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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Apr 16. 2022

영화 <에브리바디스 파인>

- 아버지는 괜찮아. 너희만 행복하면 돼. 


  <에브리바디스 파인>은 <시네마 천국>을 연출한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90년 작품 <모두 잘 지내고 있다오>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가족의 일상을 잔잔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했지만 동양적인 가족 정서가 물씬 풍기는 영화입니다.  

  프랭크(로버트 드 니로)는 전선에 피복을 입히는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퇴직하고, 결혼생활 41년을 함께 한 아내가 죽은 뒤 홀아비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휴 주말을 맞아 자식 네 명의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기로 합니다. 프랭크는 오랜만에 찾아오는 자식들로 인해 마음이 잔뜩 들떠 있죠. 집안 청소를 하고, 마당의 잔디를 깎은 뒤 간이 풀장을 만들고, 마켓에 가서 와인을 준비하고, 비싼 바비큐 기계까지 구입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집에 모이기로 한 날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가 사정이 생겨 오지 못한다는 걸 전화로 알려옵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로버트(샘 록웰)는 공연 준비 때문에, 데이빗은 바쁜 일정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는 로지(드류 베리모어)는 개인 사정으로, 광고회사의 중역인 에이미(케이트 베긴세일)는 아들이 갑자기 아픈 사정으로 인해 올 수 없다는 것이었죠. 들뜬 마음으로 가족맞이 준비를 하던 프랭크는 잠시 실의에 빠집니다. 이내 프랭크는 더 멋진 계획을 세웁니다. 자신이 직접 자식을 찾아가는 계획을 세워 여행을 떠납니다. 심장병 때문에 비행기 여행은 안 된다는 의사의 충고를 흘려듣고, 심장약과 자식들에게 건네줄 손편지를 챙겨 기차와 버스로 여행을 떠납니다.  

  프랭크에게 성공한 자식들은 자랑거리이고, 훈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자녀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른 현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제일 먼저 화가인 데이빗을 만나려고 하지만 부재중입니다. 하룻밤을 기다리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죠. 데이빗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페인트공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받아 결국 뜻을 이루었습니다. 프랭크는 데이빗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우연히 화랑에 걸려 있는 아들의 그림을 보고는 흐뭇해하죠. 


  두 번째로 광고회사 중역인 에이미를 찾아갑니다. 아이가 아파서 못 온다고 말한 것과는 달리 아이는 쌩쌩합니다. 핑계였던 거죠. 에이미는 남편과 이혼했지만 그 사실을 감추고 있습니다. 남편이 집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지만 그건 쇼였던 거죠. 



  세 번째로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로버트를 찾아갑니다. 오케스트라 홀로 직접 찾아간 프랭크는 포스터 앞에서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은 뒤, 리허설 중인 연주홀 안으로 들어갑니다. 2층 관객석에서 본 로버트는 지휘자가 아니라 드럼 주자였습니다. 아내가 프랭크에게 지휘자라고 거짓말을 했던 거죠. 프랭크가 늘 아이들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걸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과장해서 말한 것이었죠. 그래도 프랭크는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싶다는 속내를 밝히자 아들 로버트는 유럽 공연 때문에 오늘 밤 출국을 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아버지와 지내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죠.    



  네 번째로 로지를 찾아갑니다. 찾아가는 도중에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거리의 부랑아한테 도움을 주지만 오히려 강제로 돈을 더 빼앗으려고 하죠. 거기다 심장약이 든 약통을 빼앗아 발로 밟아 부숴버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로지를 만나 화려한 환대를 받습니다. 리무진으로 픽업을 하고, 아파트는 호텔처럼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로지의 집은 아니었던 거죠. 빌린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무엇보다 로지는 미혼모였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지인의 아이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프랭크를 속이죠. 

  프랭크는 그렇게 자녀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내 안에서 심장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못하는 바람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됩니다. 결국 프랭크가 병원에 입원하자 로버트와 에이미, 로지가 찾아오게 되죠. 아이러니하게 심장마비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자 자식들이 모이게 됩니다. 하지만 화가인 데이빗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프랭크가 묻자 데이빗은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합니다. 멕시코 여행 중에 약물 과다로 사망한 것이었죠. 프랭크는 아들 데이빗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고, 그럴 리 없다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어쩌지 못하는 사실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이번에는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이게 됩니다. 가족이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최고급 와인에 칠면조 요리를 따뜻한 마음으로 즐깁니다.    


