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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Feb 22. 2022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성우 오승룡 선생님 영전에 바치는 국화 한 송이


  오늘 신문을 보다가 성우 오승룡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는 부고 기사를 보았습니다. 저와 개인적인 교분은 없었지만 제가 KBS1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을 때, KBS 본관의 엘리베이터나 5층의 복도에서 간간히 마주치면 목례를 하곤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본관에 오시는 건 5층 한구석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성우 후배들을 가르치거나 격려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여의도 KBS 본관 5층에는 라디오국의 사무실과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라디오국 가운데서도 KBS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KBS1 라디오의 사무실은 제일 크고, 피디들도 가장 많습니다. 예전에 비해서 라디오의 영향력은 턱없이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시사와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합니다. 청취율도 TV와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와 작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KBS1 라디오국 사무실



  본관 5층 KBS1 라디오국 옆에 마련된 조그마한 성우 사무실에서는 늘 피 끓는 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어떤 때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KBS1 라디오국 사무실을 뒤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햄릿의 고뇌에 찬 대사와 파우스트가 좌절하는 독백 소리가 사무실까지 들려오면 일을 하던 피디와 작가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마치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고 일제히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곤 했습니다.

  KBS에서는 성우를 뽑아 2년 동안 전속으로 트레이닝을 시키고, 그다음에는 성우 각자가 프리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우가 썩 좋은 편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예전처럼 라디오 드라마가 많은 것도 아니고 외화를 더빙하는 일도 턱없이 줄어들었죠. 이름이 있는 유명 성우를 제외하고는 일을 찾는 게 쉽지 않죠. 신인의 경우는 라디오 스폿 광고 하나를 따는 일도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 열정 하나로 버티고 있는 겁니다.


                                                      라디오 스튜디오


 

  여의도 KBS 본관에서 몇 년을 지내면서 느낀 건 어딘지 모르게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겁니다. 어떤 때는 피라미드 속의 침묵 같기도 하고, 음습한 카타콤 같은 느낌마저 줍니다. 그런 KBS 본관에 뜨거운 심장 같은 곳이 성우 사무실입니다. 창조적인 열정이 끊이질 않는 곳이죠. 그런 성우 사무실의 성주나 마찬가지인 오승룡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승룡 선생님의 후배나 제자들이 그분의 뜻을 잘 이어가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오승룡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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