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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Apr 20. 2022

늦게 찾아온 꽃 손님들

- 강원도 양구의 봄날 

    

                                                       <오늘 새벽 하늘>


  산이 높아서일까요? 봄바람이 촘촘한 등고선을 넘는 게 꽤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헉헉거리며 방금 도착한 봄. 짙은 향이 물씬 풍깁니다. 봄꽃들을 몰고 왔거든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예전에는 춘서(春序)라는 게 있었는데 요즘은 온난화로 인해서 동시다발적으로 핍니다. 이러다간 우리나라에서 봄이 완전 실종할 거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아열대로 변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죠. 열대어가 잡히고, 열대작물을 재배하는 게 낯선 일이 아닙니다. 


                                                    <마을 뒷산의 진달래꽃>


  그래도 강원도 양구 봄날의 아침저녁은 서늘합니다. 새벽 운동을 하는 어르신들은 여전히 패딩을 입고, 장갑까지 끼고 있습니다. 화목보일러 연통에서 나오는 연기가 동네를 휘감기도 합니다. 


                                                       <이제 만개한 벚꽃>


  늦게 찾아온 봄꽃 손님. 금방 떠날 것이지만 오랜 기억으로 남도록 눈에 꾹꾹 담아두어야겠습니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가 밤 열두 시까지 빌라 계단을 오르는 택배 아저씨의 힘인 것처럼 절망하는 시간마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등산화의 끈을 조여매고, 나무 막대기를 들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목련꽃>


  한 번도 바쁘게 살아본 적 없으니까 어디 죽는 거라도 바쁘게 죽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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