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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Apr 11. 2022

당신의 봄날은 안녕하신지요?

- 다시 쓰는 봄의 이력서

  

                                         <추위를 견뎌낸 뒤 다시 솟아나는 삼동파>       

    

  얼어 죽지  않고, 부러지지 않으려고 애써서였을까요. 오래전 떠난 애인처럼 다시는 못 볼 것 같았던 봄이 찾아왔네요. 비발디 사계의 봄처럼 경쾌하진 않아도 불쑥 들이닥친 꽃소식 때문에 들뜬 마음으로 밥상에서 자꾸 헛젓가락질을 합니다. 이번 봄에는 어떤 약속도 하지 않으렵니다. 약속은 괴로움을 쌓는 일이니까요. 인생이 그랬어요. 약속에 약속을 거듭하며 뭔가 있을 줄 알고 달려왔는데 이룬 것 없이 영화 예고편처럼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젠 기억을 더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볼 뿐. 흐르는 구름이 아니라 파란 하늘로 살고 싶었는데.

  지하철 9호선의 출퇴근 시간처럼 정신없었던 젊은 시절은 낡은 사진이 되었고, 지금은 손님 한 명도 태우지 않은 시골버스처럼 심심하게 늙어가는 중입니다. 청춘의 꽃길을 지나 멸종해버린 추억을 더듬는 시간.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해탈하고, 슬픔을 슬픔으로 극복할 나이가 되어서야 봄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 고통과 눈물을 꾹꾹 누르고 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두릅은 새순이 날 때 눈물이 나듯 진이 나옵니다>           


  봄을 희망과 기쁨으로만 말하는 건 복수심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기위안입니다. 그건 계절을 낭비하는 거죠. 봄이 지나간 뒤의 봄이 남긴 흔적을 본 적이 있나요? 사랑했던 그녀를 생각하면 공허한 마음이 드는 것처럼 봄도 떠나기 위해서 온 것일 뿐. 그러니 봄이 뭘 가져다 줄 것이란 기대가 얼마나 부질없고 잔인한 꿈을 꾸는 것인지요. 좋아하는 여자가 아버지의 정부였던 것처럼 마음 설레게 한 봄은 그들만의 잔치입니다.

  그런 봄조차 쉽게 오지 않는 것이기에 야유하지 않습니다. 봄의 요란한 말과 몸짓은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고, 본분마저 어지럽게 합니다. 봄이 들뜬 계절이 아니라 추위의 해체에서 생명의 분산으로, 분노의 소멸에서 화해의 다스림으로, 생의 좌절에서 현실의 초월로 사뿐히 왔다 떠나는 손님이기를.

  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타인을 혹은 계절을 핑계 삼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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