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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Dec 20. 2021

 내 방식대로 살 거야

-  i will have my way

아주 고집스러운 젊은 친구가 있습니다. 18년 동안 알바를 하며 <편의점 인간>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무라타 사야카처럼 이십 년 내내 알바 인생을 살아왔고, 늘 청바지에 밤색 가죽 재킷을 걸치고, 예수님 같은 머리 스타일도 변함이 없습니다.

  누군가 “머리라도 좀 단정하게 하면 안 되니?”라고 하면,

  “절대 못 고쳐! 어떤 놈 좋으라고 이걸 고쳐.”

  “왜 그렇게 쓸데없는 거에 힘을 쏟는 거니?”

  “쓸데없는 게 아니라 아직 쓸데를 찾지 못한 거죠.”

  “싫은 게 많으면 인생이 피곤하고 고달파지는 법이야.”

  “어차피 사는 건 피곤하고 고달프다는 거 모르세요?”

  “넌 어떻게 헛소릴 진지하게 하냐?”

  “진지한 얘기를 헛소리로 듣는군요.”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걸까요? 산다는 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의미입니다. 돈을 벌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도 해야 합니다. 절실하게 원했던 것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죠. 정해진 답을 좇아야 위험부담이 적다는 건 암묵적인 매뉴얼이 되었습니다. 정해진 답을 통해서 개인의 행복이 구현되고, 세상이 발전한다고 생각하는 건 그만큼 제도권 교육에 길들여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정해진 답을 선택하는 것은 독창적인 생각을 해내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정해진 답을 얻는 과정만 중시하고, 정해진 답을 찾는 지식에만 골몰하게 됩니다. 올해 수능 생명과학 20번 문제 사태가 일어난 건 당연한 일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은 없고, 선택하는 기능만 강조하다 보면 그런 부작용이 있는 거죠. 정해진 것, 이미 고정된 답을 수용하는 건 현실에 안주하여 위안을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현실에서는 인간관계도 아무렇지 않게 경제적인 서열로 환산되고, 서열은 언제나 경쟁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니까 적자생존의 동물계의 원리가 인간에게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살벌한 전쟁터가 아니라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는 없는 걸까요? 조금 부족하면 루저가 되는 걸까요? 없으면서도 완벽하게 만족하는 삶을 사는 건 영원히 불가능한 걸까요?


  얼마 전에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조사 결과 17개 국가 중 14개 국가에서 1위로 꼽은 게 ‘가족’이었는데 한국은 ‘물질적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유일한 국가였습니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닙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물질을 소유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한정된 재화는 정의롭던 정의롭지 않던 결국 능력에 따라 배분되기 마련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부자가 될 수는 없죠. 또 돈을 벌면 뭔가 다 이룰 줄 알았지만 정작 소중한 걸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어차피 우리가 인생을 산다는 건 수많은 문제와 부딪치고 그걸 해결해야 한다는 걸 뜻합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능력 제일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성공률로 여긴 이정표를 따라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그저 마구 달려와서 뒤를 돌아다보니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필요합니다. 가난하더라도 그게 결코 못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부자인데도 못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재물이 잘 고 못 사는 기준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그게 기준이 된다면 동물이나 뭐가 다를까요.

  “네가 아직 세상을 몰라서 그래.”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무책임한 말은 폭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세상의 원리를 잘 아는 어른들은 다 행복하고 잘 살아온 건가요? 그렇게 잘 살아온 거라면 왜 헬조선의 유산을 남겼는지요. 보통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평범함이 아니라 평범함의 매력을 보여줘 봐.”  

  세상의 빛을 밝혀온 건 인습과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 사람들의 눈빛입니다. 남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중력으로 묵묵히 사는 젊은이들이 세상을 즐거운 놀이터로 만든다는 진리를 여전히 믿습니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말하세요.   

  ‘i will have m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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