       

  <에브리바디스 파인>의 매력

  1. 과장되지 않은 스토리와 일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풀 샷 위주의 카메라 워크가 눈에 띱니다. 자애로운 어머니와는 소통 가능하지만 엄한 아버지와는 불통일 수밖에 없는 구도는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죠. 그러니까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어머니와 아버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족들의 스토리를 다큐를 찍듯이 담백하게 풀 셧 위주로 보여줍니다. 현란한 교차 편집이나 심쿵하게 만드는 클로즈업은 거의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스토리와 정직한 카메라 워크가 조화를 이룹니다.

  2. 프랭크가 여행을 갈 때 차창 밖의 풍경이 마음에 녹아듭니다. 산, 나무, 마을, 들판, 그리고 전선이 늘어진 전봇대가 사물로서의 배경을 뛰어넘어 프랭크가 살아온 인생과 조응이 됩니다. 사람이 풍경처럼 늙어간다면 나이를 먹는 게 하나도 서러울 것 같지 않습니다.  

  3. 타이틀이 뜨면서 인물을 소개할 때 전화기 목소리와 함께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결하게 처리합니다. 가족관계를 미리 알 수 있게 보여주는 거죠. 사진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스토리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합니다. 

  4. 프랭크가 자식을 찾아가서 만날 때, 아이의 모습으로 다가오다가 다가 현재의 성인으로 바뀌는 장면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아버지 프랭크의 눈에는 자식들이 여전히 아이로 보인다는 의미죠. 환갑이 지났어도 부모 눈에는 아이일 뿐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요. 

  5. “행복하니?” 아버지 프랭크가 만나는 자식들에게 빠지지 않고 묻는 말입니다. 그게 아버지의 솔직한 마음일 텐데 그러면서도 자식들이 더 큰 성공을 했으면 하는 바람은 무엇일까요. 부모의 양가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건강이 최고야,라고 하는 건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는 건 더 최고고, 라는 말을 포장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건강만 하고, 일은 하지 않고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다 큰 자식을 보는 부모들은 속이 터집니다. 

  6. 이 영화의 절정은 프랭크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꾸는 꿈입니다. 꿈에서 프랭크는 아이들과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왜 아이들이 사는 이야기를 자신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죠. 어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면 아이들은 패배의식을 갖게 되고, 피하게 되는 건 당연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좁죠. 진정으로 어른이라면 어린아이의 시선에 자신의 눈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겁니다. 그게 쉽지는 않죠. 프랭크는 그 꿈을 통해서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고, 어린아이로만 보아왔던 자식들을 어른으로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꿈은 프랭크가 자식들을 성인으로 바라보는 이니세이션 같은 기능을 합니다. 

  7. 프랭크가 데이빗의 그림을 사기 위해 화랑에 갔을 때 안타깝게 그 그림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냥 화랑을 나오는데 여직원이 뒤늦게 데이빗의 아버지임을 알고 좇아오죠. 그리고 프랭크에게 데이빗의 다른 그림을 보여주죠. 그건 전선이 늘어진 전봇대의 그림이었습니다. 데이빗은 아버지의 인생을 그렸던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정말 좋았습니다. 

  8. 소소한 인물들이 툭툭 던지는 대사도 마음에 와닿습니다. 

  바에서 만난 94세의 노인이 하는 말. 

  “자식이 셋이고, 손주가 여섯이지. 나와 얘기할 시간이 없어서 예약을 해야 할 지경이오. 사람들이 변했고, 삶도 변했지. 어디선가 걔들을 잃어버렸어. 걔들에겐 아무도 필요 없지.”

  여자 트레일러 운전사의 말. 

  “술로 남편을 보냈어요. 우리가 모든 병을 만들어 나가죠. 그리고 핑곗거리를 만들죠. 현실과 부딪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아무도 상처받길 원하지 않죠.”

  거리의 여자가 프랭크에게 작업을 거는 말. 

  “제 다리 보고 싶지 않으세요?”  

  프랭크가 시크하게 받아치는 말. 

  “내 다리를 보여줄까요?”

  8. 에이미가 아버지 프랭크에게 묻죠. 

     “아빠가 제 나이였을 때 무엇을 하고 싶으셨어요?”

     프랭크가 답합니다. 

     “내가 원했던 건 그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거였지.”

    <에브리바디스 파인>의 핵심적 전언이 담겨 있는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아버지의 마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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