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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Feb 24. 2022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의 늪

- 운명이 아닌 욕망에 의한 파멸

      

  <나이트메어 앨리>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알폰소 쿠아론과 함께 60년대 출생 멕시코 출신 3인방 영화감독 중 하나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입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은 <The Shape of Water : 사랑의 모양>을 비롯하여 <헬보이1.2>와 <판의 미로> 같은 작품으로 유명하죠. 특히 괴물이 등장하는 건 그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나이트메어 앨리>에서는 괴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아주 리얼하게 보여주고, 때로는 판타스틱한 분위기와 함께 고도의 심리적인 서스펜스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미디어에서는 “지난 10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The Usual Suspects>나 <The Sixth Sense>, 그리고   <The Others>와 같은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들한테는 ‘뭐지?’ 하는 김 빠진 사이다가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히든카드 한 장으로 판을 확 뒤엎는 반전이 아니더라도 추론 가능한 극적인 전개 과정과 수미상관 방식의 수법, 그리고 고도의 미장센을 통해서 모골이 송연해지게 만듭니다. 그러한 심리적인 카타르시스는 인간의 욕망과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 캐릭터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 그리고 세속적인 인간관계의 치밀한 구성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스토리는 간결하고, 명료합니다.

  증오심에 아버지를 죽이고, 거리를 떠돌던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이 유랑극단에 들어가 자신의 미래인 인간 괴물 Geek(폴 앤더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유랑극단에 머물면서 지나(토니 콜레트)와 피트(데이비드 스트라탄)로부터 독심술을 배우고, 전기 쇼를 하는 몰리(루니 마라)와 함께 유랑 극단을 떠나 뉴욕으로 와서 상류층을 상대로 독심술 쇼를 벌여 성공을 거둡니다. 뉴욕에서 한창 성공 가도를 달리는 중 심리학자인 릴리스 박사(케이트 블란쳇)를 알게 되고, 그녀를 통해 엄청난 갑부인 에즈라(리처드 젠킨스)를 소개받게 됩니다. 과거 많은 여성들에게 상처를 줬던 에즈라는 스탠턴의 심리 마술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죠. 워낙 의심이 많은 에즈라였지만 릴리스 박사로부터 받은 정보를 이용해 트릭을 썼기 때문에 에즈라는 점점 스탠턴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 에즈라가 사랑했던 도리라는 여인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영혼을 실제 보여주는 트릭으로 한몫 잡으려는 계획을 짭니다. 스탠턴은 자신의 계획을 강하게 거부하는 몰리를 끈질기게 설득해 도리의 영혼이 현현하는 연기를 하게 만듭니다. 스탠턴이 이게 마지막이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몰리도 어쩔 수 없이 끼어들게 됩니다. 스탠턴의 뜻대로 연극이 잘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최후의 순간에 에즈라가 그 모든 게 조작된 것임을 눈치챕니다. 결국 심령 매직쇼가 거짓임이 들통나면 모든 걸 잃게 되는 스탠턴은 에즈라와 그이 경호원을 죽이고, 경찰에 쫓기게 됩니다. 간신히 경찰로부터 벗어나지만 부랑자가 돼서 거리를 전전하다가 또 다른 유랑극단으로 들어가 처참한 Geek처럼 인간 괴물로 전락한 자신을 맞닥뜨리는 게 라스트 씬입니다.  



  <나이트메어 앨리>가 모든 감각이 오그라지게 만드는 전율의 효과는 스토리와 부합하는 여러 가지 영화적 요소 때문입니다.

  우선 자신의 출생 자체에 대한 증오심을 가진 문제적 인물인 스탠턴이 아버지를 죽이고, 집에 불을 태워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악몽의 여정에 관객은 이내 몰입됩니다. 그 여정에서 만난 지나, 피트, 몰리, 클렘, 에즈라를 통해서 파멸로 치닫게 되죠. 스탠턴과 만나는 캐릭터는 스탠튼의 욕망을 드러내주는 보조적인 인물인 셈입니다. 그런 인물들의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표정과 연기로 스탠턴은 관념적인 스테레오 타입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와닿습니다. 관계를 통해서 멋진 존재가 만들어진 것이죠.

