운 점은 <혼불>의 최명희 작가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미완의 작품으로 남았다는 겁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상상으로 소설 속에 인물들이 어떻게 삶을 살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혼불>을 읽은 독자들은 공통적으로 그렇게 소설 밖으로 영역이 확대된 미학적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쨌든 <혼불>을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작지만 풍성한 자유열람실>


양구도서관 이층 자유열람실은 많은 영혼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늘 유익한 신간과 좋은 영화 CD를 챙겨주시는 사서 선생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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