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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Feb 06. 2022

영화 <클로저>에 조금 더 다가서다

- Stranger에서 Closer로, 그리고 다시 Stranger로

  모든 남자들이 첫눈에 반하는 여자는?

  처음 본 여자.

  아니, 처음 본 예쁜 여자!       

    

  

  <클로저>는 첫눈에 반한 사랑 이야기지만 사실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욕망으로 포장된 사랑이라고 하는 게 솔직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단지 사랑하기 좋은 여자를 찾기 때문이죠. 남자들은 거의 다 그렇다고 해도 부정하기 힘듭니다. 그 죽일 놈의 집요한 리비도 욕망.

  <클로저>의 남녀관계에 대한 전제는 한 침대에 함께 있기까지 모든 남자와 여자는 Stranger라는 사실입니다. 만남과 스킨십을 통해서 Closer가 되는 거죠.           


  새로운 삶을 찾아 뉴욕에서 런던으로 온 스트리퍼 앨리스(나탈리 포트만).

  부고 기사를 쓰고 있지만 작가 지망생인 저널리스트 댄(주드 로).  

  남성들의 시선을 끌만한 미모의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

  전형적인 마초 맨인 의사 래리(클라이브 오웬).


  네 명의 등장인물은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사랑과 로맨스가 현실에서는 얼마나 부질없고, 괴리가 있는 것인지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애초부터 댄과 래리는 여자가 다리를 벌려야만 거기서 천국이 열리고,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런던 시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앨리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눈에 들어온 댄.

  “Hello, Stranger!”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이내 연인이 됩니다. 더불어 댄은 앨리스의 삶을 픽션으로 써서 유명 소설가가 되죠. 댄은 책 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사진작가 안나에게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선택에는 배제가 따릅니다. 사랑의 선택도 마찬가지죠. 한 여자를 사랑하겠다고 선택했다면 다른 수많은 여자에 대한 사랑은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다른 사랑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포기한다는 건 시효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안나는 댄이 앨리스를 만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너무 매력적이고, 강렬하기에 그의 시선을 거부하기 힘들죠. 문제는 매력적이라는 게 아니라 손만 내밀면 댄이 덥석 자신의 품에 안긴다는 겁니다. 이걸 거부하긴 어렵죠.

  댄이 안나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앨리스와 나누는 대화를 보면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됩니다.

  -난 사랑에 빠졌어.  

  -숙명처럼 말하네. 사랑은 순간의 선택이라고. 거부할 수도 있는 거라고. 자기한테도 분명 선택의 순간이 있었어.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

  -내게 딴 남자가 생기면?

  -질투 나겠지.

  -아직 나 좋아해?

  -물론.

  -거짓말!

    .........

    싫지 않지만 지겨운 거지.          



  여자가 벽지처럼 낡아가는 건 Closer의 시효성이 다 됐다는 의미이고, 더 이상 매력도 없다는 거죠. 구원처럼 열렸던 천국도, 사랑도 없습니다. 지겨운 일상의 의무만 남아있을 뿐. 남자가 떠날 수밖에요. 하지만 그것도 자신이 갖기는 지겹고, 누구한테 주기는 아깝고. 딱 그거죠. 가끔 심심할 때 찾아가는 용도라면 모를까. 세상에 개쓰레기들 참 많습니다.             

  채팅을 하면서 모니터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물건까지 꺼내 보이려고 하는 마초 맨 래리. 안나의 이름으로 채팅을 하는 댄의 짓궂은 행동으로 정말 안나를 만나게 되는 래리. 댄은 아이러니하게도 안나와 래리를 만나게 해 준 큐피드가 됩니다. 안나와 래리는 결혼까지 하지만 댄과 안나의 은밀한 만남도 지속됩니다. 결국 안나는 래리에게 이혼을 요구하죠. 래리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댄과 안나한테 자신이 당했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안나가 래리에게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말합니다.

  -사인해요.

  -조건이 하나 있어. 지금 내 병원 사무실로 가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섹스해 줘. 물론 싫겠지. 날 경멸해도 좋아. 마지막 부탁이야. 옛정을 생각해서.  난 당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왜냐하면 당신한테 완벽하게 속은 게 너무 억울해서 당신 몸이라도 안아야 속이 풀릴 것 같아. 내 창녀가 돼 줘. 그 대가로 당신에게 자유를 주겠어. 이것만 들어주면 다신 귀찮게 안 해.    




