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자가 여자한테 작업을 거는 행동을 ‘뻐꾸기 날린다’고 하죠. 그런 관용구가 어디에서 유래됐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한 건 뻐꾸기도 뻐꾸기를 날린다는 사실입니다. 여름 산을 가득 채우는 여러 가지 소리 가운데 ‘뻐꾹뻐꾹’ 하는 뻐꾸기 소리가 단연 으뜸인데요.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는 소리는 가히 일품입니다. 수컷 뻐꾸기의 연가는 안드레아 보첼리나 조용필이 부르는 노래에 버금갑니다. 그러니까 암컷 뻐꾸기의 귀가 번쩍 뜨이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지 않을 수 없죠.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는 앞산>
내가 길을 걷다가 개인 헬스장처럼 이용하는 농수로 컨트롤러인데, 철제 펜스가 잘 돼 있어 스트레칭도 하고, 푸시업도 합니다. 어떤 때는 기대어 커피를 마시기도 합니다. 뷰가 심심하진 않습니다.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뻐꾸기가 ‘뻐꾹뻐꾹’하고 뻐꾸기를 날리는 소리가 가득한데요. 뻐꾸기 소리는 4~5km까지 퍼집니다. 이 정도면 암컷을 낚는 게 아니라 투망을 던지거나 쌍끌이로 긁는다고 봐야죠.
뻐꾸기는 부화 기생, 소위 탁란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뻐꾸기 새끼도 제일 먼저 부화해서 숙주 새의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모두 밀쳐 떨어뜨려버리고 혼자 왕국을 차지합니다. 뻐꾸기의 끊임없이 탁란에 숙주 새도 이에 맞서 자신의 종 특유의 표식이 있는 알을 본능적으로 골라 보살핌으로서 뻐꾸기의 속임수에 대응합니다. 가만히 있을 뻐꾸기가 아니죠. 뻐꾸기도 자신의 알의 색깔과 크기를 숙주 새의 알과 더욱 비슷하게 만들어 이에 맞대응합니다. 진화적인 군비확장의 결과 뻐꾸기의 알은 숙주 새의 알을 거의 완벽하게 흉내내는 수준까지 도달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쨌든 뻐꾸기의 알과 새끼 중 일정비율은 발각될 것이며, 발각되지 않은 알과 새끼가 살아남아 다음 세대의 뻐꾸기의 알을 낳아 유전자의 생리대로 또 생을 이어가겠죠. 고약한 운명인 거죠. 붉은머리 오목눈이나 개개비, 때로는 때까치한테 의탁하는데요. 요즘은 탁란 한 새끼를 숙주 새가 다 키웠을 때인데, 그 시기에 맞춰 뻐꾸기 에미가 새끼한테 핏줄을 일깨워주려는 듯 더 소리를 높여 ‘뻐꾹뻐꾹’ 사인을 보냅니다.
<뻐꾸기 소리로 풍성한 여름 산>
고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뻐꾸기한테도 가슴 아픈 사연의 전설이 있는데요. 옛날 어느 마을에 심술궂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가 있었답니다. 시어머니의 심술이 얼마나 심한지 며느리는 하루 종일 안팎의 일을 다 마치고 나서도 낭군님 옆에서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었는데요. 일을 끝내고 이제 좀 낭군님 옆에서 자볼까 싶으면 시어머니가 밖에서 불러내 잡일에 잔소리까지 한시도 벗어날 때가 없었습니다. 며느리는 그렇게 일만 하다가 안타깝게 죽고 말았는데요. 그 낭군님 옆에서 옷 한번 제대로 못 벗고 죽은 며느리의 원혼이 뻐꾸기가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뻐꾸기의 우는 소리를 유심히 들어보면 ‘벗구! 벗구!’하고 들립니다. 옷 한번 못 벗고 잔 게 한이 됐고, 옷 한번 벗고 자는 게 소원이란 거죠. 다시 들어봐도 분명히 그렇게 들립니다. ‘벗구! 벗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