  지나와 피트는 스탠턴이 독심술사로 출발하는 근거를 만들어주면서 동시에 위험성을 경고하는 표지 역할을 합니다. 독심술의 비법이 적힌 피트의 작은 노트는 부와 명성, 동시에 파멸을 가져오는 악마적인 유혹의 상징입니다. 그로부터 스탠턴은 파멸로 치닫는 욕망의 대로를 무한 속도로 질주하게 되죠.



  몰리는 인간의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고, 그 사랑을 실현하는 캐릭터입니다. 몰리가 자신의 인생의 전부였던 유랑극단을 떠나는 건 오직 스탠턴에 대한 사랑 하나뿐이었으니까요. 순수한 사랑마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몰리에 대한 비애와 스탠턴에 대한 경멸이 팽팽하게 교차합니다. 참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통속적 비난보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존재론적인 회의감을 들게 한다는 점에서 스탠턴은 악마적인 요소를 가진 캐릭터가 분명합니다. 부드럽고 환한 베일에 싸인 어둠을 보는 건 공포이고, 전율을 느낍니다.



  심리학자 릴리스 박사는 계산이 치밀한 복수의 화신입니다. 박사의 연구실과 그녀의 패션, 표정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에즈라에 대한 복수이고, 그의 파멸입니다. 에즈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여 스탠턴의 욕망을 부추기지만 그 욕망의 날갯짓을 하는 주체는 바로 릴리스 박사입니다. 스탠턴은 릴리스 박사가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했던 거죠. 결국 릴리스와 스탠턴, 그리고 에즈라의 관계는 욕망을 상호 에스컬레이트시키며, 끝내는 서로의 심장에 칼을 꽂아 공멸하게 되죠. 릴리스 박사는 에즈라한테 복수하고, 스탠턴의 돈까지 차지하여 최후의 승자가 된 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녀는 영원히 악마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위험한 인물로 남습니다.

  그리고 유랑극단 단장인 클렘과 브루노, 대령 같은 인물들이 <나이트메어 앨리>의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극단의 작은 배역들의 움직임과 표정도 생생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나이트메어 앨리>의 매력은 극의 흐름과 캐릭터의 심리에 조응하는 칼라와 사운드, 의상과 배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적 체험과 치밀한  속임수를 보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습니다. 유랑극단의 무대와 간판, 그리고 신발, 장갑, 모자, 속옷 같은 소도구들은 캐릭터에 대한 리얼리티와 입체감을 고조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는 인간 괴물 Geek입니다. 스탠턴이 유랑극단에서 그와 조우한 뒤, 그와 엮이게 되는 건 그이 미래를 예시하는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괴물인 Geek은 스탠턴이 긴 여정 끝에 만나게 된 바로 자신이었던 셈입니다. 경찰에 쫓겨 열차에 숨어들었을 때 닭장 뒤에 숨었던 건 과거 생닭을 뜯어먹었던 Geek이 현재 스탠턴의 삶으로 환원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Geek이 스탠턴과 한쌍을 이루고 있는 삶이라고 한다면 클렘 사무실에 놓여있는 병 속의 태아 표본은 인간 괴물로서의 씨앗 같은 상징이거나 아니면 에녹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아 천사의 능력과 그런 함의를 담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한테나 태아의 시절이 있었듯이 악마의 자기 파괴적인 본능은 모든 사람에게 다 있기 마련이고, 그게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건 악에 물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천사가 될 수 있는 거겠죠. 그 천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쨌든 스탠턴이 아버지를 죽이고, 부랑자로 떠돌다 매직 마술로 성공했지만 마지막에 인간 괴물로 전락하는 건 오이디푸스 같은 비극적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파멸에 다다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격에서 비극이 비롯된다고 하는 세익스피어적인 시각이기도 하고, 동양적인 인과응보의 인연설 시각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의 핵심적 전언은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파멸로 요약이 됐습니다. <나이트메어 앨리>가 킬링 타임용 오락으로 소비되는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파멸, 그리고 그 존재에 대한 사유를 떨쳐낼 수 없다는 점에서 한동안 악몽의 골목을 서성댈 것 같습니다.      


  뇌리에 남는 대사들

  -때론 선을 넘어서야 선이 보이는 법이야.

  -당신이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자신을 속이는 거지.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토니 콜레트를 한 영화에서 보는 건 한 식탁 위에 놓인 스테이크와 초밥, 그리고 탕수육을 먹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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