  남자와 여자가 처음 Stranger로 만나 Closer가 되기까지는 상대에 대해 배려를 하고, 거리감을 어느 정도 유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Closer가 됐다고 하면 그런 배려와 거리감은 일시에 사라지죠. 때로는 강요와 집착으로 관계의 파멸이 온다고 할지라도 선을 넘게 됩니다.

  래리는 안나가 댄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그놈이 나보다 더 잘하냐? 우리 침대에서도 했냐? 몇 번이나 오르가슴을 느꼈느냐? 뒤에서도 했냐? 그놈의 정액이 맛있냐?           

  사랑의 자리에 배신감만 남아있으면 남자는 복수심만 있는 괴물이 됩니다. 그건 마초 맨인 래리도 그렇고, 소아병적인 댄도 마찬가지입니다.

  댄은 안나가 내민 이혼 서류에 래리가 사인을 했지만 그 대가로 섹스를 했다는 걸 알고 실망과 분노를 드러내게 됩니다. 안나가 별 의미 없는 섹스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 하고 잤지?

  집요합니다. 댄은 래리의 병원을 찾아갑니다. 자신을 찾아온 댄에게 뜻밖에 래리는 클럽에서 스트리퍼로 일하는 앨리스를 우연히 만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혹 래리가 앨리스와 섹스를 한 건 아닐까 하는 댄의 눈빛을 읽은 래리는 그녀랑 자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덧붙여서 그녀는 여전히 댄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까지 해 주죠. 그리고 앨리스가 일하는 클럽을 메모지에 적어 건네주며 냉소적으로 말하죠.

  -넌 사랑을 알려면 멀었어. 타협이 뭔지 모르거든.            

  안도하는 눈빛을 띠며 병원문을 나서는 댄을 래리가 부릅니다.

  -댄, 실은 거짓말을 했네. 앨리스와 잤네. 끝까지 숨길 만큼 자넬 용서 못 하겠어.           

  래리는 앨리스와 잔 게 아니었지만 댄에게 복수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었죠. 어쨌든 댄은 래리가 알려준 클럽으로 찾아가 앨리스를 만나게 됩니다. 다시 만난 댄과 앨리스는 일시에 사랑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침대에 누워 과거의 즐거운 추억을 이야기하며, 달콤하게 키스도 합니다. 하지만 댄은 집요하게 래리와의 관계를 묻기 시작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잔인하다고 보지만 또한 남자의 속성을 너무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클럽에 와서 네 스트립쇼를 보고 얘기만 하고 돌아갔어?

  -그래.

  -날 믿지 않는구나. 난 널 사랑해. 무슨 말을 해도 괜찮아. 그저 궁금할 뿐이야.

  -왜?

  -알고 싶어서 답답해. 미치겠어. 말해봐.

  -아무 일 없었어.

  -진실을 말해줘. 그게 없다면 우린 짐승이나 같아. 날 믿어봐.

  담배를 사겠다고 밖으로 나온 댄은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그 안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이 앨리스에게 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다른 방의 문 앞에 놓여있던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돌아와 앨리스에게 건네줍니다. 장미를 받아 든 앨리스가 차갑게 말하죠.

  -이제 널 사랑 안 해.

  -언제부터?

  -지금, 바로 지금. 거짓말하기도 싫고 진실도 말할 수 없으니까. 끝내야지.

  -말해도 괜찮아. 난 널 변함없이 사랑해.

  -늦었어. 난 이제 널 사랑 안 해. 안녕.

  그리고 확인 사살을 하듯 앨리스가 댄에게 말합니다. 댄이 기다렸던 말이기도 하죠.

  -이제 진실을 말할 게. 이젠 날 미워해도 돼. 래리랑 밤새 했어. 난 그걸 즐겼고. 절정을 느꼈지만 네가 더 좋았어. 이제 꺼져!

  -알고 있었어.

  댄은 이미 래리한테 들었던 말을 확인해보려고 앨리스에게 한 질문이었던 거죠. 댄이 거짓으로 앨리스랑 잤다고 말한 것처럼  앨리스도 거짓으로 잤다고 말을 하죠. 분명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앨리스가 댄과 결별하기 위한 거짓말인 셈이었죠. 댄은 래리와 잔 것을 이해한다앨리스에게 말했지만 이젠 회복 불가능한 파멸만 남게 되죠.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댄은 앨리스에게 영혼 없는 말을 건넵니다.

