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클라마칸을 건너온 햇살이 여기저기서 픽픽 쓰러지는 오후. 하루 종일 커피를 마시며 커트 코베인과 크리스 코넬, 그리고 체스터 베닝턴의 노래를 듣습니다. 노래를 듣다 보면 다 삭아서 문드러진 음표의 세포들이 꿈틀거립니다. 소리만 남겨 두고 훌쩍 떠나버린 싱어들. 커트 케베인은 엽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쐈고, 크리스 코넬은 끈으로 목을 맸고, 체스터 베닝턴도 넥타이로 목을 맸죠. 그들의 인생을 관통하는 라이트모티프를 외로움과 허무로 요약하는 건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통속적입니다. 그들의 죽음은 좌절이 아니라 초월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요.
<브레트 피트의 절친이었던 크리스 코넬>
끊임없이 밀려오는 갈등과 고통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아니 자신의 음악을 그렇게 던져버림으로써 팬들에게는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생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더 큰 세계로 간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그들의 음악을 자본주의적 삶으로 버텨내기에는 너무 버거운 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기타의 선율이 자아내는 수만 가닥의 감정에 빠져 스릴을 즐기다가 자신 스스로가 소리의 존재 자체가 되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요? 공연이 끝난 뒤 더욱 날카롭게 창끝처럼 몰려오는 고요함이 두려웠던 건 아닐까요? 상징과 기호를 무모하게 리얼리티로 환원시키려는 미디어의 폭력 때문은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