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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Jan 22. 2022

공궤의 삶

- 납작 엎드린 겨울 하루 

  


  시골의 겨우살이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참으로 어렵습니다. 쩍! 쩍! 냇가의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에 들판까지 휘청거립니다. 날을 바짝 세운 칼바람이 들창을 찔러대고, 겨울 하늘에 이지러진 달은 나 몰라라 서산마루로 냅다 줄행랑을 칩니다. 며칠 째 어미젖을 빨지 못한 길고양이 새끼들은 곡성처럼 울부짖고, 억새 속에서 튜닝이 되지 않은 튜바처럼 짖어대던 고라니 소리도 추위에 얼어붙었는지 헛김만 내뱉을 뿐입니다. 낱알 찾기가 어려워진 비비새 떼는 노숙자처럼 덤불 깊숙이 파고들어 날개를 접고 몸을 뉩니다. 그저 무표정하게 사는 건 다 그러려니 하는 미루나무뿐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누가 따뜻한 안부를 물어주는 말 하나만으로도 위안이 될 것 같은 동지섣달의 그리움은 가슴에 묻고 또 묻어도 기어이 틈새를 비집고 나와 한숨으로 흩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움과 한숨보다 더 절실한 건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굶주림을 견뎌내다 보면 잡념이 떨어져 나가면서 산이 흐느끼는 소리와 하늘이 딸꾹질하는 소리까지 듣게 됩니다. 잡목들의 아우성도 들려옵니다. 우주 만물들이 다 그렇게 견뎌내고 있는 중인 거죠. 사람이라고 다를 게 있나요. 견뎌낼 도리 밖에요. 바람결, 별빛, 구름 한 조각을 통해서 우주의 숨결을 읽어내는 투시력은 내 육신의 욕심을 덜어내고 빈 몸이 됐을 때 이루어집니다. 비워냄으로써 채워지는 기이한 아이러니는 솜사탕만큼이나 달콤합니다. 보이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보는 건 보너스죠. 논리로 사실을 부정하려는 무모함도 폭력도 없고요, 내 논리가 최고의 진리라는 고집도 없습니다. 인간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성경을 태워버려야 한다는 폭력도 없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선 목을 매거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는 미신도 없습니다. 나만 살기 위해서 기어이 당신을 늪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야만의 풍습도 없습니다. 



  툰드라처럼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추위지만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테이블 위에 놓인 사과 한 자루. 와우!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은 아니지만 일상이 주는 감동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살아볼 만한 세상인 거죠. 내 밥상에 놓일 반찬을 고양이의 밥그릇에 덜어줍니다. 고양이도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고, 기대어 살아가는 시간들. 겨울 들판과 하늘을 올려다 보며 우주가 있고, 만물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운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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