  -사랑해.

  -어딨어?

  -뭐?

  -보여줘. 사랑이 어디 있어?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어. 몇 마디 말은 들리지만 그렇게 쉬운 말들은 공허할 뿐이야. 뭐라고 말하든 이젠 늦었어.          

  래리와 앨리스로부터 댄이 상처를 받게 된 건 그 스스로의 불신에서 비롯된  거죠.

  앨리스는 댄과 헤어지고 런던에서 뉴욕으로 돌아옵니다. 여권에 있는 그녀의 이름이 클로즈 업 됩니다.

  존스 – 제인 레이첼.

  앨리스와 헤어진 뒤, 댄은 그녀와 데이트를 했던 추모공원을 찾아갑니다. 그 추모공원의 타일 벽면에서 앨리스라는 이름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그제서앨리스의 존재를 알게 된 거죠. 제인의 이름조차 모르면서 사랑했다고 착각하고, 집착하고, 분노한 것입니다.       

  *앨리스 에이리스. 벽돌공의 딸. 불속에 뛰어들어 아이 셋을 구하고 숨지다.

  댄과 데이트를 할 때, 제인이 벽면의 앨리스의 이름을 보고 그걸 자신의 이름으로 대신 말했던 거죠. 누구에게나 이름은 자신의 존재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지만 댄이나 래리한테는 그저 제인의 몸뚱이만 의미가 있었던 거죠. 남자한테 타자화된 제인이 자신의 이름을 회복하는 건 뉴욕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였던 셈입니다.         


   <클로이>는 낯선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Closer가 되지만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면서 아이러니하게 점점 Stranger가 되는 남녀관계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댄과 앨리스, 안나와 래리의 캐릭터를 통해서 비틀어진 사랑과 욕망의 단면을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것도 침대 위에서 순수한 진실을 찾겠다는 남자들의 무모함 때문이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댄의 사랑은 애초부터 신뢰가 전혀 없는 것이었죠. 여자를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소아병적인 자기애만 있었던 겁니다. 그 불행은 대상이 누구든 반복만 될 뿐이라는 게 더 큰 비극이죠.

  안나는 피동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자기 파괴적인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가 사랑하기 좋은 사람으로 전락해버리는 거죠. 그렇기에 이혼 사인을 받았지만 끝내 래리를 떨쳐내지 못하고 다시 한 침대를 쓰게 됩니다. 스스로 자신이 남자에게 타자화 된 존재로 전락한 거죠. 참 안타깝고 서글픈 인물입니다.

  래리는 마초적인 인물이면서 동시에 계산과 타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합니다. 관계에 능숙하고, 스스로는 그게 사랑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습니다. 구역질 나는 쓰레기 냄새만 풍길 뿐. 문제는 그런 냄새가 좋다고 하는 여자들이 적지 않다는 거죠. 어차피 욕망은 거래니까 탓할 이유도 없습니다.

  앨리스는 일방적으로 희생을 하고서도 사랑을 얻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앨리스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인 제인을 되찾은 것처럼 어디서든 다시 사랑하고, 멋진 인생을 사는 여자가 될 거란 믿음이 생깁니다. 화재 속에서 세 아이를 구하고 숨진 추모공원의 앨리스 에이리스처럼 제인은 댄과 래리와 안나에게 진실한 사랑을 깨닫게 해 준 인물입니다. 아니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한 인물이죠. 욕망을 해방시키고, 쾌락을 탐하는 섹스가 적어도 사랑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으니까요. 그러기에 제인에게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런던 시내에서 걷던 앨리스의 첫 장면과  뉴욕에서 걷는 마지막 장면에  OST로 Damien Rice의 <The Blower's Daughter> 중 ‘I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가사 부분이 나오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장면과 가사의 절묘한 조화죠.

  더불어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 Cosi Fan Tutte>도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사운드도 영화의 매력을 더해준 느낌이었습니다.    



  <클로저>가 솔로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은 핵심적 전언.

  혼자 사는 건 힘들지만 둘이 사는 건 더 견뎌내기 힘든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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