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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Dec 30. 2021

겨울에 대한 단상

 

  

  오늘도 변함없이 길을 걷습니다. 정말 춥네요. 차갑게 날을 세운 바람이 목덜미를 후려칩니다.

  -왜 이렇게 혹독하게 몰아치는 건가요?

  -봄, 여름, 가을 내내 따뜻하게 해 줬으니까 이제 균형을 맞추는 거지.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사는 게 절실한 것처럼 인생사가 다 그런 거야.

  너그럽고 자비로웠던 계절은 모든 걸 거둬들이고, 자취를 싹 감췄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겨울 들판은 황량합니다. 공기에서도 허기가 느껴지고, 슬픈 냄새가 납니다. 풍성했던 게 비움으로 수렴이 되고 난 뒤에 찾아오는 공허감은 피할 수 없습니다. 더욱 청징하게 들리는 개울물소리는 늙은 스님이 암자에서 불경을 외는 것처럼 들립니다. 서원(誓願)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 사는데 그렇게 많이 갖고 뚱뚱할 필요는 없잖아!

  된바람이 죽비를 내리치듯 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떨쳐버리지 못하는 소유욕이 골수까지 스며든 걸 다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전히 내 것에 대한 열망과 집착으로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이 다 명부에 있었나 봅니다. 하긴 살아 있는 날들은 내 자신에 대한 애착과 동의어나 마찬가지니까요. 온통 나 자신한테만 신경을 쓰느라 다른 건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냐?

  -그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부끄럽습니다.

  -나 자신만 챙긴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도 없잖아. 인생을 그렇게 낭비하지 마.

  눈길을 걸으며 바람소리, 물소리를 듣는 건 자연과 뭔가를 공유하는 일입니다. 살을 에는 물리적인 실감을 하다 보면 정신을 깨우치기도 합니다.        



  몇 년째 시골에서 저속 기어의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 게으르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라고 봅니다.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지만 그게 전부 언어로 정리되지 않는 게 조금은 아쉽지만. 논리적으로 정리되지 않는 스토리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건 아니겠죠.

  글밥으로 먹고 살아왔기에 천성적으로 불필요한 걸 필요한 것으로 치환하는 작업에는 익숙합니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 효율적으로 이해시키느냐 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보고, 듣고, 쓰고, 생각하는 것마저 게으르면 내 인생의 시간들이 나를 용서할까요? 어림없습니다. 용서한다는 건 공범자가 된다는 의미거든요.

  오늘도 몸으로만 가는 길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함께 가는 길을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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